컹컹!
이따금씩 누렁이가 짖어대면 그제야 집을 둘러본다. 지루했다. 작은 집에 나와 누렁이 둘 뿐이다. 침묵 속으로 잠길 듯 고요한 적막이 연신 하품을 만들었다. 누렁이는 긴 속눈썹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졸고 있다. 문틈이 덜컹이는 소리, 나무 마루가 삐걱거리는 미세한 소리에도 몸이 움찔거렸다. 도대체 엄마는 언제 오시는 걸까. 스산한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파스스 떨렸다.
몸이 으슬으슬하다.
올려다본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어둡다. 마당으로 어둠이 흘러내린다. 비를 머금은 축축한 공기가 누렁이의 마른 털을 눅눅하게 만든다. 흐린 하늘이 낮의 기운을 몰아내자 졸음이 쏟아졌다. 꾸뻑! 졸았나 보다. 허리를 세우며 잠을 쫓아본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정신이 몽롱하다. 곧 큰 비가 올 것 같다.
컹컹컹!
졸고 있던 누렁이가 어느새 몸을 일으켜 대문을 향해 힘껏 짖는다. 누가 온 걸까? 투둑 투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삐그덕.
조심스럽게 낡은 대문이 열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부모님은 캄캄한 밤이 되어야 올 텐데.
대문 사이로 긴 생머리가 불쑥 들어왔다. 비와 함께 온 낯선 사람이다. 지나치게 길고 검은 생머리, 허벅지까지 끌어올린 검정 스타킹, 봉숭아 꽃잎처럼 붉은 입술과 큰 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짧은 교복 치마에 흰 셔츠, 목에 매달린 빨간 나비 리본. 차림새를 보니 고등학생이다. 처음 보는 얼굴, 낯선 그녀의 등장에 누렁이가 잔뜩 흐린 하늘만큼이나 예민하다. 칩입 자라는 듯 요란스레 짖어댔다. 마루에 걸터앉은 파수꾼 같은 나와, 천둥을 예진하듯 으르렁거리는 누렁이는 순간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뒷걸음질을 쳤다. 날카로운 그녀의 눈빛과 충돌했다.
“누구세요?”
“뒷방에 사는 소이 친구야.”
“아, 소이 언니 지금 없는데요?”
“응. 알아. 소이 방에 두고 간 게 있어서. 그거 가지러 왔어. 금방 가지고 나올게. 걱정하지 마.”
걱정이라니, 비밀을 감추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더니 들고 온 검정 비닐봉지를 몸 뒤로 감추었다. 검정 비닐에서 어떤 냄새를 맡았는지 누렁이가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오싹하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집안으로 슬금슬금 들어오자 누렁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끈적이는 침을 뚝뚝 흘렸다. 짧은 순간, 누렁이와 나, 그리고 그녀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들어갈게.”
“잠깐만요! 그런데, 소이 언니 방 열쇠는 있어요?”
“응. 어디 두는지 알아.”
그녀의 큰 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낯선 그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뿐이다. 방에 들어간 그녀는 긴 시간이 지나도 나오질 않았다. 코딱지만 한 작은 방에서 두고 간 물건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텐데. 걱정이 의심이 되는 순간, 후둑후둑!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양철 지붕 위로 요란하게 퍼붓는 빗소리가 마치 빈집을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무서움을 감지하기 충분한 나이다. 빗소리에도 바스락거리는 검은 비닐봉지의 존재는 확연히 들렸다. 그 소리에 반응하듯 누렁이는 장난감 공을 물어뜯다 찢어발겼다. 검정 비닐봉지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문은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왔다. 초조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지 않은가! 용기 내어 숨죽이며 소이 언니 방으로 다가갔다.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진흙에 빠진 다리가 땅속 정령에게 사로 잡힌 듯 무거웠다.
숨을 참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눈을 찡그리며 들여다보았다. 긴 생머리의 그녀 앞에는 풀어헤친 검은 봉지가 놓여있었다. 옷장은 활짝 열려있고 옷은 모두 바닥에 널브러졌다. 옷은 왜 다 꺼내놓은 걸까? 무얼 찾길래. 긴 생머리에 가려 그녀의 수상한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몰려올지 무엇을 쓸어갈지 모르는, 그녀가 빚어내는 무거운 공기가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밀어냈다.
우르르 쾅쾅!
잔뜩 성이 난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심장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알고 싶었다. 해체된 검정 봉지에서 무엇을 꺼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바스락거리고 찌그럭거리는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고 싶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마치 위험을 느끼면 촉수를 거두는 말미잘처럼 겁에 질려 몸을 돌렸다.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와 마루 끝에 걸터앉아야 한다. 숨죽여 제자리에 돌아와서도 낯선 그녀의 특이한 행동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직감은 버릴 수 없었다.
임무를 완수한 듯 긴 생머리의 그녀는 떠났고, 이윽고 소이 언니가 돌아왔다.
“언니! 이제 와?”
“응 현주야. 왜 혼자 여기 있어 비도 오는데. 천둥도 치고. 안 무서워?”
“언니, 나 사실 무서워. 조금 전에 처음 보는 언니 친구가 언니 방에 들어갔다 나왔어.”
순간, 하얗게 질린 소이 언니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소이 언니는 누렁이 소리와 천둥 치는 빗소리보다 더 다급하게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방으로 뛰어갔다. 뒤쫓아가서 어지러운 방 분위기를 말해주고 싶었다.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 사이로 소이 언니 방을 해 집는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아, 그런데 언니와 내가 마주한 방은 깨끗했다. 단지 옷장이 활짝 열려있고, 옷들이 빨래를 개어 놓은 듯 반듯하게 개어져 있다는 점만 빼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손 다리미질을 하면서 착착 개어 놓은 옷산을 새어 보았다.
하나.
둘.
셋.
그때 소이 언니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으악!”
한쪽 구석에서 소이 언니가 이상한 뭉치를 발견했다.
깔끔하게 도려진 자크, 잘린 단추, 반토막난 원피스, 싹둑 끊어진 고무줄.
머리가 쭈뼜서고 소름이 끼쳤다.
그제야 긴 생머리 밑에서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던 낯선 그녀의 몸짓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어린 나는 그 이후로 오랫동안 긴 생머리의 그녀가 겁을 주며 쳐다보는 악몽을 꾸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날 꽤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끝)
* 이 이야기는 저희 집 뒷방에 새들어 살았던, 고1 소이 언니에게 일어난 실제 사건으로, 삼각관계가 그 이유였습니다. 열 살 어린 저에게 긴 생머리의 그녀는, 오랫동안 공포 영화 속 주인공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작은 기억의 조각을 각색하여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