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중 고전 영화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를 봤습니다. 미래를 그리는 영화를 보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2019년, 지금보다 과거였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현재를 평가하는 데 이 영화의 존재가치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굳이 이 영화의 2019년과 현재를 비교해보자면 틀린 예언이 많습니다. 일단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없고요,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도 없습니다. 식민지 행성도 없고 핵전쟁도 발생하지 않았네요. 물론 우리 머리 위에 핵을 얹고 살고 있긴 하지만.
언제쯤 우리 집 자동차가 하늘을 날지
하지만 맞춘 것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맞춘 게 아니라 1982년,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 같습니다. 바로 경제권력이 이 사회를 삼켜버렸다는 것입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면 국가권력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퀴퀴한 골목은 방치돼 있습니다. 오히려 치안은 불안정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리플리컨트들이 식민지 행성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몰래 잠입할 순 없겠지요.
타이렐사가 위치한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권력'을 뜻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 경제권력은 강력합니다. 경제권력으로 대표되는 인물이 '타이렐'입니다. 경제권력이 사회를 집어삼켰다는 증거는 영화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아주 큰 크기의 간판에서 한 일본 여성이 등장하는 광고가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잿빛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감이지 않나 싶네요. 반가운 코카콜라 광고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타이렐사는 이 사회의 최대 권력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타이렐사는 마치 피라미드처럼 생겼습니다. 타이렐은 피라미드의 최상단에 위치하고요. 국가가 아닌 기업의 대표가 이 영화가 그리는 사회 속 최상위층으로 그려지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리플리컨트를 창조해낸 인물입니다. 그건 곧 노동력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노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권력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즉, 영화 속 최대 권력은 국가가 아닌 타이렐사, 즉 경제권력이었습니다.
광고 간판이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이 리플리컨트들이 '노동자'로 보였습니다. 리플리컨트들은 철저히 타이렐사에 종속돼 있습니다. 심지어 수명조차 기업이 조절할 만큼 생명권 등 기본권을 못 지니고 있습니다. 부당한 대우에 참지 못하고 식민지 행성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블레이드 러너는 이들을 사살합니다. 마치 노동쟁의를 일으키자 강제로 탄압당하는 노동자처럼 말이죠.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그리는 2019년은 이러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미래인 2021년은 어떠할까요? 블레이드 러너가 그린 미래에서 조금이나마 발전했을까요? 타이렐사, 리플리컨트와 비교했을 때 경제권력은 견제되고 노동자의 삶은 발전했을까요?
동아일보 2021.01.20.자 기사 '이재용, 백신 확보 위해 UAE 갈 예정이었다'
동아일보의 기사입니다. 지난 1월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된 이후 나온 기사입니다. 마치 우리를 살릴 지도자를 아무 이유 없이 감옥에 가뒀다는 뉘앙스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재용 부회장이 받은 2년6개월 형은 받을 수 있는 형량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는 크게 두가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뇌물공여입니다. 그러니까 회삿돈 70억원 가량을 빼돌려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줬다는 거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0억원 이상 횡령의 법정형은 '징역 5년~무기징역'입니다. 양형기준안을 보면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 횡령의 기본 형량 범위는 징역 4~7년입니다. 다만 형량을 감경할 경우 '징역 2년6개월~5년'까지 선고할 수 있죠. 대법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횡령한 금액을 모두 반환했고 피해자 측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낮은 형량 2년 6개월이 선고됐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피해자는 횡령 당한 '삼성'입니다.
횡령에 대한 양형기준
언론은 가장 낮은 형량을 선고한 재판부나 회삿돈을 마음대로 활용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비판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위의 사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기업이 망한다' 더 나아가 '나라 경제가 망한다'만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사회는 경제권력의 논리에 잠식된 걸까요?
차라리 경제권력을 무작정 찬양하기만 하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 때문에 '사람'이 가려진다면 더욱 곤란합니다.
한국경제 2020.06.12.자 기사 '현대차 '팰리세이드·코나' 생산 중단 위기'
한국경제의 기사입니다.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 모델와 코나 모델을 만들던 1차 협력사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경제 기사의 제목은 '생산 중단 위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들의 눈엔 기업의 이익밖에 없나 봅니다.
최근 '중대재해기본처벌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중대재해기본처벌법은 인간의 기본권 중 기본인 생명권을 위한 것입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항상 1000명 후반과 2000명 초반을 왔다갔다 합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죽을 수도 있는 불안한 상황인 셈입니다. 하지만 규정이 모호하다며 언론들은 비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법 자체가 기업활동을 옥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철폐를 말하는 경제권력의 입에만 마이크를 갖다대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기획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인터랙티브 갈무리
정말 언론이 기업만의 편이 아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면 무작정 기준이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준을 직접 제시해주는 건 어떨까요? 제가 법조인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대안이 될 순 없겠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을 참고해 지금까지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해왔는지 살피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재판부의 판단을 보며 어느 정도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원래 세상은 천천히 기준을 세우며 만들어가는 거니깐요.
그리고 매해 1000명 이상씩 죽어가는 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대책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법의 탄생 취지를 고려했다면 반대할 때도 반드시 노동자 사망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죠. 사람은 죽어나가는데 기업의 이익만 고민하는 건 경제권력에 대한 찬양을 넘어 '인간성'을 포기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리플리컨트의 리더 배티. 그는 오히려 인간보다 동료애와 인류애를 보여줬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이 아닌 복제인간을 잡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영화 속 주인공 데커드는 블레이드 러너로 지구로 몰래 잠입한 리플리컨트를 사살합니다. 심지어 정식 절차를 거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보고 있는 길거리에서 사살하죠. 누가 더 인간다울까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조차 거친 데커드보다 우정, 사랑 모두 존중하고 기억하는 리플리컨트들이 더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회는 어떨까요?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오히려 인간성을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볼 때입니다. 리플리컨트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생명의 기한이 정해져 불안한 리플리컨트와 한국 사회의 노동자는 닮아있습니다. 불안한 현실, 무시당하는 그들의 목소리, 그리고 죽음까지 말입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그린 디스토피아와 우리가 서 있는 사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없다 뿐이지 여기도 잿빛입니다. 그 잿빛 사회에 서 있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리플리컨트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2019년을 그려낸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2021년을 바라보는 우(愚)를 범한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