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있다' 포스터
코로나19가 만든 '팬데믹'은 모두를 타격했습니다.
그 타격도 강력한데 서러움도 배가 되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지방에 있는 가족 만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다 가족들에게 "내려갈게" 라고 말하면 무슨 호환마마라도 방문하듯 오지 말라고 하니, 세균 취급 당하는 지금 상황이 참 서럽습니다.
저처럼 골방에 박혀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골방서 뭐하냐고 물어보니 인터넷 개인 방송을 즐겨 본다고 하더군요. 소위 '아프리카 TV' '유튜브 실시간 방송' 등이 개인 방송의 대표 격일 겁니다.
세상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골방은 현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출처: 썰리
실제로 개인 방송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한 예시로 '철구'라는 스트리머의 복귀 방송에 38만 명이나 몰렸다고 합니다. 오후 10시가 넘어 시작한 방송임에도 많은 인파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전에 부적절한 콘텐츠를 진행한 사실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에 개의치 않은 듯 복귀를 환영합니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비판 받는 것도 개인의 책임이니까요.
사실 개인 방송을 택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동시간대 KBS2는 무엇을 방송하는지 찾아보니 'KBS심야토론'을 방영하고 있더라고요. 어떤 게 더 자극적이고 끌릴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이제 개인 방송을 서브컬쳐라고 무시하기엔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간간히 스트리머들이 보입니다. 실제로 MBC는 아프리카 BJ '감스트'를 섭외해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었습니다. 메인과 서브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현 상황입니다. 하지만 전혀 희미해지고 있지 않는 것도 있었습니다.
BJ 박소은은 안타까운 선택을 한 스트리머 중 한 명입니다 BJ 박소은의 극단적 선택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댓글. 욕을 해야만 악플은 아닙니다.
콘텐츠의 자유도가 높아지는 만큼 책임도 본인 몫입니다. 즉, 모욕 당하는 것도 선이 없습니다. 개인이기에 그것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 그 누구에게나 한계치가 있습니다. 얼마 전 박소은이라는 스트리머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에 악플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박소은 뿐만 아니라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스트리머들이 많습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차갑습니다. 서브컬쳐라는 이유로 무시를 하거나 개인 방송인 만큼 본인의 선택 아니냐는 말도 있었습니다. 개인이 다 견뎌야 한다면 그 사람을 무너트릴 수 있는 모욕도 허용되는 것일까요? 도대체 그들에게는 '선'이 어디까지 밀려 있는 건가요?
설리 역시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인물이다
악플과 인기인의 불편한 동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연예인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인물에 설리가 있습니다. 그 역시 악플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던 인물이죠. 설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악플마다 이런 논리가 있었습니다. "연예인은 악플도 감수해야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입니다. 이제 이 논리를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무게는 분명 박소은과 달랐습니다. 설리가 세상을 떠난 후 시스템의 큰 축인 입법부가 움직였습니다. '설리 방지법'이 발의됐었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도 움직였습니다. 현재 포털의 연예인 뉴스 란에서는 더 이상 댓글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감정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에서 '화나요' '싫어요' 등 분노를 나타내는 건 사라졌습니다. 과거 악플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리던 관행에서 벗어나 이제 연예인의 감정도, 아니 인권도 제도권에 포함됐습니다.
키즈 유튜버 띠예. 어린 아이도 악플은 피할 수 없었다.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BJ들은 정말 개인에 불과할까요? 변화의 움직임은 있습니다. 키즈 유튜버 띠예는 악플에 시달렸던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어른이 보기에도 끔찍한 악플이 달렸죠. 심지어 콘텐츠를 신고해 활동에 제약까지 줬습니다. 이에 대해 유튜브는 시스템적으로 변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키즈 유튜버의 영상에서 댓글을 볼 수 없습니다. 의견을 게시할 개인의 자유를 침범 당한 것 아니냐고요? 그러기에는 개인인 스트리머들이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함께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개인 방송과 스트리머는 현대사회의 개인주의가 낳은 산물입니다.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자의 성과가 낮으면 그건 온전히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모욕 당하는 것도 그 사람의 책임일지는 의문입니다. 한국 사회가 그러한 행태를 놔두는 건 자유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방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잡소리가 길었습니다. 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유 없는 잡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살아있다' 입니다. 앞서 영화 '28주 후'에서 말했 듯, 좋은 영화는 고민 거리를 남겨줍니다.
영화 '#살아있다'의 주인공은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입니다. 그리고 좀비가 가져오는 아포칼립스는 알게 모르게 숨어있었던 문제점이 사회 전면에 나타나게 합니다. '28주 후'에서는 국가와 개인의 충돌을 보여줬죠. 그렇다면 #살아있다 역시 스트리머라는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의 뒷면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이후 내용은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이 영화는 온통 엉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화 '#살아있다'는 시의성 하나는 제대로 공략한 영화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골방에 박혀있던 저에게는 더더욱 와 닿는 내용이죠. 좀비로 인해 밖을 나가지 못하고 사람과 차단 당한 상황, 그 상황에 빠진 스트리머. 소재는 시의적절하며 참신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커져 갔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고민이 없다'는 겁니다. 왜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를 주인공으로 택했을까요? 그냥 사람들이 개인 방송을 많이 봐서? 정말 스트리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 문제들을 한 번이라도 고민해보고 영화를 만드는 건가요. 뭐, 개인 방송을 트는 주인공 유아인, 오준우가 '안녕하삼'이라고 인사하는 순간부터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영화는 게으릅니다. 초반부 스트리머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냥 오준우가 아침 10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대충 퉁칩니다. 골방 속에 사는 저도 눈 뜨면 11시인데 저게 고충인가... 싶었습니다. 적어도 대중들에게 담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거나 가족들이 스트리머인 오준우를 미워하는 장면들을 담았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스트리머인데 개인 방송은 포기했습니다
그렇다고 스트리머만의 팬데믹 대처 방식이 잘 표현된 것도 아닙니다. 앞서 얘기했듯 개인 방송은 양날의 검입니다. 자극적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본인 책임, 그에 대한 비난이나 혹은 앞뒤 맥락 없는 모욕을 받는 것도 본인 책임입니다. 그런데 오준우라는 인물은 개인 방송에 관심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떡상' 기회인데 영상 촬영을 시도 안합니다.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하는 걸 보면 인터넷은 연결되는 것 같은데, 스트리머의 생태계를 잘 아는 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가장 어이 없는 장면은 드론을 통한 가족과의 연락 시도입니다. 뭐, 드론을 띄우면서 폰 배터리도 확인 안 한 건 둘째치고 이 장면은 스트리머와 전혀 관련 없는 장면입니다. 감독은 스트리머가 그냥 힙한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론이 등장하는 겁니다. 감독이 생각한 힙한 인물은 개인 방송도 하면서 드론을 사용하는 인물이니까요. 이미 영화 '엑시트'는 드론을 통한 개인 방송을 잘 표현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엑시트는 딱 1년 전에 개봉했습니다. 1년이나 지난 소재가 이제 힙할까요?
넌 힙한 놈이야. 안녕하삼이라고 하지만 아무튼 힙한 놈이야!
개인 방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그걸 채워 넣는 건 '가족'입니다. 오준우는 가족에 집착합니다. 드론 날릴 때 폰 충전 안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멍청한 주인공은 가족이 죽은 소식을 접한 후 집 밖으로 달려나갑니다. 그 이유는 가족을 죽인 존재가 좀비에 대한 분노, 그것뿐입니다. 그렇게 살아있어야 한다고 외치던 주인공이 사지로 뛰어드는 그릇된 선택을 합니다.
정 가족을 주제로 삼고 싶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찾으러 간다거나, 살아남은 다른 가족을 지켜준다는 등의 내용으로 말이죠. 그렇다면 감독이 바라는 가족애도 잘 살아났을 겁니다. 하지만 박신혜, 김유빈의 등장으로 이제 가족도 사라집니다. 그냥 가족은 초반 30분을 흘려보내기 위한 소재에 불과했습니다.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다른 이와 다르게 의심을 전혀 받지 않는다
잠깐 돌아봅시다. 주인공 오준우는 스트리머입니다. 즉, 인간에게 모욕을 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습니다. 철저히 개인주의 문화에 의해 탄생한 산물입니다. 인간을 믿기 어려운 존재죠. 하지만 김유빈이 등장하자 오준우는 바보 같이 행동하며 온갖 신뢰를 보입니다. 목숨을 걸고 구한 음식까지도 전달하면서 김유빈과 유대를 만들어 갑니다.
김유빈이라는 이 인물로 인해 영화는 모든 게 무너집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쉽게 믿다니, 아무리 주인공이 바보라지만 이건 아닙니다. 특히 스트리머가 보여주고 있는 사회 현상과 비교해 보았을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초반부만 해도 그렇게 설득력이 없진 않았습니다. 옆집 주민이 집에 들어오자 칼 들고 빨리 나가라며 계속 의심합니다. 오준우가 박수무당인지 좀비가 맞긴 했죠. 그리고 스트리머가 그런 이기적 행동을 보이는 건 사회 현상과 연결해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태도 차이가 너무 극명하잖아요? 왜 김유빈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건가요? 박신혜가 아니라 제가 저 건너편 아파트에서 손 흔들고 있어도 구하러 왔을까요? 바로 커튼을 닫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아저씨는 잘못 없어요ㅠㅠ
최악은 그 이후입니다. 오준우와 김유빈이 무쌍을 펼치며 8층에 가자 한 인물이 있습니다. 오준우에게는 한없이 신뢰를 보이던 김유빈은 8층 아저씨에게는 의심의 눈초리를 퍼붓죠. 물론 이 영화 주인공들은 박수무당이기에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 아저씨가 제일 휴머니스트입니다. 아내를 위해 먹이를 구하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단순 오준우와 김유빈을 선으로 그려냈기에 아저씨가 별 고민 없이 사람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아내의 굶주림을 위해 타인을 자신의 공간에 들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그런 고민들은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또 의문이 있습니다. 분명 오준우는 초반 가족을 잃은 슬픔에 정신 못 차린 적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8층 아저씨에겐 전혀 공감하지 않습니다. 김유빈을 구하러 온갖 행동을 하죠. 이미 김유빈에게 푸욱 빠져버렸나 봅니다. 아마 오준우는 김유빈과 손자 이름까지 지을 상상을 한 게 분명합니다. 김유빈이 오준우의 '가족'이 되지 않은 이상 이런 행동은 설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영화의 주제의식은 허망합니다. 그저 '생존'만을 중요시하죠. 팬데믹 상황 속에선 살아남기만 하면 다인가요?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일까요? 선풍적인 개인 방송의 인기라는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이 전무합니다. 그렇다고 대신 채워넣은 가족애도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제 발로 8층에 침입하고 가족을 파괴 시켰으니까요.
생존이란 가치만을 영화 주제로 삼기에는 너무 게으릅니다. 이미 많은 스트리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살아 남아야 한다'고 한 아버지의 말씀만 따르는 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스토리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너무 나간 생각이지 않냐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개인 방송의 사회 문제가 팬데믹으로 드러내는 영화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렇다고 이 영화가 게으르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유아인, 박신혜라는 좋은 배우를 사용했다면 그만큼 영화의 주제의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깊이 해보아야 하지 않았나, 라고 감히 조언합니다.
고민 없이 만든 영화, 고민할 지점이 없는 영화는 좋지 못한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살아있다'는 좋지 못한 영화입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전시에 발동되는 법을 팬데믹 상황에서 사용했다. / 출처: KBS
다음 리뷰는 전쟁 영화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팬데믹을 '전시 상황'에 빗댄 적이 있는 만큼 전쟁과 팬데믹은 유사합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국전쟁 때 발동했던 '국방물자생산법'을 꺼내들기도 했죠. 그렇다면 어떤 전쟁 영화가 좋은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요?
사회 현상을 잘 비추고 있는 영화를 발견해서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