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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Dec 04. 2022

영어 강사가 되었다

새로운 밥벌이


브런치북 공모전을 끝내고 본업에 집중했다. 계속 영업하고 계속 전화하고 계속 미팅했다. 아는 업체 대표와 식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날은 유독 하늘에 별이 많았다. 같은 현실인데 내가 있는 곳은 각박하고 저쪽은 아름다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본업으로만 밥벌이를 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히 존재함을 나는 깨달았다. 글은 직업이 될 수 없고,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어느 작가의 말도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의 본업은 직업이 아닌 것이었다. 그저 손가락으로 한국어를 펼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곧장 절로 향했다.



대웅전에 들어가서 방석을 깔고 앉았다. 황금빛 불상을 쳐다보면서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스스로에게 지겹도록 한 질문을 다시 해야만 했다. 은은한 향내와 종소리, 목탁 소리에 몸을 녹이며 생각의 늪에 빠졌다. 문득 영어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에 외국어 영역(지금은 영어 영역이라고 부른다)은 1~2등급을 유지했다. 내신 영어는 다 맞거나 하나 틀렸다. 취업할 때 몇 번 본 토익 점수 평균은 950이었다. 토익스피킹과 오픽은 각각 레벨 7, IH 혹은 AL이었다. 전부 독학으로 공부한 결과였다. 이게 어쩌면 밥벌이 수단이 되겠다 싶었다. 나는 절에서 나오자마자 휴대폰으로 학원 강사 자리를 알아보았다.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괜찮은 강사 자리가 있었다. 나는 전에 저장했던 이력서를 수정하고 제출했다.


3일쯤 지났을까. 영어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확인해 보니 집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였다. 지하철로는 5분~10분. 업력도 5년 이상에 초등부터 고등까지 가르치는 입시 전문이었다. 시범 강의를 준비해서 와줄 수 있냐는 부탁에 나는 할 수 있다고 답장했다. 이틀 정도 시간을 들여서 나는 문법과 독해 강의를 준비했다. 준비하면서 원장에게 무슨 말을 할지 정리했다. 내가 영어를 독학하면서 배운 점이 3가지가 있다. 첫째, 영어는 반드시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문장 통암기는 차선이 아니라 최선이다. 셋째, 한국어를 잘해야 영어를 잘한다. 면접 당일에 나의 이 세 가지 영어 학습관을 전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면접 당일,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학원에 도착했다. 원장이 환대해주었다. 기존 강사가 그만두어서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원장은 말했다. 내 이력서를 봤는데 독특해서 궁금했다는 말을 원장은 덧붙였다. 나는 살아온 배경과 지금 하는 본업과 위의 3가지 영어 지론을 설명했다. 원장은 자기와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다며 기뻐했다. 그리고는 고교 독해 교재를 꺼내서, 실례지만 이 한 문단을 해석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해석에 문장 구조, 전치사와 단어의 뉘앙스를 곁들여서 풀이했다. 원장은 시범 강의를 볼 것도 없다고 하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 친절한 태도, 아쉽지 않은 월급, 새로운 자극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하면서 모르거나 힘든 점이 있으면 주저 없이 알려 달라고 원장은 말했다. 휴식 시간은 일한 시간으로 쳐주겠다고도 했다. 나는 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나왔다.



이렇게 나는 영어 강사가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는데 노동 강도는 적당하다. 무엇보다 영어를 지속해서 탐구하는 계기가 생겨서 좋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내가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내 설명을 이해하고 좋아하면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더 기를 쓰며 공부하고 있다. 요즘은 아침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수업을 준비한다. 저녁에는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하거나 독서와 운동에 신경 쓴다. 하루가 바쁘게 돌아간다. 적응할 때까지 일에 집중하느라고 브런치에 글을 남기지 못했다. 이제는 숨통이 조금 트였다. 시간을 내서 학원에서 경험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영어에 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려고 한다. 인간의 삶은 신비롭다. 밥벌이 수단이 하나 늘었다고 금세 안정을 되찾는다. 균형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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