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만 오길 염원했건만, 그치기는커녕 더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목숨을 잃기도 했죠. 경찰정을 비롯한 배가 쓰러지거나 야산에서 흙이 펜션이 덮치는 등 아까운 생명들이 무기력하게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눈에 띄는 뉴스가 보였습니다. 북한이 황강댐을 사전 통보 없이 방류했다는 소식입니다.
북쪽 동무, 거 너무한 거 아니오 / 출처: news1
북한의 황강댐 방류는 "쟤들 왜 저래?"에서 그칠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2009년에도 황강댐 무단 방류로 인해 한국 쪽에서 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었습니다. 그런 사례가 있는데도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건 분명 비판 받아 마땅한 지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황강댐 방류를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남북 관계 경색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즉, 체제의 대치가 원인인 셈이죠. 황강댐 문제는 체제에 앞서는 생명의 문제입니다. 북한은 여전히 인도적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관점이란 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스을쩍 훔쳐봤습니다. 이데올로기는 드트라시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Idea(이상)와 Logik(과학적 인식)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즉, 관념의 과학이자 과학 발전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의도는 선했을지 몰라도 한국에 가져온 피해는 너무나 컸다
한국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 한 자유시장경제체제와 꾸준히 발전해 온 민주주의의 결합물인 '자유민주주의' 진영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마르크스가 크게 알린 '공산주의' 진영입니다. (자유민주주의란 용어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지만 여기선 한 진영을 나타내기 위한 용어로 쓰겠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죠. 하지만 분명 목표는 같았습니다.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둘의 목표였습니다.
이데올로기는 삶의 질을 증진시키고 사회를 이상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수단'입니다. 두 인물이 만든 이데올로기를 통해 현재 사회와 비교하고 지향점을 향해 잘 가고 있는지 성찰해볼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목적' 그 자체가 됐을 때는 심각한 폐해를 가져옵니다. 이데올로기가 가리키고 있는 '인간'을 잊어버린다면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꽃제비라는 존재는 북한이 추구하던 공산주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 출처: KBS
착취 당하던 노동자를 위해 탄생한 공산주의는 그 어디에서도 굴러가고 있지 않습니다. 재산을 공동 소유하고 정의가 넘치는 공동 사회를 구현하려 했으나 결과는 자유는 없고 가난만 존재하는 국가주의입니다.
북한의 빈부격차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공동 소유한다는 이데올로기는 그냥 글자로만 존재한지 오래됐습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백서에 따르면 북한 농촌 지역 어린이의 27%가 저체중에 시달리는 반면, 도시 어린이는 13%로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어린이를 굶게 하는 국가가 이데올로기가 목표하는 '인간'을 위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영화 '트럼보' 포스터. 돌턴 트럼보는 매카시즘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반대 진영에도 흑역사가 있습니다. 매카시즘은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반공주의였습니다.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는 1950년대, 미국 국무부에 사회주의자가 득실거린다고 주장했던 상원의원이었습니다. 매카시는 명단을 가지고 있다며 종이를 공중에 뿌렸고 그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갔습니다. 찰리 채플린, 아서 밀러 등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중 돌턴 트럼보는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한 명입니다.
돌턴 트럼보는 매카시즘 광풍에 휘말려 옥살이를 하게 된 인물입니다. 그는 옥살이 중에도 작품을 포기하지 않고 가명으로나마 각본을 써내죠. 그 각본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로마의 휴일'입니다. 후에 그는 '스파르타쿠스'로 화려한 복귀를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몇 년은 누가 보상해주나요? 이데올로기 때문에 아까운 그의 세월이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이미 체제 경쟁은 끝난 지 오래입니다. 소련이 무너진 것도 어연 30년이 돼 갑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목적이 됐을 때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가지고 오는 지도 모두들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뀐 것을 여전히 눈치 못 챈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화로 구현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나쁜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에 대한 성찰 없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노’ 유발에 목적을 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떻게 분노를 유발하려고 할까요? 그리고 그러한 나쁜 의도 때문에 어떻게 영화의 내용이 한없이 가벼워질까요? 한 번 천천히 알아보겠습니다.
* 이후 내용에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똘이장군에 영감 받은 거 아닌가요?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의 토대가 됐던 실제 사건 '엑스레이 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엑스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배가 상륙하기 전, 인천의 상황을 엑스레이 보듯 낱낱이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해군은 맥아더 장군의 요청을 받고 인천 첩보 활동을 위한 부대를 꾸립니다. 이들은 북한의 포대의 수, 위치, 지형 등을 파악해 보고합니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애국선열이 순국하고 맙니다. (출처: 조선일보 'X-레이 작전… 해군 첩보대원 17명 인천 잠입, 북한군 동향 맥아더에 보고')
여튼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심각히 왜곡하고 있습니다. 뭐, 처음에 새롭게 구성했다고 하니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 생각 안 날 정도로 내용이 수정됐습니다. 진실을 너무 묻어버리니 이 영화는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상이 참 선하신 거 보니 한국군 역할에 어울리십니다
영화는 박남철(박성웅)을 암살하며 시작합니다. 그를 암살하는 이유는 박남철이라는 신분으로 몰래 인천으로 잠입하기 위해서죠. 물론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지만 이제 이런 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이후 장학수는 림계진(이범수)을 만납니다. 림계진은 인천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북한군 사령관이죠. 하지만 그는 장학수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고 방해합니다. 왜일까요?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건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화 자체가 선입견에서 시작됐고 목적이 이데올로기에서 기반한 이분법적 사고의 주입이기 때문이죠. 북한군은 무조건 나쁘고 한국군은 무조건 착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북한군은 모든 인간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지금 이야기 하려는 게 북한이 착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한국전쟁의 책임은 북한에게 있고 그들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사실도 있습니다. 다만 이 영화는 최소한의 인물 설명도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설명하지 않는 의도는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분법적 선입견을 주입시키기 위함이고 그 의도를 숨길 생각도 없습니다.
총알을 피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D요~
한 장면 더 봅시다. 잠입한 스파이 장학수는 림계진의 의심을 계속 받습니다. 그러던 중 림계진은 장학수를 한 번 떠보죠. "박남철 동무는 (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다시 이야기하지만 장학수는 스파이입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믿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몫이디요~" 아니, 장학수 씨! 당신 스파이 맞습니까? 앞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림계진 머릿속 정답을 이야기 한 한채선(진세연)을 봐놓고도 그런 대답이라니. 과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답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수호하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배신할 수가 없죠!
하지만 제가 사령관이라면 저런 바보 같은 군인은 기용하지 않겠습니다. 즉,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주인공을 바보로 만들면서까지 북한의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쁘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무조건 좋다는 논리를 관객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우스워지기 시작하는 거죠.
남자가 나이 먹으면 감성적으로 변한다던데, 맥아더 장군 그대도 그런가 보오
이분법적 세계관이란 비이성적 논리가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맥아더 장권에 대한 묘사도 모욕에 가깝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자체가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성적인 자극으로 인해 이뤄졌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인천상륙작전을 전혀 이성과 논리로 풀어가질 못합니다.
실제로는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에 모여 있다는 점, 후방은 방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한 경험 등을 토대로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설득합니다. 미국 역시 한반도 땅이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는데 좋은 지리적 요충지라는 걸 알았죠.
하지만 영화는 이 점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소년병이 나옵니다! "총과 충분한 실탄을 주십시오!" 한국을 구한 인물이 이렇게도 '갬성'적인 존재였다니, 미국 국방부는 맥아더 장군의 갬성 자극에 흔들리는 조직이었던 걸까요? 그런 조직이라면 너무 믿기 어렵지 않을까요?
맥아더 장군의 갬성 자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중공군의 개입을 우려한다는 대통령의 말에 그는 38선 위까지 전선을 올려야 한다고 ‘갬성’으로 설득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끝까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강조했던 건 한반도 땅의 전술적 가치가 아닌 “엄마를 지키고 싶다”는 이정재의 말이었습니다. 믿기지 않는군요. 맥아더 장군, 그 역시 전쟁통일지라도 엄마라는 말만 들으면 눈가가 촉촉해지는 남자였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비슷한 점이 많아 동질감마저 느껴지네요.
이제부터 빨갱이만 보면 분노하는 건 여러분의 몫이D요~
영화는 불쾌합니다. 똑똑한 방법이 아닌 가학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림계진이 눈을 부라리며 살기를 내뿜는다면 한국군은 행동으로 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학수 산하 첩보부대는 림계진으로부터 기뢰 관련 정보를 빼내기 위해 첩보 작전을 수행합니다. 남기성(박철민)은 경비병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북한군을 일렬로 세워놓고 폭력을 행사하죠.
작전의 한 내용으로 이 장면을 넘음으로써 북한군에게는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무언의 논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속이 시원하지도 않습니다. 북한의 체제를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 아닙니다. 체제의 우월성은 폭력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인권 존중, 그리고 다양성 추구에 있습니다. 북한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북한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욕하는 이 영화를 보며 아찔했던 이유입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더라고요
장학수의 첩보 작전 전개는 웃기기만 합니다. 결국 정체를 들키고 마는 장학수와 부대원들은 도망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한국군은 총을 맞질 않습니다. 특히 장학수는 한 발 당 한 명씩 맞추는 기염을 토합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입니다.
아마도 장학수, 그는 김씨 일가와 함께 백두혈통을 타고 태어나 신묘한 전법을 쓴 게 틀림 없습니다. 안 그러고 어떻게 총을 맞지를 않습니까? 그것도 도심 한 가운데에서 말이죠. 아니면 정말 북한군의 실력이 뒤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분명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을 뺏겼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군은 이렇게 수준 떨어지는 북한보다도 더 수준이 떨어진다는 건데,,, 정말 이상합니다!
북한군의 체계도 형편 없습니다. 이 영화는 북한군을 그냥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그 자체로 봅니다. 그래서 림계진은 첩자가 들어왔다는 것에 분노해 손에 잡히는대로 부하들을 쏴 죽입니다. 이렇게 체계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이라니... 그런데 그 조직에 한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고 맙니다! 이 영화는 뭔가 생각하면 할 수록 이상합니다!
어째 영화가 가면 갈수록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북한과 똑같아지는지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영화입니다. 생각하면 저만 피로해집니다. 이데올로기가 오직 목적인데 그 사이에 복잡한 인권과 다양성 존중 등이 끼여들 여지가 있겠나요. 그저 영화는 "북한과 공산주의는 그냥 나쁜 놈입니다!"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군도 약해보이는 이상한 상황까지 만들어버린 것이죠. 너무 영화가 얕습니다.
그냥 관객 편하게 '림계진' 말고 '림빨갱'이라고 이름을 짓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잔학무도한 림계진은 장학수를 뒤에서 돕고 있던 이발사 최석중(김병옥)까지 찾아내 척결합니다. 이러면서 장학수의 첩보 작전에도 위기가 찾아오죠. 그리고 서진철(정준호)를 만나면서 다시 심기일전 해 작전을 수행합니다. 그 작전의 목표는 북한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북한군 장교 류장춘(김희진)을 납치하는 것입니다.
작전을 가기 전 장학수와 부대원들은 남기성의 아이를 한 번씩 안아봅니다. 의도는 뻔합니다. 한국군은 자유민주주의의 투사들이며 거대 악 공산주의자를 때려 잡으러 가고 있다는 거죠. 진부한 장면임을 넘어 이런 식의 묘사는 가식적으로까지 느껴집니다. 앞서 리뷰했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보도연맹 사건을 알고 나면 더더욱 그렇죠. 분명 한국 역시 이데올로기 광풍에 휘말려 가족을 파괴한 바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인천상륙작전'은 그런 반성은 전혀 담지 않았고요.
새로운 작전엔 최석중의 딸, 한채선도 투입됩니다. 그걸 모르는 림계진은 그를 설득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잖소?"라고 말합니다. 이 영화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영화와 림계진이 무슨 차이가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 증거는 '폭력의 전시'입니다.
'인민재판'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류장춘 납치 작전은 성공하지만 대원 두 명을 잃고 맙니다. 이 두 명은 잡혀서 인민재판을 당하고 말죠. 그런데 그 장면이 너무 과합니다. 12세 관람가인지 다시 확인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는 묘사가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죠. 류장춘 납치 작전뿐만 아니라 앞서 이야기 한 최석중의 인민재판 장면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보면 북한군은 인민재판을 통해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보면 인민재판은 계속해서 자행됐었죠. 여기서 북한군이 의도한 것은 '공포'라는 감정의 전달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도 인민재판처럼 폭력을 전시합니다. 영화는 무엇을 의도했을까요? 저는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분노, 즉 다시 한 번 매카시즘의 광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 감정을 기대했다고 저는 봅니다. 시대정신을 놓쳐도 한참 놓친 의도와 그 의도가 담긴 장면입니다.
눈을 의심케 만드는 장면
최악의 장면은 이후에 나옵니다. 류장춘 납치 후 그를 미 해군으로 이송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를 이송하기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는데 밧줄로 그의 목을 옭아맨 후 비행기가 끌고 가죠. 정말 제눈을 의심했습니다. 이거 분명 관객들에게 통쾌하라고 만든 장면인 것 같은데 저는 전혀 통쾌하지 않았습니다. 불쾌했죠.
북한은 무조건 나쁜 놈이야! 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으니 저런 장면이 탄생한 것입니다. 북한군들은 인권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동물에게도 하지 않는 행동을 저지른 것이죠.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고 주요 가치로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영화가 이런 장면을 담고 있어도 되는지 저는 의문스럽기만 합니다.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 멀미가 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끝까지 피로합니다. 이제 벌판 위에서 은엄폐도 안하고 수십명의 북한군과 싸우는데 전혀 총 맞지 않는 건 지적하지도 않겠습니다. 장학수의 부대는 팔미도 등대를 점령하고 불을 켜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북한이 지뢰 및 숨겨둔 포로 상륙작전을 방해하자 장학수는 장갑차를 몰고 포격을 시도합니다. 그것도 북한군이 떼로 있는 한 가운데에서 말이죠. 왜 아무도 못 알아차리는지도 지적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백두혈통이니까요.
장학수는 인천상륙작전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립니다. 그런데 멍청한 림계진은 후퇴조차 하지 않습니다. 불에서 살아남은 악의 화신 림계진은 뭐가 그리도 이성을 잃게 했는지 도망치지 않고 장학수를 잡으러 왔습니다. 혼자서 총을 든 북한군 30명은 거뜬히 사살하고 대놓고 장갑차를 몰지만 들키지 않는 능력을 가진 장학수를 이길 도리는 없습니다. 장학수는 “이제 그만하자”라고 하며 림계진을 사살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원빈. 잘생겨서 가져와 봤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겁니다. “이제 그만하자!” 언제까지 남한은 무조건 착하고 북한은 무조건 악한 이분법적 영화를 만들 겁니까? 이미 그런 영화는 끝났다는 걸 '태극기 휘날리며'가 증명했습니다.
현재 한국은 북한과 대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국방백서에 따르면 그들은 주적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악마화 하고 동시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국민을 분노 속에 살도록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정말로 '목적'으로 두고 있는 자유, 인권 등의 가치를 가슴 속에 새기는 게 공산주의라는 체제를 이기는 길 아닐까요?
그렇기에 이 영화는 '낡았다'는 데 비판지점이 있지 않습니다. 이데올로기만 앞세우고 목적으로 삼는 건 이미 인류에 나쁜 영향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걸 알면서 다시 되살릴려고 하는 건 나쁜 것입니다. 전쟁이 가져오는 허무함, 상처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그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대놓고 보여주는 '나쁜 영화'입니다.
한국의 코스피. 저 숫자가 얼마나 울리고 웃게 만들까 / 출처: KBS
한국의 두 전쟁 영화를 살펴봤습니다. 저의 생각이 잘 묻어났는지 모르겠네요. 갑자기 전쟁하니 경제가 생각납니다. 최근 팬데믹 상황에서 많이들 지적한 부분이 '경제'였기도 했죠. 의식의 흐름으로 이야기 이어가서 죄송합니다...
다음엔 경제 관련 영화를 가지고 와보겠습니다! 경제를 다루는 영화는 어떤 생각을 담고 있어야 좋을지 한 번 고민해보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