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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 Nov 21. 2020

난 유치한게 좋아. 나이가 취향을 방해해선 안돼니까.

제주 한 달 살기 3일 차, 스누피 가든에 가다 

산굼부리 방문을 목적으로, 주변에 가볼만한 곳을 찾다 보니

<스누피 가든> 이란 곳을 알게 됐다.

‘아이들과 가기 좋은 곳’ 혹은 ‘사진 찍기 좋은 곳’ 이란 수식어에

혼자 여행을 다니는 내게 과연 적절한 곳인가 수 백번 고민을 하다가 

에잇, 여기까지 왔는데 온 김에 가지 뭐... 라며 

방문을 결정했다. 


막상 스누피 가든에 도착해서 

한껏 뛰어다디던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원참. 이렇게 신나서 좋아할 거면서 왜 고민한 거야??        

   



<나는 귀엽고 유치한 게 좋아, 그러면 안돼?>      

 

1. 

나는 일명 라이언빠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를 좋아할 테지만

나는 그 증상이 중증에 달할 만큼 심한 편이다.

     

내가 얼마나, 라이언을 좋아하는지.....................

지금의 남편은 프러포즈를 ‘카카오프렌즈’로 가득 꾸며해주기도 했다.  

신혼집 거실엔 무려  150,cm 짜리 거대 라이언 인형이 자리 잡고 있으며

집 안 곳곳마다 라이언이 고개를 쓰윽 내밀고 있다.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충 떠올려보았을 때 카카오프렌즈 관련 아이템이 최소 

70~80개 정도는 있는 듯하다. (이것만 팔아도 얼마일까 대체....)        


    

(손님용 방은 결혼 전에 쓰던 내 카카오프렌즈 용품들로 꾸며져 있다...) 


사실 처음부터 열렬히 라이언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캐릭터는 보노보노와 친구들이었고 

그 외 곰돌이 푸우라거나, 도널드 덕 등등 다양한 캐릭터를 사랑했다.     

유치한 것 좀 그만 사 모으라는 부모님의 핀잔에도

난 끊임없이 아기자기하고, 유치한 캐릭터를 사랑하며

방 한 칸 한 칸을 채우고, 사 모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뜨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귀엽고 귀여운 캐릭터를 사랑하는 걸 아는 

학생들은 종종 내게 카카오프렌즈 관련 상품들을 

선물해주곤 했다.      

하나 둘, 선물이 모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진짜 라이언 덕후가 되어 있었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조금 더 좋아하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 놓고 덕질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2.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나이 먹고 왜 이렇게 유치한 걸 좋아해요? 

왜 거기에 돈을 써요? “      


응? 그럼 뭘 좋아해야 하는 걸까.  


내 나이쯤 먹었으니까 

샤넬과 구찌에 열광하고 입생 로랑 신상 나오면 

눈이 번쩍 뜨여야 하나? 

내가 내 돈을 어떻게 쓰든, 

무엇을 좋아하든, 그건 내 개인의 자유다.     

내가 이런 캐릭터 상품 살 돈 모아서 

명품 가방이라도 하나 샀으면, 

명품 가방 밝히는 여자라고 욕했을 거면서. 

왜 남의 인생에 참견이야. 욕을 한 바가지 해줄걸. 

아직도 가끔 자다가도 일어나서 쉐도우 복싱을 날리게 

만드는 질문이다.      


개인의 취향을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고깝게 보거나. 

나이에 맞지 않는 취향이라고 지탄하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깝고 답답하다.         

                 

나이가 취향에 제한이 두게 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나의 취향이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취향이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이 아니라면  

그 취향을 마음껏 즐길 자유가 모두에게 있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 큰 성인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유치한 일. 

아니면 일명 오타쿠들의 영역. 

캐릭터 관련 상품들은 어린아이들이 

타깃이었던 시절이었다. 

캐릭터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지 않으면

‘키덜트’ 혹은 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까를 

떠올려 보면, 라이언빠인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요즘 분위기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스누피 가든을 거닐며, 함께 온 아이들보다 한 껏 더 신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계시는 부부들을 많이 보았다.

정작 아이들은 ‘스누피가 뭐야..?’라는 동그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까지 했다.

어린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 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이 곳은 ‘어른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였다.

나는 그 사실이 참 좋다. 

     

동심을 잃지 않는 일,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내가 좋아했던 것, 내게 위로를 주었던 작은 존재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들을 마음껏 즐길 줄

아는 나에게 감사한 하루다.  


                 


<정보>

스누피 가든은 제주시 동부 (구좌읍) 쪽에 위치해있다.

내부 시설도 아기자기하고 볼거리가 많았지만, 

외부 시설 (가든)이 생각보다 꽤 커서 

약 2시간가량을 머물렀다.     


연인끼리 혹은 가족끼리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조금 더 오랜 시간 머물게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싶다.

거대 정원을 갖춘 만큼 입장료가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다.  


성인 기준 입장료 18,000원  

(오전 11시 전 입장 시 20% 할인된 금액으로 입장할 수 있다.) 

나는 오전 11시 전 입장으로 티켓팅을 해서 방문해서 

14,400원의 입장료를 냈다. 

그 외 소셜 사전 예약 시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은 최대 2,000원

정도인 듯했다. 


입장료에 부담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할인율이 높은 

이른 아침 방문을 추천한다. 


홈페이지 : http://www.snoopygard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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