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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 Dec 12. 2021

골방에서의 영화 감상: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우리가 느꼈던 것들을 분명히 느끼길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올해를 마무리하는 영화로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골랐습니다. 날도 차가워지면서 공기도 무거워지니 잔잔한 영화를 보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최근에 봤던 영화 ‘듄’의 티모시 샬라메 출연작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이 영화는 올해를 마무리하기엔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대표적인 첫사랑을 다룬 영화, 또는 퀴어 영화로 불립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마지막 15분 때문일 것입니다. 단순 첫사랑에 대한 아픔을 넘어 우리들에게 상쳐를 ‘치유’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후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춤신춤왕 아미 해머

이 영화의 큰 줄기는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엘리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사실 흔합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찾아온 이방인, 그것도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마을의 모두의 관심을 끄는 이방인입니다. 또한 틱틱거리는 주인공과 은근 받아주는 이방인. 사랑에 안 빠질 수가 없겠네요.     


엘리오는 사랑에 있어 참 미숙한 존재입니다. 한 번 불이 붙자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죠. 하지만 올리버는 과거엔 미숙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감당할 수 없고 끝이 보이는 사랑에 큰 힘을 쏟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엘리오는 올리버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죠. 그는 상처를 다른 여자에게 괜히 마음을 주는 미숙하면서 나쁜 방법으로 메우려고 합니다.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가장 큰 교훈을 배웁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 보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나를 부를 때 너의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둘은 마지막 모든 관계를 마무리할 때도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엘리오는 수화기 너머 다른 사람과 약혼한 올리버를 애타게 부르죠.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의 가족 구성원들은 상처에 직면할 수 있도록 기다려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해지는 이유는 엘리오에게 또 다른 큰 교훈을 주는 아버지(마이클 스털버그) 때문입니다. 엘리오는 올리버와의 마지막 여행을 마치고 상실감에 빠져 있습니다. 엘리오는 사랑에 미숙했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도 미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미숙한 그에게 아버지는 조용히 조언을 건네죠.


“지금은 아무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을 수 있어. 평생 느끼고 싶지 않을 지도 몰라.”

“어쩌면 이런 얘기를 나에게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

“우리는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딨니?”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비가 내리던 여름, 엘리오는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 그대로를 바라보라’라는 조언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상처를 완전히 마주하지 못한 채 겨울을 맞이합니다. 그 겨울, 엘리오는 올리버로부터 약혼 소식을 직접 듣습니다.


그리고 엘리오는 모닥불 앞에 앉습니다. 완전히 생각에 잠겨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죠. 이 영화는 엘리오의 행동에 대한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혼자 방 안에 두는 게 아니라 뒤에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다니게 합니다. 그 사람들은 상처와 직면하고 있는 엘리오를 전혀 방해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조언했듯 엘리오가 느꼈던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상처를 치유하려면 자신의 감정과 마주해야 합니다

벌써 한 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여러분들은 자신의 이름을 몇 번 불러봤나요? 저도 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기 어색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괜히 여러분께 말을 걸어봅니다.     


사랑할 때도 그래야 하지만 상처를 치유할 때도 나 자신에 집중하고 바라봐야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엘리오의 아버지처럼 제가 올해 다른 사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공감을 해줬던 사람이었는지 성찰해보려고 합니다.


이제 곧 다가올 2022년, 나 자신을 충실히 바라보며 치유에도 게으르지 않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을 자주 불러봤든 안 불러봤든, 모두들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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