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무개 May 12. 2022

#2. 실장님,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백수 일기

다시 스튜디오, 오랜만에 실장님이 출근하셨다. 한동안 출근하지 않으셨던 실장님이 출근하셨다라……. 아마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러 오신 것일 테지. 우리는 스튜디오에 있는 테라스에 가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첫 입사 때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아이랑 노는 것과 부모님을 상대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를 웃기는 건 힘들다는 것, 대구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유독 진상이라 불릴만한 손님이 많았던 것, 코로나 이후 정말 스튜디오가 망할 뻔했다는 것……. 이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밑밥으로 깔고 잠시 후 우린 본론인 '퇴직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대답에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아무개 씨 퇴직금 있잖아……. 우리 스튜디오가 너무 힘들어서 못 줄 것 같아……."

"애초에 우리 스튜디오는 원래 퇴직금이 없는 구조거든..."

실장님의 말씀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어……? 퇴직금이란 게 있었어……? 어릴 적부터 정말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의점, 노래방, 피시방, 식당, 호텔, 술집 그 외의 공연 관련 일까지. 학업과 병행하면서 했던 터라 대게 삼 개월 정도만 하고 그만뒀던 일이 잦았다. 후에는 삼 개월만 뽑는 알바 자체가 거의 없어 공연 쪽 일로 넘어갔고, 국립극단을 제외하곤 배우를 하든 무대 일을 하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일했던 적이 없었다. 그곳에선 그게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래서 퇴직금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달랐다. 나는 이 스튜디오에 사대보험을 가입한 채로 삼 년을 일했기에 원칙상 퇴직금을 받을 조건이 된다.  

퇴직금 : 퇴직하는 사람에게 근무처에서 지급하는 돈. 퇴직금은 직장의 규모에 관계없이 1년 이상 일한 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야 하는 돈이다. 퇴직금 계산기로 내 퇴직금을 산정해 보니 580만 원, 약 600만 원 가까이 나오더라. 나오는지 몰랐다가 알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그것보다 처음부터 못 받는 위치라면 상관이 없었는데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 받는 다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 없던 돈이라 생각하면 괜찮지만 퇴직금은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자 권리였고,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못 준다는 실장님의 말씀에 내 표정도 자연스럽게 굳어갔다.

"대신에 이아무개 씨 원래 실업급여 못 받는데 그거 받을 수 있게 내가 노력해 볼게. 그거 많이 나오던데 그걸로 퉁치면 안 될까?"

어……? 퇴직금 말고 받을 수 있는 게 또 있었어? 집에 들어가 실업급여를 알아보니 금액이 상당하더라. 물론 자진 퇴사가 아니라 계약 만료일 경우에만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자진 퇴사다. 하지만 실장님께서 계약 만료로 바꿔주실 경우 받을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계산을 해보니…… 입이 떡 벌어질만한 금액이 나오더라. 900만 원. 거의 돈 천만 원 되는 금액이다. 퇴직금이든 실업급여든 생각해 보지 못했던 돈이다. 때문에 하나만 받아도 괜찮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물론 같이 받으면 1,400만 원이지만 실업 급여만 받아도 900만 원이다. 나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공돈이 생긴 것이니까.

"정말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안해……."

실장님은 그 말을 끝으로 눈물을 흘렸다. 음……. 솔직히 저 미안하다는 말은 핑계로만 들렸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더 챙겨줬을까? 에 대해 물었을 때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코로나로 스튜디오가 힘들어졌지만 사장님 부부는 새로운 외제차를 구매하셨다. 차박과 캠핑을 즐기면서 캠핑 용품을 하나씩 구매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정말로 나를 챙겨줄 생각이었다면 자신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챙겨주지 않았을까? 입사 당시엔 설날에 떡값이라면서 10만 원을 챙겨주셨다. 그리고 다음 해엔 햄 세트를, 다시 다음 해엔 만 원짜리 커피를 주셨다. 그렇다. 이게 지금 내가 이곳에서 받는 대우다. 아마 코로나가 나아졌다 한들 절대로 챙겨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가득했다.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새로운 외제차를 뽑을 순 있지만 따로 챙겨주기엔 힘들었을까? 여행 가고, 캠핑 갈 돈은 있지만 따로 챙겨줄 돈은 없던 걸까? 많이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요? 정말 미안했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지 그랬습니까. 코로나 때문에 힘든 거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십분 이해합니다. 그런데 우선순위가 너무 뒤바뀐 게 아닐까요?

'실장님……. 이건 아니지 않나요?'

집에 가는 길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받으면 안 되는 실업급여를 받을 것인가 혹은 노동청에 찾아가서 퇴직금을 받아낼 것인가. 범법을 제안한 건 실장님이지만 결국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책임도 내 몫입니다. 저요, 당신네들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퇴직금도 받으라면 받을 수 있겠지요. 다만 그 절차와 얼굴 붉히는 게 싫어서 하지 않을 뿐. 실장님은 제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셨습니다. 일하던 동료를 등지고 퇴직금까지 받을 것이냐, 내 권리를 포기하고 웃으면서 마무리할 것이냐. 선택은 제 몫이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고……. 다만 마지막까지 좋은 사람인 척 행동하는 그 모습이 역겹습니다. 당신이 흘린 눈물이 진심으로 미안해서 나온 눈물인지 혹은 악어의 눈물인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1. 나는 퇴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