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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Mar 28. 2022

폐인이 되었다.

심심할 때 글쓰기

백수가 된지 어느 덧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첫 일주일은 정말 행복했다.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난 해방으로 그 시간 자체가 존귀했고 자유로웠다. 그리고 이주 차 조금씩 잘못되가는 걸 느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른 일을 배우면서 운동도 하고, 미라클모닝을 비롯해 긍정적인 습관으로 가득 채운 삶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늦잠을 시작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늦게 자니 늦게 일어나고, 하루를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때문에 괜스레 기분이 나빠 하루를 망친다. 샤워를 해야 정신이 좀 맑아지는데 눈 뜨면 2시요, 샤워하면 8시다. 잠과 잠 사이의 시간이 있지만 그때마다 의미없이 인터넷 커뮤니티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눈팅만 할 뿐이다. 살아있지만 죽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 증상 중 '무기력증'이 있다. 혹시나 백신의 부작용이 아닐까?하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그냥 내가 게을러진 거다. 혹은 태생이 게으른 사람일 수도 있는 거고……. 부작용이 한 달이 넘은 지금 오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고,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는 핑계를 찾는 것 같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자유를 보장받는 삶보단 약간의 강제성이 있는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나 보다. 근무가 자유로운 프리랜서보단 스케쥴이 정해져있는 평범한 직장인이 어울리는 사람. 내가 조금 더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면 대학생이 아니라 군인처럼 살아야 한다. 일정 시간에 일어나고, 일하고, 공부하고……. 근데 백수된 지 한 달이 된 지금 다시 일하는 게 겁난다. 겁나기 보단 귀찮고, 몸과 정신이 힘든 일을 억지로 하는 게 싫다. 물론 비빌 언덕이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당일알바라도 해야하지만 운 좋게도 여자친구라는 비빌 언덕이 있어 그냥저냥 살고 있다.


계속되는 무기력과 우울감에 젖었을 때 조금씩 나를 돌아봤다. 누군가는 나보고 우직하다고 했는데 아니었다. 나 역시도 굉장히 부지런하고 우직한줄 알았는데 굉장히 얇은 나무 막대기더라. 벽을 때리면 툭하고 부러질 것만같은 그런 나뭇가지. 


퇴직 후 지금까지 반복되는 나른함과 게으름 그리고 무기력증의 원초적인 이유를 알았다. 매일 나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물었고 그 답을 찾았다.

나는 대구에 있는 베이비 스튜디오에서 3년을 근무했고, 퇴직금을 못 받았다. 회사사정이 힘들다는 말에 나눠서 줘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세금 신고를 내 월급보다 적게 신고해서 원래 퇴직금보다 안 나온다고 하더라. 여기서 당연히 따져야 하는 게 맞는데 정인지 혹은 앞으로 사진 일할 때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한 내 방어기제였는지 나는 결국 퇴직금을 안 받는다고 하고 나왔다. 퇴지금을 못 받음으로써 미래 계획이 꽤 많이 틀어졌고,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제대로 따지지 못한 내가 한심하고 너무 분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예나지나 병신머저리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살자 맹세했것만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슬프고, 슬프고, 슬프다. 


나라는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내가 말했던 멋있는 사람,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내가 밉기에 오늘도 스스로를 자조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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