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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May 23. 2022

과정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심심할 때 글쓰기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서울에 갔다 왔다. 최근 들어 무기력을 시작으로 우울증이 깊어졌고 이대로 방치하다간 내가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물론 친구라고 해봤자 대학교 동창들, 후배와 선배 그리고 동기들. 내 나이 스물아홉, 인간 수명을 보자면 지극히 어린 나이지만 사회적인 시선으로 봤을 땐 더 이상 어린 나이라고는 볼 수 없는 나이다. 어린이라고 하기엔 많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사회적 경험과 정신이 부족한 나이.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꿈보단 현실을 마주한다. 또한 소수의 자리 잡은 사람을 제외하면 다들 이곳저곳에서 방황하는 중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할 것인지, 적당히 현실에 타협해서 취직할 것인지. 대학 동기들(예체능 전공)을 제외한 내 또래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고시공부 끝에 공무원이 됐다거나 중소기업 혹은 대기업까지 취업한 사람들까지 하나둘 늘어나고 있으니……. 


좋아하는 연기를 업으로 삶기 위해 몇 년이나 노력했지만 성과가 보이지 않는 탓에 불안에 휩싸이고 이리저리 방황한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바른 선택일까? 어쩌면 그간에 들인 노력이나 시간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연기는 하고 있지만 먹고살 만큼 벌이가 되지 않아 투잡, 쓰리잡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제적 상태인 나는 그 중간이다. 대충 돈을 벌겠다는 이유를 대며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 그것이 나란 사람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선후배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동기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선후배들도 많이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 그런데, 그중에 두 명만큼은 꿋꿋하게 살고 있다. 한 선배는 전공을 연기에서 도자기로, 지금은 일식집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다고 하셨다. 큰돈은 아니지만 새로운 걸 배우고,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제법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더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삼 년이나 휴학으로 하고 편입 준비를 했다. 물론 편입은 실패했고, 원래 학교로 돌아와 졸업한 후 다시 연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 전 결혼한 선배를 만났다. 그 역시 연기를 하던 사람이지만 '결혼'이라는 큰일을 치른 후 빠르게 사회인으로 물들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과거 낭만에 대한 이야기, 이를테면 학교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거나 연병장에서 모든 남자들을 데려와 고기를 구워 먹는다거나 아니면 학교 앞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를 친다거나……. 당시의 나와 그 선배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사랑하다 보니 꽤 친밀하게 지냈다. 과거를 곱씹은 후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묻고, 주변 사람들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실망했다.


병국이라는 친구가 있다. 위에 말했던 세 번의 편입 실패 후 학교로 돌아온 친구. 작년쯤 졸업했고,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 그의 눈엔 정말 '연기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것이 보일 정도로 연기를 사랑하는 친구였다. 병국이를 볼 때마다 나는 확신한다. 지금 당장은 이름 날리는 배우가 되지 못할지라도 끝까지 가면 그는 뭐라도 할 사람이란 걸. 


하지만 선배가 보는 병국이는 '뻘짓'거리만 하는 아이로 느꼈다 보다. 그는 실패한 편입에 대한 것과 결국 학교로 돌아온 것. 결국 돌아갈 학교에 삼 년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걸 보며 뻘짓이라 칭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괜스레 욱했다. 병국이라는 친구를 좋아해서 그런 걸 수도 혹은 노력에 대한 폄하가 싫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물론 결과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과정도 중요하다. 삼 년의 실패를 직접 경험한 사람과 무탈하게 삼 년을 보낸 사람의 생각과 멘탈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 둘은 절대 다르다. 지금 당장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끝까지 가면 분명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병국인, 내 친구 병국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이가 들고 사람을 재단하는 건 '결과'뿐이라고. 이 선배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는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암만 연기를 좋아하고 잘한 들 뭐하나? 큰돈을 만지지 못하고 유명하지 않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을. 당사자가 연기를 하며 행복한지 불행한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돈이나 명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력보단 결과를 먼저 본다.


한 편으로 좋든 싫든 나 역시 자리를 확실히 잡아야겠다고 느꼈다. 영상일을 하며 평소보다 큰돈을 번다는 말에 그는 굉장히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니. 내가 아무리 타인의 눈치 보단 나를 더 챙기려 한다지만 나도 사람인 이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다. 이 선배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것은 내가 지금은 적은 노동으로 괜찮은 돈을 만지는 모습 덕에 존중을 받았다. 참 기분이 묘했다. 


나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타인의 노력을 폄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결과가 값지지 않더라도 과정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아아, 나는 아직도 애새끼인가 보다. 

근데 속물적인 어른이 될 바에 순수한 애새끼로 살고 싶다.


그니까 병국아, 그리고 너를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아.

제발, 제발 잘 됐으면 좋겠어. 너희를 무시하는 사람이 없도록.

우리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멋진 결과를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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