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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 Dec 27. 2020

팬데믹 직장인의 골방 속 영화 감상: 데스 프루프

남성의 전유물을 뺏어라, 그것이 폭력일지라도

영화 '데스 프루프'의 포스터


코로나19가 만든 '팬데믹'은 모두를 타격했습니다.  

   

코로나19는 약한 고리, 그 중 유난히 여성에게 가혹했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여성의 직업 안정성은 악화됐죠. 코로나19로 인해 기혼여성의 비취업 상태가 6년만에 증가했다는 지표가 있습니다.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감소폭도 여성이 남성의 3배라고 하네요.


유튜브 채널 '슬랩' 갈무리. 여성의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 출처: 슬랩


경제적 수치뿐만 아니라 20대 여성은 코로나 블루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최근 한겨레신문은 ‘조용한 학살’이란 키워드를 통해 20대 여성의 급증하는 자살률이 사회적 문제임을 환기했습니다. 단순 여성이 더 우울함을 겪기 때문이 아니라 취업률, 문화적 문제 등 사회적 시스템이 여성을 '조용한 학살'로 밀어넣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가 2020년 국내 100대 기업 여성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 기업들의 여성 임원은 286명으로 작년(244명)보다 17.2% 증가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의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은 올해 4.1%에 불과합니다. 아직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거죠.


그럼 왜 여성은 임원진에 오르지 못하는 걸까요? 여러 주장들을 한 번 모아봤습니다.

1. 사회경제적 구조가 남성에 맞춰져 있어서

2. 우생학적으로 원래 여성은 남성에 비해 미개해서

3. 여성들이 운이 안 좋아서     


운이 안 좋기엔 너무 오랫동안 임원 자리에 여성이 오르질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 여성 임원이 없는 회사가 40% 가까이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2번 주장은 어떨까요. 우생학은 공식적으로 철폐된지 오랩니다. 더불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연히 1번이 답입니다. 그리고 1번이 답이라면 이 사회는 사회경제적 구조가 기울어져 있음을 인정하고 수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소위 ‘역차별’ 논란을 가지고 오는 정책들도 그 노력 중 하나죠.     


남자는 멋있는 액션을 담당, 여자는 위험에 빠지는 담당?


영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타깝게도 영화 역시 남성이 지배적인 구조입니다.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신체적 능력도 수반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계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서사에서도 남성이 독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많습니다. ‘폭력’이 주 내용인 액션 영화라면 더욱 그렇겠죠. 우리도 알게 모르게 남성들은 액션 영화의 여러 문법들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가 자동차 액션신이 유명하다고 알고 있는 영화는 대부분 남성이 쫓기거나 쫓고 있습니다. 과거 미션임파서블을 시작으로 트랜스포터, 007 시리즈 등 모두 남성이 주인공이며 멋있는 자동차 액션을 선보입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인 원티드에서도 멋있는 자동차 액션신이 나오긴 하지만 영화 산업 전체로 봐선 여전히 남성이 액션을 더 많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원티드도 사실 남자 주인공의 성장기가 주 내용이지 않습니까?    


그 문법을 한 번 꼰다면 어떨까요. 더 이상 ‘폭력’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통해 남성만의 것으로 여겨졌던 것을 하나씩 가져올 수 있다면 사회 역시 바뀌어갈 것입니다.     


데스 프루프의 주인공들. 정말 멋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입니다. 데스 프루프는 굉장히 폭력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감독 명성에 맞게 엄청난 쾌감을 가져오는 동시에 남성 중심 사회에게 메시지를 던집니다. 여성을 넘어 인간은 어때야 하는가, 그리고 잘못 쌓아올린 남성상은 어떻게 무너지는지도 보여주죠. 그 메시지들은 지금의 사회와도 맞닿아있습니다. 남성만이 독점하고 있는 것을 여성은 가질 수 없는가. 그게 ‘폭력’일지라도 말입니다.     


지금부터 영화 ‘데스 프루프’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표현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이후 내용에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데스 프루프는 크게 두 챕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중간을 기점으로 두 그룹의 인물들이 나오는데요. 첫 그룹으로는 정글 줄리아(시드니 타미아 포이티어), 버터플라이(바네사 페를리토), 세나(조던 래드)에 굳이 끼우자면 팸(로즈 맥고완)까지 나옵니다. 두 번째 그룹엔 애버내시(로사리오 도슨), 킴(트레이시 톰스), 리(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조(조 벨)가 등장하죠.      


사회의 편견 속 행동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른 여성의 발, 다리입니다. 심지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조차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발과 다리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습니다. 성적 도구로밖에 보고 있지 않는 거죠.


줄리아, 버터플라이, 세나는 LBJ 호수를 최종 목적지로 두고 여행을 떠납니다. 차 안에서 이들은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참 거북합니다. 전혀 건강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줄리아가 대마초 없냐고 하자 다른 친구들이 오히려 왜 네가 안 가져왔냐고 타박을 줍니다. 그래서 줄리아가 자신이 대마초 운반책이냐 발끈하자 세나가 답합니다. “성질 좀 죽일 수 없어? 농담한 거잖아?” 뿐만 아니라 줄리아는 화내놓고는 화내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줄리아와 세나는 덧붙입니다. “우린 싸우지 않았어.” 언성을 높였지만 싸운 건 아니니 당연히 사과도 없습니다.     


랩 댄스의 사전적 정의


전혀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는 증거는 또 나옵니다. 이들은 열심히 차를 몰아 1차 장소인 멕시코 식당을 도착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버터플라이는 지역 라디오 DJ인 줄리아가 자신을 언급한 걸 알게 됩니다. 그것도 줄리아 앞에서 시를 외우고 술을 사주면 반드시 ‘랩 댄스’를 추도록 마음대로 공약을 걸어놨습니다. 친구를 성적 대상화 한 거죠. 과연 진짜 친구에게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인물 구도가 사회가 가진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이런 편견이 있습니다. ‘여성은 친구 사이가 좋지 못하다. 서로 은근 견제하고 꼬아서 비난한다.’ 소위 여우라고 하죠. 일부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인물 3명 모두 여우같이 행동하네요. 일부가 아닌 전체를 나타내려 했다고 볼 수 있죠. 이런 잘못된 편견을 장면으로 담아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들은 남성이 생각하는 인간미가 좀 부족하고 속 좁은 여성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내내 정글 줄리아의 다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또한 여성에 대한 편견, 혹은 일반화를 나타내고 있다는 증거는 첫 번째 그룹에 부여된 서사에서 나타납니다. 사실 첫 번째 그룹의 이야기는 굉장히 단순하며 많이 본 듯한 이야기입니다. 기존 영화의 문법을 따라가는 거죠. 조금 모자란 여성들이 꼭 외곽에 딸린 호수나 농장 같은 곳으로 캠핑하러 가다가 운 더럽게 살인마를 만나 고초를 겪는. 우리가 많이 봤던 영화 줄거리입니다. 그리고 남자 밝히면 죽는데 줄리아, 버터플라이, 세나, 팸은 남자까지 밝힙니다. 심지어 백인 금발 여성도 한 명 있죠. 이 기존 문법은 말합니다. 여자가 남자 밝히면 죽는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여자는 조금 판단력이 흐리다는 것을 말입니다.


첫 번째 멕시코 식당에서 운이 더럽게도 여자 4명이 만날 살인자가 나옵니다. 바로 ‘스턴트맨 마이크’(커트 러셀)입니다. 마이크는 ‘폭력’을 독점하고 있고 자신의 남성성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일단 폭력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의 스턴트맨이란 직업에 대해 ‘여성에게만’ 열심히 설명합니다. 나중에 나올 술집 주인인 쿠엔틴 타란티노(감독이 카메오 출현)가 그의 활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게 그 증거죠.     


모두가 성적 대상화하고 있는 대상, 정글 줄리아의 다리


여자 3명(정글 줄리아, 버터플라이, 세나)은 1차였던 멕시코 식당에서 나와 2차 장소인 술집 ‘칠리 팔러’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기서 남자 3명을 만나 술을 먹기 시작하죠. 6명이 함께 재밌게 놀고 있지만 조금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어떻게든 같이 자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한 남자가 줄리아가 맘에 든다고 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말합니다. “술을 먹여!”     


이게 영화에서만 나오는 말일까 싶네요. 하지만 영화 속 남성들만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아까도 그랬지만 영화는 내내 여성의 얼굴보다 다리나 엉덩이를 화면으로 잡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건 여성들도 그 사실을 알고 벗어나기보다는 순응하고 이용하고 있습니다. 줄리아는 자신의 다리로 성적 매력을 한껏 뽐내기 바쁩니다. 사람들이 다리만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그런가 하면 한 남성은 대놓고 버터플라이에게 차에서 성관계를 하자고 요구합니다. 버터플라이의 반응도 당황스럽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고 아무렇지 않게 승낙합니다. 버터플라이의 예상범위 안에서 남성이 움직이고 있기에 가능한 반응이죠.     


또한 저 남성의 “술을 먹여!” 대사에서 하나 더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여자들이 술을 안 먹으면 어떡하냐는 친구의 우려(?)에 이렇게 대답하죠. “여자들은 사주는 술을 다 먹어.”     


왜 여성들은 술을 얻어먹는 존재가 됐을까


영화를 보다보면 재밌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세나 그 누구도 자신이 이뤘거나 소유하고 있는 게 없습니다. 물론 줄리아는 지역 라디오 DJ를 하고 있지만 남자와의 관계에서 굉장히 수동적입니다. 줄리아는 크리스 시몬스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자주 들이대지 않는다고 불만이죠. 자신이 먼저 다가가 관계를 적극적으로 바꾸길 힘들어합니다.     


이들이 세나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LBJ 호수로 여행을 떠나는 걸 보면 아직 가정, 그것도 가부장적 가정에 예속돼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놀러가고 있지만 결정권이 없는 셈이죠. 결정권이 없다보니 다 큰 딸과 친구들이 옷을 안 입고 있는 별장에 세나의 아버지가 불쑥 나타나도 아버지가 귀엽다며 웃어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불쾌한 상황인데 말이죠. 다 큰 딸 친구 몰래 훔쳐보러 오는 아버지가 뭐가 귀엽습니까?


가장 큰 부분은 경제적 결정권입니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세나 모두 무언가를 지불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들 줄리아에게 왜 대마초가 없냐고 쏘아붙이지만 사러 갈 생각은 안 합니다. 마찬가지로 줄리아는 자신을 성적 대상화 한 것에 대해 화내는 버터플라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공짜 술 몇 잔 얻어먹고 끝내는 거라고 생각해.” 공짜 술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경제적 결정권이 없다는 걸 반증하는 셈입니다. 즉, 여성들이 경제적 결정권이 없으니 남성에게 묶여있는 시스템인 거죠. 사실은 이 3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이들을 몰아넣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만의 이야기인가 싶습니다.


금발 백인 여성 담당 팸


그러다 나초 먹방과 함께 마이크가 영화의 기류를 바꿉니다. 엄청난 존재감과 함께 버터플라이에게 다가갑니다. 다가가는 이유는 바로 줄리아가 라디오에서 말했던 랩 댄스를 보기 위해서죠. 하지만 마이크는 설명했듯 겉으론 마초적이지만 행동은 그러질 못합니다. 먼발치서 아련히 버터플라이를 볼 뿐이죠. 다가가지 못하는 와중 좀 모자라 보이는 금발 백인 여성인 팸이 매우 큰 소리로 “누가 나를 집에 데려다줄 사람 없을까?”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마이크가 차키를 던지며 “공주님, 마차 대령이요”라고 답합니다. 자신이 왕 혹은 왕자로 남자로서 위치상 우위에 있다는 걸 과신하려 합니다. 그건 그렇고 멘트가 구려서 미치겠습니다.     


마이크는 결국 버터플라이에게 다가가는 것에 성공합니다. 버터플라이는 랩 댄스를 추고 마이크는 흡족해합니다. 이제부터 마이크는 살인극을 시작하죠. 옆 자리에 팸을 태웁니다. 그런데 차가 좀 이상합니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유리로 막혀 있고 조수석은 제대로 된 의자가 없죠. 알고 보니 운전석에 앉은 사람만 사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스턴트맨을 위한 차량이었습니다. 마이크가 급정거 할 때마다 팸은 머리를 차량 유리에 박습니다. 팸은 목숨을 구걸하지만 소용 없습니다. 결국 마이크는 차를 갑자기 세우고 팸은 머리를 차 유리에 박고 사망합니다.     

말 그대로 박살이 납니다. 그리고 사라져버리는 정글 줄리아의 다리


그 다음은 나머지 여자들입니다. 마이크는 불을 끄고 대기하다가 갑자기 속도를 내며 첫 번째 그룹 여성들이 타고 있던 밴으로 돌진합니다. 그리고 정말 잔인하게 모두 사망하고 말죠. 그 과정에서 줄리아가 그토록 자랑하고 성적 매력을 뽐내던 ‘다리’도 잘려나갑니다.     


마이크는 그 과정에서 다치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고의성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술, 마약을 했고 마이크는 아까 바에서 무알콜 음료만 마셨거든요. 오히려 잘못은 여성 쪽으로 몰릴 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줄리아, 버터플라이, 세나, 팸은 운이 나쁘고 멍청하고 조신하지 못하고 남자를 밝히고 금발이라서 죽은 걸까요? 아닙니다. 페미사이드 범죄자인 스턴트맨 마이크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는 전형적인 페미사이드 범죄자입니다. 그리고 페미사이드 범죄자를 만들고 방치한 건 사회였습니다.     


조사당국이 사건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아까 말했듯 마이크는 술을 먹지 않았고 여자들을 마셨기 때문에 오히려 여자들의 잘못으로 몰릴 위기입니다. 또한 옆 자리에 있었던 팸은 그냥 사고로 죽었다 하면 그만이고요. 그런데 마이크의 계략을 한 보안관이 알아챕니다. 그것도 마이크의 의도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죠. 하지만 아무런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그 보안관에겐 낚시가 더 중요합니다. 그저 귀찮을 뿐, 여자 몇 명 죽는다고 무슨 상관입니까? 이러한 페미사이드 범죄를 방치하고 오히려 키우고 있었던 건 사회였던 거죠.


몇 달 후, 마이크는 첫 번째 그룹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그 쾌감을 잊지 못해 두 번째 그룹까지 살해하려 합니다. 여성을 죽임으로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남성인 거죠. 동시에 애버내시의 발을 핥으려 하는 등 변태적인 성욕도 보여줍니다.     


당-당 그 자체


하지만 마이크는 잘못 걸렸습니다. 이들은 이제 과거 편견 속에 있던 종속적 여성이 아닌 주체적인 ‘인간’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과거 필름 스크래치가 있던 흑백 영상에서 현대적인 깔끔하고 색감 있는 필름으로 이들을 표현합니다. 몇 달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마이크가 알던 여성이 아닌 거죠.     


애버내시, 리, 킴은 미국으로 여행을 온 조이를 만나기 위해 모였습니다. 동시에 닷지 챌린저 차량을 보러가는 것 또한 목표입니다. 사실 조이만의 목표이긴 하지만 원래 여행 온 친구 의견 따라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살 건 아니고 시운전만 해보겠다는 요량으로 가는 것입니다. 남자만 즐길 수 있고 남자만 가질 수 있던 차량, 그것도 스피디하며 힘도 있는 마초적인 자동차에 여성들도 관심 가집니다. 하나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4명은 영화계 종사자로 다들 직업도 있습니다. 애버내시는 린제이 로한 메이크업을 담당할 정도로 꽤 성공한 메이크업 담당자입니다. 리는 인정받는 배우이자 모델이기도 하고요. 그 중 킴과 조이는 스턴트맨이죠. 조이는 실제로 배우가 아닌 스턴트맨이기도 합니다.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앞의 여성과 다르게 경제적 결정권도 있습니다. 이 여성이 영화에 나오자마자 보여주는 장면이 ‘구매 행위’입니다. 마실 것 등을 사러 슈퍼에 들어가죠. 이들이 딱히 부자는 아닙니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유명패션잡지를 혼자서 구매할 능력은 없죠. 하지만 주체적입니다. 돈이 없으면 친구들과 모아서 살 생각까진 합니다. 돈이 없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들은 여성을 넘어 하나의 인간입니다.     


자유분방한 그들은 카메라에 담기조차 힘듭니다


하나 더 비교해보겠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존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죠. 이들은 만나서 식당으로 갑니다. 그 곳에서 애버내시는 조이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죠. 조이는 애버내시를 사진으로 찍기 위해 움직이라고 하는데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다행이도 애버내시는 빨리 알아차리고 구덩이에 빠지는 걸 피했죠. 그런데 조이는 놀다가 그 구덩이에 빠져버립니다! 조이가 누굽니까. 잘 나가는 스턴트맨 중 한 명입니다. 엄청난 운동신경으로 다치지 않고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죠. 모두들 조이의 운동신경을 칭찬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킴은 애버내시를 칭찬하죠. “조이는 엄청난 운동신경이 있지만 구덩이가 있는 걸 알면서도 빠졌잖아. 애버내시, 너는 세심하기 때문에 빠지지 않은 거야.” 이 얼마나 자존감이 높아지는 대화입니까. 보는 제가 가슴에 뭉클해졌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서의 여성들은 일종의 사회적 편견 속에서 움직였다면 두 번째 그룹은 그 편견을 깨는 행동을 합니다. 여성들은 사회가 착각하듯 비열하지 않으며 우정을 중요시하고 서로를 존중할 줄 알죠. 이 역시 하나의 벽을 깨는 행위입니다.     


4명은 조이가 바라는 대로 닷지 챌린저를 보러 갑니다. 하지만 조이는 또 하나의 궁리가 있습니다. 바로 ‘돛대놀이’입니다. 첫 번째 그룹이 했던 놀이인 랩 댄스 놀이에 비해 훨씬 위험하고 스릴 있습니다. 바로 끈 하나에만 의존해 달리는 차량 보닛 위에 매달려 있는 놀이입니다. 처음엔 킴은 조이의 부탁을 거부합니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계속 조이는 계속 졸랐고 킴은 받아들입니다. 옆에 있던 애버내시도 따라가겠다고 하죠. 킴과 조이는 너무 위험하다며 애버내시의 부탁을 거부하지만 어떻게든 애버내시는 닷지 챌린저에 탑승합니다.     


정말 멋있고 스릴감 넘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이 여성들을 미행하던 마이크는 살인을 위해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보닛에 매달려 돛대놀이를 하는 조이를 떨어트리기 위해 갖다 박습니다. 하지만 조이는 엄청난 운동신경을 보유한 스턴트맨입니다. 끈을 중간중간 놓치지만 절대 보닛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최고의 차량 액션신이 탄생하는 순간이죠. 참고로 조이는 이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촬영했습니다.     


마이크의 살인 시도에 대한 반응도 첫 번째 그룹과 비교해볼 만 합니다. 팸은 목숨을 구걸했죠. 하지만 이 여성들은 할 수 있는 반항은 모두 합니다. 애버내시는 욕을 하고 조이는 차량을 발로 차죠. 약한 반항 같은가요?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일반적 스릴러 영화에서 여성은 도망치기 바쁘고 숨기 바빴습니다. 저러한 반항들이 하나 둘씩 모이면 큰 반항이 되는 거죠.     


결국 마이크가 충돌을 일으키자 닷지 챌린저는 울타리에 박습니다. 조이는 나가 떨어져버리죠. 마이크가 재밌지 않냐고 웃자 킴은 권총을 쏴버립니다. 권총은 마이크의 팔을 관통하고 급하게 도망가죠. 이제 남은 건 조이의 목숨입니다. 모두가 울면서 감히 확인하지 못하지만 조이가 말 그대로 ‘뿅’하고 나타납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시 아픔을 잊는 데 술이 최고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성들만 독점하던 ‘폭력’을 가져오는 순간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마이크가 독점하고 있죠. 조이가 살아서 돌아오자마자 마이크의 행방을 묻습니다. 킴이 한 방 맞고 도망갔다고 하자 조이는 말합니다. “잡고 싶지 않아?” 그리고 킴, 과거 유약한 모습을 보였던 애버내시마저 말합니다. “죽여버릴 거야.” 이들은 카우보이처럼 차를 올라타고 마이크를 쫓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명령한 것도 아닌, 모성애에 따른 것도 아닌 인간적 모멸감을 느꼈기에 여성들 스스로 복수를 결정하고 뛴 겁니다.     


같은 시간, 총알이 마이크의 마초적 겉모습을 걷어내자 그는 그냥 찌질이에 불과합니다. 마초는 온데간데없고 애처럼 울며 술을 상처에다 붓고 있죠. 그러다 킴, 조이, 애버내시가 나타납니다. 그를 응징하기 위해서!     


조이는 막대기를 들고 말 그대로 후두려 팹니다. 그리고 차량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마이크가 미안하다고 하지만 용서는 없습니다. 끝까지 따라갑니다. 대충 겁만 주고 용서를 받을 생각이 아닌 거죠. 그들은 마이크를 죽여버릴 생각입니다. 그 과정에서 도로에 있는 몇몇 차에 피해를 줍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저 페미사이드 범죄자를 그냥 둘 순 없습니다.     


당하는데 그치지 않고 결국 참교육에 성공합니다


결국 킴의 화려한 운전 실력으로 마이크를 잡습니다. 그리고 3명이 돌아가며 주먹으로 마이크를 후립니다. 중간중간 강냉이도 보이네요. 조이의 마지막 발차기와 함께 마이크는 쓰러지고 3명은 환호를 지르며 영화는 끝납니다. 그 뒤 애버내시가 정말 잔인하게 발 뒷굽으로 마이크의 얼굴을 찍어버리긴 하지만요.     


이제 폭력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여성은 언제까지나 쫓기고 숨고 벌벌 떨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잘못된 방식일지라도 응징을 해내고 맙니다. 그래야 여자들이라고 우습게 보는 마이크와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성적 대상화하거나 약자로 보지 않고 동등한 ‘인간’으로 보겠죠. 결자해지, 영화에선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력을 찾고 있습니다.     


21대 국회에 진출한 여성들. 더 많은 여성들이 진출하면 어떨까요. / 출처: 여성신문


영화는 폭력이란 극단적 예시를 들었지만 사회 여러 곳을 보면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들이 많습니다. 처음 말했고 영화에서도 꾸준히 언급하는 경제 권력도 그렇고요, 정치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여성 국회의원 당선자 수는 57명으로 역대 최다지만 아직 그 비율은 19%, 이는 OECD 평균보다도 10%P 낮은 수치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가정 내 권력은 어떨까요. 여성가족부에서 발간한 2019 성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내 성평등 수준은 60.5에 불과합니다. 100점 만점이며 교육 및 직업 훈련 분야에서의 성평등 수준은 94.1인 걸 보면 한참 뒤떨어지는 거죠. 아직 가부장적 시스템 속에 여성은 억눌려 있습니다.     


그 억눌림을 잠시나마 풀어줬던 영화가 데스 프루프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자들이 펼치는 호쾌한 차량 액션, 그리고 속 시원한 폭력까지 마지막에 보여주니까요.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행동하는 여성은 어떠한 지도 보여줬습니다. 일종의 비전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여성들을 위한 영화, 데스 프루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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