제주도 한 달 살기 6일 차, 우도에서의 하룻밤.
우도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어떨까.
그 부푼 꿈 하나만을 품고, 우도로 향했다.
우도는 기본적으로 차량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1박 이상 숙박을 하는 예정자, 임산부 노약자 동반 등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차량 반입이 가능하다.)
따라서 보통 항구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전기차나 전기 자전거 등을 대여해서 우도 여행을 즐긴다.
나는 하룻밤 숙박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차로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우도는 어떤 여행사이트나 블로거를 찾아봐도
기본적으로 ‘시계 방향’ 여행을 추천한다.
우도는 원래 도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시계 방향으로만 여행해야 한다는 글도 있던데..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항구에서 ‘서빈백사’ - 홍조단괴 해변 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나 역시도 첫 번째 목적지인 서빈백사를 시작으로 우도 구석구석을 톺아보기 시작했다.
<깜빡깜빡, 고마워요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 >
나는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겨우 6개월 차.
10년여의 장롱면허 끝에,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남편에게 운전을 배웠다.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쏘카를 이용해서 운전을 한 일들이
있었기야 해지만 겨우 1~2년에 한 번 꼴이었고 그것도
아주 단거리뿐이었다.
좌측 깜빡이가 위로 올리는 거였나, 아래로 내리는 거였나 조차도
헷갈릴 정도로 운전이 낯설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운전 매너’ 역시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테면 1차선은 추월차선이어서 빨리 달려줘야 한다거나
빨간불 앞에 서 있는데, 뒤에 우회전하는 차가 있을 땐 살짝,
앞으로 차를 빼주는 센스라거나.
그렇게 차를 많이 타고 다녔는데도
운전자들 간의 암묵적인 룰 같은 건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중 가장 놀랐던 것이
“고마워!”라는 의미의 비상 깜빡이였다.
나는 비상 깜빡이가,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는 상황이 생겨서
뒤쪽 차량에 위험을 알리는 용도 거나
내 차가 위험하다고 알리거나
잠시 정차할 때 쓰는 등의 같은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양보해줘서 고마워 혹은 미안해 양해해줘”라는 의미라니.
세상에,
운전을 하다 보면 진짜 성격이 나온다는데,
나 역시 운전을 조금씩 익혀가며
왜 성격이 나온다는 건지 이백 번 이해를 하게 됐다.
분명 충분히 여유를 두고 끼어들기 위해 깜빡이를 켜자마자,
갑자기 속력을 내서 죽어도 안 비켜주겠다고
다가오는 차량이라거나,
분명 직진 차선에 있어놓고서는, 좌회전 차선에 있는 나보다 먼저 좌회전을
하겠다고 얼굴을 들이미는 차량이라거나.
(심지어 이런 차들은 좌측 깜짝이도 안 키고 있다가 들이댐)
등. 등. 등
하아. 쓰다 보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러한 비매너 차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아 왜 저래?”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비상 깜빡이”를 선물 받았다.
끼어들기 금지구역 직전이긴 했지만
딱히 그렇게 급하게 끼어들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깜빡, 깜빡, 깜빡!
와! 나한테 고맙대!!!
처음으로 깜빡이를 보자마자 나는 갑자기 기분이 붕 들떴다.
그리고 그 날 남편과 통화하며 자랑을 했다.
“나 오늘 앞 차가!! 깜짝 이 켜줬어!! 나한테 고맙대!!!”
그 이후로 나는 깜빡이 마니아가 됐다.
조금만 미안해도, 조금만 감사해도 깜빡이로
내 마음을 전했다.
우도는 아무래도 전기차와 자전거 운전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해안 도로에서 속도를 내기가 조금 어렵다.
전기차들이 한쪽으로 붙어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대부분
친구들과 함께 운전을 하며 나란히 달리거나,
가운데 길을 차지하며 달린다.
전기차들 기준에선 최대 속력을 내고 있을 테니..
뒤에 있는 내가 답답한 걸 모르겠지.
일반 차량보다 전기차가 훨씬 더 많이 다니니,
어쩔 수 없이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북이 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득, 나의 거북이 운전을 눈치채신 건지
앞서 전기차를 운전하던 한 아저씨께서 한쪽으로 붙어서는
왼손을 앞 뒤로 휘휘 흔들기 시작하셨다.
살짝 추월을 하며 살펴보니
앞 좌석엔 희끗한 머리에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아저씨가
뒷자린엔 꽃 분홍 재킷을 입은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역시 연륜이 있으시네!
나보고 먼저 가라는 거구나!
나는 속도를 내어 앞으로 추월을 하며
깜빡 깜빡 깜빡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추월 후
백미러로 본 아저씨는 휘휘 젖던 손을 멈추고
내게 ‘엄치적’을 보내주고 계셨다.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번지던 미소.
우도 여행을 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가득가득 담았지만
그 순간만큼 반짝이게 기분 좋던 순간은 없었다.
양보의 미덕,
고마워요, 미안해요가
일상에서 주는 힘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보>
홈페이지 :http://www.udoship.com/
우도로 가는 법은 2가지다.
성산항과 종달항.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15분 내외로 우도에 도착한다.
다만 성산항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운행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산항을 이용하는 듯하다.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어디서 내리든, 전기차와 전기 자전가
빌리는 업체는 많으니 미리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아도 무난하게
빌릴 수 있다. (실제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서 가는 것보다 직접 가서 흥정을
하는 것이 조금 더 저렴한 듯했다. 하지만 인기업체의 경우 원하는 차종 (디자인)이
마감될 수 있으니 꼭 원하는 디자인이 있다면 미리 예약을 하는 것도 좋다)
성산항의 경우 홈페이지에 기재된 시간표와는 별개로
현재 상시 운항을 하는 듯했다.
(실제로 항구에서 나눠주는 안내 시간표에다가 X를 쳐놓으셨었다.)
원래도 30분마다 운항하는 배편이니
딱히 시간을 맞춰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바람이 심하게 불 경우 운항이 중단될 수 있으니
미리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해보자.
나는 아침부터 비가 내려서 조금 걱정되어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전화 연결되자마자 정상 운항한다는 ARS 음성이 나왔다.
우도에서 제주도로 나가는 배편은
동절기 오후 5시 30분. 하절기 오후 6시 30이 마지막 배다.
따라서 이 시간쯤 되면 우도가 급격하게 조용해 지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문을 닫는다.
그 많던 관광객들이 싹 빠져나간 우도는 한층 더 아름다웠다.
꼭 하룻밤을 머물면서 조용한 우도를 즐겨보길 추천한다.
<차량 조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