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귄 Mar 20. 2021

Set 02. 아이 해브 어 드림

드림캐쳐 한 줄, 딸기 한 줄

몇 년 전, 동남아 여행 중에 만난 물건이 있다. 드림캐쳐였다. 야시장이나 관광지 등 어딜가나 드림캐쳐를 팔고 있었다. 같이 여행을 간 사람이 말했다. "이걸 침대 머리 맡에 걸어두면 악몽을 잡아주고 좋은 꿈을 꾼대요." 나쁜 꿈을 잡아주는 물건이라니. 그 말에 구매를 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다 싶었다. 

 


# 촉감까지 생생한 악몽

난 꿈을 많이 꾸는 아이였다. 거의 매일 같이 꿈을 꿨다. 그게 또 또렷하게 기억나고 촉감도 생생할 정도인 경우가 많았다. 시답지 않은 개꿈을 꾸는 날도 있지만 어젯밤 꿈이 어땠냐는 그날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기도 한다. 좋은 꿈을 꾸면 괜히 아침이 즐겁고, 슬픈 꿈을 꾸면 울다가 깨서 오전 내내 우울하기도 하다. 악몽이라도 꿔서 끙끙 앓다가 일어나면 팔다리까지 아파서 컨디션이 안 좋다.


특히 끔찍한 악몽을 자주 꿨다. 부모님이 하시던 식당에 강도가 들어 쫓기는 꿈을 반복해서 꾼다던가, 집이 활활 타는 장면을 멀리서 본다던가... 악몽을 꿀 때면 찝찝함이 며칠간 이어지기도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어릴시절 꿈 속 장면이 많이 떠오를 정도다.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꿈을 꿔도 잘 기억을 못한다던데 서른이 다 된 지금까지도 자주 꿈을 꾼다. 이전만큼은 아니라도 꽤 많은 부분이 떠오르는 건 여전하다.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도 점차 끔찍해진다. 연쇄 살인마가 전기톱을 들고 쫓아오는 꿈, 나쁜 일에 휘말려서 쫓기는 꿈, 무기를 든 사람과 싸우는 꿈 등 별별 꿈을 꾼다. 


흉흉한 뉴스를 보면 더 하다. N번방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웠을 때 관련해서 꿈을 꾸기도 했고 아동학대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비슷한 내용의 꿈을 꿨다. 심지어는 북한의 넘버 원이 한동안 모습을 들어내지 않아서 뉴스에 연일 보도되었을 때도 전쟁 나는 꿈을 꿔서 황당했던 적도 있다.


#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 데자뷰

꿈을 지나치게 생생하게 꾸다보니 가끔 현실이랑 혼동할 때가 있다. 흔히들 말하는 데자뷰(deja vu)인 것 같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어? 이 상황 전에도 있었는데'라며 기시감을 느끼는 경우가 잦다. 


한번은 학생시절 수련회를 갔다. 거기서 너무 낯이 익은 장소가 보였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분명 낯이 익었다. 몇해전 아빠랑 이곳을 방문하는 꿈을 꿨던 것. 혹시나 싶어서 부모님께 말했지만 역시나 우리가 가보지 않은 지역이었다. 부모님의 직업상 여러 지역을 다니지 못해서 분명 가볼 일이 없는 곳이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말도 안되는 일도 있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을 보게 됐다. 능글맞은 잭 스패로우와 충격적인 비주얼의 데비 존스 캐릭터를 보고 빠져 버린 것. 어릴때라 내용은 이해 못 했지만 캐릭터와 특유의 분위기가 취향을 저격했다. 그리고 꿈을 꿨다. 지구 평평설에서나 볼 법한 바다 너머 폭포에 배가 한 척 뚝 떨어지는 장면을 봤다. 꿈에서 깨고 엄마에게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에서 해적선이 바다 폭포(?)로 떨어지는 장면이 있었어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1년 정도 뒤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예고편을 TV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장면이 예고편 영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박한 장면이 아니니까 어디선가 본 장면을 꿈에서 캐리비안의 해적과 엮은 걸까? 아님 이조차도 모든 게 꿈이었을까?)


예지몽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굉장히 단편적인 장면만 꿈을 꾼다. 그리고 데자뷰를 겪는 그 장면들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었던 적은 없어서 거창한 무언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또한 개꿈 중에 하나니까.


# 꿈이길 바라는 꿈

중학생 때 엄마의 건망증이 심했던 기억이 있다. 평소에도 깜빡깜빡 하실 때가 있었는데 유달리 그 시기가 그랬다. 가족들이 조금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느날 저녁을 먹고 여느 때처럼 네 식구가 TV 앞에 앉아 후식으로 딸기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딸기까지 다 먹고 상을 치웠는데 엄마가 말했다.


"아 맞다! 우리집에 딸기 있는데."


그 순간 집이 조용해졌다. 아니, 싸해졌다. 아빠가 말했다. "방금 딸기 먹었잖아." 엄마는 부인했다. 딸기 먹고 막 치우지 않았냐고 아빠가 다시 말했다. 기나긴 정적... 그날 놀란 엄마가 엉엉 우셨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달랬고 동생과 나는 충격 받은 얼굴로 그걸 지켜봤다. 어렸던 나는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와 놀다가 울어버렸다. 엄마에게 큰 일이 난 것 같았다. 


다행히 그 뒤로 다시 평소처럼 엄마의 건망증 증세가 줄었다. 당시 부모님은 새로 시작한 사업으로 잠도 못자고 고생했던 시기라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쉽게 이 얘길 꺼낼 수 없었다.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고 나 못지 않게 모든 식구가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뒤에, 취업을 할 만큼 큰 이후에 이 날 벌어진 일을 입밖으로 꺼냈다. 근데 돌아온 가족들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 일 없었는데? 너 꿈 꾼거 아냐?"


꿈이라고...? 난 그 일로 펑펑 눈물을 쏟았고 10년 간 그 날 일을 담아두고 있었는데 꿈이라고? 할머니 치매 증상이 있었을때 그때 일이 떠올라서 끙끙 속앓이를 했는데 꿈이라고? 그럴수가 있나? 엄마는 물론이고, 아빠도 동생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정말 생생하게 꿈을 꿔서 현실이랑 착각한 걸까? 


꿈이라면 정말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Set 01. 노래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