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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May 17. 2021

Set 03. 뺑뺑이 안경

# 안경 = 부모님의 부채감


초등학교 1학년 겨우 8살된 해에 안경을 쓰게 됐다. 어릴적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셨고 식당 바로 위에 있던 집에서 동생과 나는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애니메이션 <꼬마 자동차 붕붕>를 가장 좋아해서 비디오가 닳고 닳도록 동생과 함께 봤다. 부모님이 가끔 방으로 올라와 "TV 멀리 떨어져서 봐"라고 잔소리 하셨지만 미취학 아동이었던 우리가 그 말을 들을리 없었다. 늘 코 앞에 TV를 두고 살았다. 시력이 안 좋아지는 건 당연했다.


이거 아시는 분! 화석의 라떼 이야기. 아직 주제곡도 기억난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 ♬


초1, 안경을 처음 맞추던 날 기분이 좋았다. 엄마랑 시내에 나가서 처음 가보는 안경가게도 구경하고 어른들만 쓰는 줄 알았던 안경을 갖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은 무척 마음 아파하셨다. 본인들이 바쁜 탓에 눈이 나빠질 걸 뻔히 알면서 늘 TV를 보게 한 것을 미안해 하셨다. 그 미안함은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됐다. 결국 22살이 되어 수술을 시켜 주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7년 전 렌즈삽입술은 비싼 시술이었다. 눈이 워낙 나빠서 다른 수술은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 "꼭 해주고 싶었다"고 하시며 수술을 결정하셨다.


# 흐릿하고 초록한 세상


이젠 안경 쓰던 시절이 기억도 안날 만큼 안경이 없는 삶에 익숙해 있지만 사실 내 인생의 대부분은 이 안경과 함께 였다. 눈이 정말 많이 나빠서 아침 기상부터 취침 직전까지 안경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했으니까. 안경 알도 얼마나 두꺼웠는지 모른다. 말 그대로 뺑뺑이 안경을 썼다. 마이너스 시력은 없다고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마이너스 9 수준의 시력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때 일이다. 체육수업을 듣는데 뜀틀을 뛰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생 때 키가 매우 작은 편이라 다른 친구들보다 뜀틀 넘기가 쉽지 않았다. 폴짝 폴짝. 그러다 뜀틀에 발이 살짝 걸렸고 매트 위로 그대로 떨어졌다. 매트에서 몸을 일으키고 옆에 떨어진 안경을 보니 안경 다리 하나가 똑 하고 부러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경이 깨지진 않은게 다행)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안경을 주머니에 넣은 채 쫄래쫄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던 중에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파트 단지에 쭉 심어져 있는 높다란 나무가 하늘과 어우러져 있었다. 5월이라 유난히 햇볕이 좋았고 하늘도 파랳고 나뭇잎은 푸르렀다. 20년 가까이나 지난 일인데 생생히 장면이 기억날 만큼 예뻤다. 눈이 워낙 나빠서 흐릿한 장면이라 더 예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수채화 물감이 번진 것 마냥 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다. 너무 예뻐서 그 자리에서 한참 하늘을 바라봤다.


# 교복을 벗고 안경을 벗고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딱히 사고도 치지 않는 학생이었다. 이성에 관심이 없었고 친구와 노는게 좋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그래서 당시 잘 꾸미고 다니는 친구들은 렌즈를 끼고 다녔는데 대학교 입학 전까지 안경을 착용했었다. 대학 합격 후, 처음으로 콘택트 렌즈를 구입했다. 하지만 대학교 OT 당일, 안경을 쓰고 가는 우를 범했다. 스무살이 되고 대학생이 된다고 메이크업에 능숙해지고 렌즈를 끼는 게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해본 화장은 서투르기만 했고 렌즈도 불편했다. 다시 생각해도 부끄럽고 참 앳된 모습이다. 


인생의 2/3 이상을 안경을 꼈기 때문에 다시 보기 힘든 사진들이 참 많다. 절대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아서 지우려고 하다가 다 지우자니 아까워서 두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옛날 사진들. 언젠가 꺼내보면 풋풋하고 귀엽게 느껴지는 때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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