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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Nov 07. 2022

다시 쓰는 글

온라인 세상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브런치 북 공모전에 응모하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9월 중순부터 말까지 쉬다가 10월 초에 생각을 정리할 겸 문장을 풀어내려 했다. 글이 몇 문장 안에서 헤맸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글이 나아가질 못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싶어서 워드를 아예 켜지 않았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일기를 제외하고 내가 쓴 글은 작은 토막조차 없다. 2020년부터 늘 함께 했던 MS워드는, 그렇게 멈추었다. 대신에 주변을 관찰했다. 현생에 밀착하여 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생각의 탑이 어느 정도 쌓이니 다시 글을 쓸 때가 왔음을 알았다. 오늘이 그날이다.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쓸모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시기와 질투, 자랑과 허세, 헛소리와 비논리, 무식과 천박으로 무장한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주식과 부동산이 치솟던 당시에, 대한민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인간의 추악함이 들끓었다. 돈 좀 번 사람들은 그 치솟음에 편승하지 못한 사람들을 개돼지라고 폄하했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안목이 뛰어난 덕이지 상승장과는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 치솟음에 안달하여 편승한 사람들은 지금 곡소리를 하고 있고, 자기 잘난 맛에 떠들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남은 사람들은 상대를 향한 또 다른 모욕을 생산하고 있다. 재테크에서 알맹이 없는 비난은 기본값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이 밖에도, 별것 아닌 일을 별것으로 만들어서 화를 키우는 세력이 있다. 대표적으로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들이다. 이 세력은 세상만사 모든 글을 남자와 여자 시선으로 해석한다. 남자라서 당했다, 여자라서 당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이 남긴 댓글에는 수많은 사람이 달려들어서 서로 뒤엉킨다. 이번 참사에 관한 기사나 영상에도 그러한 댓글이 달렸다. 한쪽 성별이었기 '때문에' 죽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정작 한쪽 성별의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자리에 그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 삿된 영혼들이 펼치는 행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짜 뉴스를 진짜 뉴스로 둔갑시키거나, 만인이 보는 공간에 남편 욕, 아내 욕, 시어머니 욕, 자식 욕을 올린다. 특정 정당을 옹호하면서, 반대파를 대놓고 덜 떨어진 인간 군상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주옥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압도적이다. 하나같이 자극적이고 단편적이며 깊이가 얕다. 삿된 영혼들이 남긴 콘텐츠에 젖어들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닮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가 두려워서, 요즘 온라인과 거리를 두고 있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생기거나, 물건 리뷰가 궁금할 때만 커뮤니티를 확인한다.



전에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한 달 동안 온라인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예전에는 커뮤니티별로 고유한 문화가 있었다. 그 문화의 공통분모는 정과 예의였다. 상대를 위하고, 각자의 값진 경험을 나누며 일상에 지친 사람들끼리 서로를 감싸주었다. 그래서 재미가 있었다. 소소한 행복을 만드는 맛이 있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어느 커뮤니티나 날이 서 있다. 뻔뻔함이 도를 지나치고, 집단이 작정하고 현실을 왜곡하여 멀쩡한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놓는다. 온라인은 현실의 거울이라고 한다. 현실이 녹록지 아니하니, 온라인도 이 지경에 이른 듯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쓸모가 의문스럽다는 말은 결국 현실도 쓸모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말과 동일한 것인가. 현실이나 가상이나 메말라 간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책과 운동과 가족에 의지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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