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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Aug 14. 2023

엄마, 내가 왜 D와 결혼하는지 안 궁금해?

주변 언니들 얘기를 들어보니 결혼 전에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그 말을 이해 못했는데 나도 결혼할 때 엄마와 이야기 하는게 힘들었다. 처음으로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의 섭섭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내맘대로 결혼하겠다고 선언하고 엉뚱한 방식으로 결혼식을 치른 것에 대한 속상함이었을까?


프로포즈 후,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이 웨딩촬영이었다. 일단 웨딩 패키지가 아니어서 선택할 수 있는 안들이 많았는데 남자친구와 나는 스냅 촬영만 하기로 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비용. 결혼식만으로도 돈이 정말 많이 드는데 최근에 결혼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촬영비가 만만치 않았다. 몇 백만원을 들여서 찍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굴만 다르고 다 똑같은 포즈로 찍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몇 시간 동안 고생해서 찍는데 그런 결과물이라니. 친구들 말대로 유일하게 공주놀이 할 수 있는 경험이라 특별하긴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내 취향이 전혀 아니라는 것. 몇 년 전에 지인이 제주도에서 웨딩 스냅 사진을 찍었던 게 기억에 남았고 스냅 촬영을 선택하게 됐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왜 번듯하게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지 길바닥에서 사진을 찍냐, 돈이 없어서 그러냐, 엄마가 보태줄테니 다시 알아봐라... 등등 속상해 하셨다. 물론 양가에서 돈 받는 거 없이 결혼식을 치르다보니 넉넉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우리 둘에게는 나름 뜻 있는 촬영이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연애를 해서 매번 동네에서만 데이트를 했었고, 주로 데이트 했던 장소에서 웨딩 스냅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지로 유명한 철길에서 촬영을 했다. 철길과 그 일대 카페 등 연애하는 동안 자주 갔던 곳이었다. 

웨딩 촬영 컷

우리는 결과물이 참 마음에 들었지만, 엄마 눈에는 전혀 아니었나 보다. 이때부터 엄마의 불만이 시작됐다.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브루어리 펍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했을 때 이해가 안된다며 난색을 표하셨다. 당연히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을 했었던터라 친척 어른신들 불편하게 안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꾸역 꾸역 진행했다. 


결혼식 두어달 앞뒀을 때 결국 일이 터졌다. 


엄마가 전화 와서 하소연을 하셨다. 하필이면 엄마가 일하시는 곳 옆 가게 이모도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는데 비교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모는 새 식구될 사위가 얼마나 싹싹한지부터 젊은 사람이 알뜰해 40평대 집 한채를 벌써 했다는 둥, 상견례를 했는데 그 집에서 훌륭한 딸 키워줘서 감사한다고 재차 연락이 왔다는 둥 입이 닳도록 엄마에게 자랑하셨다. 엄마도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그럴만한 게 없어서 속상하다고 하셨다. (하여간 옛말에 엄친아 엄친딸은 멀리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럴만도 한게... 내 남자친구는 열심히 살았던 건 맞지만 회사 다닌지 3년도 안된 신입사원이었고 외국 소재 대학은 학자금대출이 안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렸었고 회사 다니면서 다 갚아서 빈털터리였다. 1살 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연하인 것도 마음에 안 들어하셨던 엄마에게 경제적인 부분이 사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싹싹함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유학생활로 중학생 때부터 혼자 살았던터라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 지내는 걸 낯설어했다. 한국에 들어온 이후 회사생활 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어른들 보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가장 큰 요인은, 그동안 너무 착한 딸 노릇을 했던 큰딸이 결혼 문제로 엄마와 갈등을 일으킨 것이었다. 결혼식이며 웨딩촬영이며 드레스며 ... 나는 30년 가까이 엄마의 반대 편에 서 본적이 없었다. 놀랍게도 엄마와 단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다.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보통 엄마의 말을 따르거나 혹은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데 시시콜콜 다 알려줄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래서 엄마는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셨다. 맙소사!


처음에는 엄마 입장에선 속상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미안하다는 말로 달랬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속상함이 극에 달하고 있었고, 나 역시도 결혼식 준비로 힘들었던 터라 참기 힘들었고 결국 혼자서 본가로 내려갔다. 아빠는 출근하고 동생은 마침 여행을 가 있어서 엄마와 단둘이 집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엄마는 왜 내가 D랑 결혼하려는지 그건 왜 안 물어봐?

둘다 TV로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엄마가 되물었다. "이유가 뭔데? 그래 물어나보자. 왜 넌 걔랑 결혼하고 싶은건데" 그제서야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굉장히 오래되고 케케묵은 낡은 이야기였다.


"엄마, 나는 결혼이 원래 하기 싫었잖아. 그 이유가 엄마였어. 나에게 며느리가 된다는 건 이유도 없이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거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냥 딸 낳았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엄마한테 막 대해도 엄마는 며칠 속상해하다가도 다음 명절, 다음 생신 때 찾아뵈면서 며느리 노릇했잖아. 우리 엄마도 늦둥이로 태어나서 외할아버지가 거의 무릎 위에서 키웠던 귀한 딸이었는데. 엄마는 괜찮았는지 몰라도 난 아니었어. 그게 다 상처였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빠지만 왜 엄마를 안 지켜주는지 원망했어. 할아버지가 모진 말 하면 한 마디라도 하셔야지. 그래서 D의 아버님을 뵀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날 미워하실까봐."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어떤 표정이었는지 모른다. 못 봤기 때문에. 

"그럼 D랑 결혼하면 안 그럴 것 같니?" 엄마가 물어봤다.


"응. D랑 결혼하면 적어도 내가 나인채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랑 D는 연애하면서 가치관에 대한 대화를 많이 했거든. 그래서 이 사람은 내 삶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나랑 D는 각자 잘하는 걸 하면서 살아. 집안일 못 하는 나 대신 D가 대부분 하고 데이트 코스는 내가 짜. 서울 지리 잘 모르는 D보다 내가 더 잘 하는거니까. 


결혼하고도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 좋겠대. 단순 아르바이트 말고. 돈을 조금 적게 벌더라도 승진 같은 성취감이 있는 일을 하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 그래서 D는 외국 회사에서 오퍼와 왔는데 안 갔어. 영어 못하는 내가 가면 가족도 친구도 자주 볼 수 없이 남편 퇴근만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삶이 될거라고.


내가 몇 살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면 조금 더 넉넉하게 결혼할 수도 있겠지. 근데 D가 그 나이 되면 똑같은거잖아. 심지어 이미 D는 7년 일한 나보다도 더 벌어. 모을 시간이 없었던거지 이제부터 모아서 안정적으로 가정 이룰 수 있다고.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독립심 강한 사람이라는 거였어. 한 살 많은 나도 이렇게 엄마한테서 독립 못했는데 D는 이미 독립했더라고.


요리학원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춤을 배우러 가길 응원하고, 내가 더 좋은 회사로 더 좋은 조건에 이직하길 바라고. 결혼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D한테는 아니더라고. 둘이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각자의 생활도 있더라고. 결혼생활하면 힘든 일도 있을거고 연애 때처럼 챙겨주지 못 할수도 있겠지. 그래도 연애하는 3년내내 요리를 해주거나 반찬해주거나 맛집을 데려가거나 내 밥은 꼭 챙기는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어떻게 결혼 생각을 안해."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연애 때나 잘 해주는 거라고 순진하다고 생각했을까? 시집살이 하는 엄마를 보면서 힘들었다는 내 말이 상처였을까? 


그날 엄마와 나는 술을 진탕 마셨다. 평소 못 했던 대화들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나에게 우리 둘 가치관이 많이 다른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당연하지 엄마. 나 엄마아빠랑 떨어져 산지가 벌써 10년인데.
당연히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 됐지.


그럼 D와는 맞냐고 했다. 잠깐 고민한 나는 답했다. "다 맞진 않지. 어떻게 다 맞겠어요. 그래도 가장 큰 부분들은 잘 맞으니까. 그리고 10년 혼자 살아보니까 평생 혼자 살 자신은 없더라고. 그래서 이정도 맞는 D랑 살면 좋겠다 싶었어요."


다음 날, 속 쓰린 많이 쓰렸다. 엄마랑 너무 술을 많이 마셨던 탓이었다. 속 아픈 나는 쇼파에서 나뒹굴었다. 그 옆에 앉은 엄마가 말했다. "보니까 D랑 우리 가족은 참 생각이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우리가 D를 더 이해해보도록 노력해볼게. D도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잘 지내보려고 노력해 줬으면 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달라서
너가 중간에서 참 힘들었겠다.

속 쓰린 대화 이후에 엄마는 더이상 나의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결혼식에서도 얼굴이 참 밝으셨다. 우리의 요란스러웠던 결혼식도 정말 마음에 들어하셨다. 식이 끝난 한참 후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결혼식 때 왜 안 우셨어요? 난 엄마나 아빠가 울 줄 알았어."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우린 그날 정말 좋았어.
너가 D와 함께 있는 걸 보니까 든든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어.


https://brunch.co.kr/@sosohappy-you/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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