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방 Sep 15. 2020

팬데믹 백수의 골방 속 영화 감상: 공모자들

약자를 소비할 때만 날카로운 영화

영화 '공모자들'의 포스터


코로나19가 만든 '팬데믹'은 모두를 타격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코로나19가 다시 퍼지면서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됐었습니다. 이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졌죠. 저 역시 힘들었고요. 마스크 쓰면 귀가 너무 아프던데 잘못하면 끊어질 것 같습니다.


자영업자의 고통을 함부로 예단할 수도 없다 / 출처: 조선비즈


하지만 저의 고통은 약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자영업자나 노약자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당장 살아가는 데 지장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8월말 기준 카드 사용량은 전년 대비해 30% 이상 떨어져 자영업자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한 60대 이상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은 6월 기준 무려 20%에 달합니다. 똑같은 전염병이라도 그에 대한 결과는 달랐죠.


그 때문인지 최근 약자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약한 고리에 집중하자던 언론의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자영업자나 특수고용직들을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사회적 안전망을 하나씩 만들어 간다는 건 사회적으로 길게 봤을 때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약자가 그냥 소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약자를 공감하기는커녕 그저 돈 벌이 수단으로만 말이죠. 안타깝게도 대표적인 예가 영화입니다. 많은 영화들이 여성, 장애인, 빈곤계층 등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그 영상으로 인해 약자에 대한 공감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혐오가 안 생기면 다행일 지경이죠.


분명 여성이 출연하는 영화였던 것 같은데?


오늘 살펴볼 영화 ‘공모자들’은 약자를 무작정 소비하는 영화입니다. 자극적인 요소만 쏙쏙 골라 모두 약자에게 몰아넣어놨죠. 영화의 만듦새, 그러니까 개연성이 부족한 건 덤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공모자들’의 어떤 요소가 약자를 그저 소비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왜 약자를 그렇게 소비했을까요? 한 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이후 내용에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영화 리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감독님의 인터뷰부터 봅시다. 저는 'bnt news'라는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참고했습니다. 그는 자료조사, 자본주의와 흐려지는 윤리의식, 그리고 장기밀매에 대한 고발을 영화의 주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굉장히 자극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보여드릴 건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보여드릴 걸 보여준 게 맞는지 한 번 따져봅시다.


장기 적출을 실패한 주인공 영규


첫 장면, 누군가 배에서 탈출하려 하고 영규(임창정)가 쫓습니다. 탈출하려는 자의 몸은 어딘가 수술 자국도 보이고 온 몸이 피칠갑이네요. 아마 장기를 불법으로 적출하는 과정에서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배 탑승객들 사이에 둘러싸입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피투성이의 남자는 또 다른 장기밀매업자로 보이는 자와 함께 바다 속에 빠지면서 영화는 시작합니다.


영규와 일당은 따이공, 즉 중국 출신 보따리상들과 마약 밀거래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남들을 속이기 위해 마치 여행사인 것처럼 중국어와 함께 적힌 안내판을 들고 항구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군요. 영규는 밀거래 하는 사람들에게도 위력을 가할 만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입니다. 따이공이 몸속에 숨기고 온 밀수품을 바로 발견할 정도로 눈썰미도 좋습니다.


상호와 채희. 이런 장면이 영화에... 있었던가?


상호(최다니엘)는 보험사 직원입니다. 병원에서 무시당할 때도 있지만 아내를 위해 성실히 살고 있죠. 보아하니 배를 통해서 중국으로 늦은 신혼여행 갈 계획하는 것 같군요. 그에겐 아내가 있습니다. 아내인 채희(정지윤)는 걷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덕분에 영화 보기 더 힘들었습니다


동시에 다른 주인공, 유리(조윤희)도 나옵니다. 이 인물의 특징은... 업무태만입니다. 영화는 함께 일하는 동료를 못돼보이게 표현하고 싶었겠지만 제 눈엔 완전 민폐입니다. 지각에, 갑자기 업무 중 급한 전화왔다고 뛰쳐나가고... 직장 동료가 저 정도 짜증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뛰쳐나간 이유는 아버지의 수술 때문입니다. 병원 측에서 갑자기 장기이식수술이 안 된다고 통고합니다. 당연 딸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너무 슬퍼서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울 정도죠. 그러던 와중, 화장실에서 불법 장기이식 광고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불법 장기이식도 가격이 만만찮죠. 유리는 바로 불법 장기이식을 알아보는데 무려 8000만원입니다.


아버지를 위해 불법을 저지를게요!


그런데 이야기를 쌓는 과정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전 도저히 유리의 사정에 공감이 안 되는 겁니다. 불법장기밀매를 비판한다는 영화에서 불법장기밀매를 이용하는 사람이 명분을 가지며 등장하기 때문이죠.


영화는 관객들이 유리의 사정에 공감하도록 만듭니다. 유리의 아버지는 병원의 갑작스런 장기이식 수술 취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불법장기이식을 택합니다. 뭐 때문에 취소당했냐고요? 묻지 마세요. 영화는 정확히 설명 안 해줍니다.


유리의 아버지를 위한 효심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불법을 택한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것도 한 번을 고민하지 않고요. 없어져야 할 시장이 존속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겁니다. 그런데 불법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가지도록 한다? 영화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못 가봤제? 아일란드~ 사투리 어렵지 않아요~


안 그래도 설득력 없는데 방해요소는 너무 많습니다. 영화가 나서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군요. 안 그래도 이상한 사투리 때문에 몰입이 힘든 데 말입니다. 마치 실화에 바탕하고 시스템을 지적하는 듯 영화 홍보를 했는데 뜬금없이 이야기의 초점은 러브스토리에 맞춰집니다. 영규와 유리를 엮는 거죠.


영규가 일방적으로 유리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동배(신승환)에게 3억의 빚도 있고 밀수품들이 세관에게 들키는 등 상황이 어렵습니다. 동배는 영규에게 예전에 손 씻었던 일을 다시 제시합니다. 바로 불법 장기밀매죠. 영규는 그 일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합니다. 첫 장면에 나왔듯 한 번 실패했었고 그 실패로 인해 지금 어려운 상황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퇴양난에 빠진 영규는 어쩔 수 없이 불법 장기밀매 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매드 닥터의 등장


그 일을 시작하면서 경재(오달수)를 섭외하러 갑니다. 음, 매드 닥터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병원 문 잠그고 성관계를 하고 있는 장면부터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지금까지 불법 장기밀매의 핵심은 ‘돈’이었습니다. 영규가 하기 싫은 일을 다시 선택한 것도 돈 때문이고요, 동배도 영규를 불법 장기밀매 일로 떠미는 것도 빚 때문입니다. 감독님의 인터뷰에서도 그 점이 드러납니다. 감독님은 ‘자본주의의 고도발달에 발맞추지 못하는 도덕성에 대한 괴리’를 나타내고 싶다고 하셨죠.


그러면 돈에 미친 의사를 보여주는 게 주제의식에 더 부합하지 않나요? 지금 이 장면은 인물과 주제를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성관계에 환장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감히 그 이유를 예상해보겠습니다. 여자 배우의 노출을 통한 자극적인 영상 제공일 겁니다. 그리고 자극적인 장면을 넣은 이유는 '돈' 때문일 거고요. 저의 예상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맞아 떨어집니다.


모두가 웨이하이행 배를 타게끔 한 인물 동배.


하여튼 장기밀매를 위한 일은 진행되고 모든 인물이 웨이하이행 여객선에 모입니다. 유리와 아버지는 불법으로 밀매한 장기로 수술하러, 상호와 채희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영규 일당은 불법으로 장기를 적출하고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영규 일당은 상호가 잠시 컵라면을 끓이러 가는 사이 혼자 방에 남겨진 채희를 납치합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채희는 힘이 약한 여성에 걷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별 다른 반항하지 못하고 순순히 납치당하게 되죠.


왜 채희가 타겟이 된 거죠?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분명 감독님은 이렇게 인터뷰 했죠. “자료조사를 많이 했다.” 그렇다면 장기밀매업자들이 어떻게 타겟을 설정하고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납치하는지 상세히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영화는 그런 거 저언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 방에 장애인 여성이 있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언제쯤 상호가 컵라면 먹으러 갈지 알았던 거죠? 같이 먹으러 나가면 어쩌려고! 그런가 하면 납치의 동선은 어떻게 짰죠? 누가 자리끼 마시러 나왔다가 마주치면 어떻게 대처합니까? 이 영화는 그런 것들을 전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런가보다~ 하고 봐야 하죠.


심지어 납치를 한 후 영규는 말합니다. “저번에 죽었던 XX의 여동생이잖아!” 그 XX가 누군가 하니 첫 장면 때 바다에 빠져 죽었던 장기밀매업자를 말하는 겁니다. 즉, 이들은 납치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신상 파악도 하지 않고 납치를 했습니다. 그렇게 만전을 기하자고 멱살 잡고 눈을 부라리더니 기본적인 것도 하지 않네요.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난 후 불법 장기 적출에 대한 공포심이 작아졌습니다. 저렇게 허술한 사람들이라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겠네요. 영화가 허술해지는 걸 넘어 우스워졌습니다.


실종자가 발생했는데 아무도 열심히 찾지 않는 이상한 상황


허술한 장면은 또 있습니다. 상호는 아내를 찾으려 하는데 운항사 측은 전혀 협조하지 않습니다. 자는 시간에 방송하면 전부 깬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계속 귀찮은 티를 팍팍 내죠. 하지만 이 장면 역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를 탈 때는 요금을 지불합니다. 우리는 그 요금을 내면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 줄 의무를 운항사로부터 사는 거죠. 즉, 만약에 상호가 배상 책임을 물기 위해 소송을 거는 순간 운항사는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망합니다. 물론 영화 끝에서 상호 역시 장기밀매업자와 한 패라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운항사는 그 사실을 모르잖아요? 사람이 배 안에서 실종되면 운항사의 명운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지금 귀찮아 할 때가 아닙니다!


뭐 여러 있어 보이는 장치를 걸긴 했습니다. 배를 탄 줄 알았더니 명단에 아내가 없습니다. 운항사 측에서는 몰랐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 역시 너무 쉽게 반박이 가능합니다. 지불 내역이 있을 겁니다. 혼자 타는데 2인이 탈 돈을 지불하진 않겠죠? 현금을 내서 지불 내역이 없다면 어떻게 하냐고요? 유리가 아내를 봤지 않습니까. 증언하는 순간 장부 조작에 증거 인멸까지 독박을 쓰게 될 겁니다. 아니면 항구 주변이나 배 안의 CCTV를 참고할 수도 있고요. 저렇게 대응하다가는 운항사 직원들이 직접 배를 갈라서 장기를 팔아야 할 지경에 올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아직 이 영화의 가장 최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화 ‘공모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약자를 다루는 방식이죠.


잔인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의 생각을 눈 뜨고 보기 어렵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영화에서 매드 닥터를 소개할 때 베드신을 활용하는 게 좀 이상하다고 말입니다. 그 이상한 느낌은 결국 영화 중반부부터 확신으로 변해갑니다.


채희를 납치했습니다. 이제 장기를 적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옷은 다 벗기지도 않습니다. 가슴만 부각되도록 상의만, 그것도 가위를 이용해 찢습니다. 빨리 장기를 적출해야 하려면 모든 옷을 빨리 제거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영화는 그 당연한 수순을 밟지도 않고요.


당연하지 않은 행동은 계속 나옵니다. 영규는 카메라를 꺼내 상황을 기록합니다. 굳이 상의를 가위로 찢은 후에 말이죠. 그런가 하면 바빠 죽겠는데 매드 닥터인 경재는 채희의 몸을 함부로 만지며 성희롱을 합니다. 마치 발칙한 장난이라도 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죠. 아하! 실제로 장기밀매업자들은 성폭력을 저지른 후 범행을 진행하나 보네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속도가 생명인 불법 행위일 텐데 여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국으로 가는 배 위에 있잖아요?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굳이 여유가 있다고 해도 이 영화는 그 점을 생략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감독님이 직접 밝히기로는 이 영화의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라지는 윤리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을 보며 성욕조차도 느끼지 않는, 오로지 인간을 돈으로만 보는 존재들로 표현하는 게 주제의식에 더욱 맞습니다.


아까운 배우를 소비만 하고 말았습니다


주제의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장면을 넣은 이유는 ‘약자를 소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약자를 단순히 소비하고 있는지 보려면 두 가지를 봐야 합니다. 약자에게 얼마만큼의 스토리가 부여되었는가, 그리고 약자가 피해를 입을 때 쓸데없이 자극적인 장면을 넣지 않는가를 비교하다보면 어떻게 약자를 다루는지 알 수 있죠.


영화를 봅시다. 채희에게는 아무런 스토리가 없습니다. 아마 동배보다 없을 겁니다. 동배는 짧게 나오더라도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트리거 역할은 제대로 하거든요. 채희에게 스토리가 있다 한들, 그것조차 어딘가 매여 있는 존재입니다. 영규 동료의 여동생이죠. 영규의 동료가 배에서 떨어져 죽지 않았다면 여동생의 스토리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여된 스토리는 없다시피 한데 장면들은 너무나도 자극적입니다. 여성, 그리고 장애인을 이용해서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고 있죠. 노출로 흥행에 일조할 수 있는 여성에다가 더욱 동정심을 가져올 수 있는 장애인의 장기를 적출한다, 듣기만 해도 자극적이지 않나요?


영화는 자극적일 수 있는 요소는 다 넣었습니다. 필요 없는 노출, 쓸데없이 손가락을 칼로 벤 후 그 피로 흉부를 가로지르는 장면, 그리고 너무나도 잔인하게 묘사된 장기 적출 후 시체. 약자에게 자극적인 요소를 넣은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돈’이죠.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돈을 위해 자극적인 요소를 몰아넣다니. 살신성인의 자세가 이런 건가 봅니다.


너 나쁜 놈이었구나!


영화는 개연성 없는 반전을 넣어 헛웃음이 나오게 합니다. 솔직히 반전 넣은 이유도 돈일 거라 예상합니다. “관객들이 반전 넣으면 좋아하겠지?”라는 얕은 생각 말이죠. 그런데 그 반전이 이 영화의 발목을 잡습니다.


사우나에서 채희의 장기를 적출하고 중국에서 거래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시작됩니다. 영규가 탄 차는 이상한 데로 향하고 준식(조달환)은 갑자기 매드 닥터 경재부터 시작해 다 죽이러 다니죠. 알고 보니 채희는 죽지 않았습니다. 같이 일했던 동료의 여동생의 장기를 도저히 적출할 수 없었던 영규는 경재와 짜고 쳐 살렸던 거죠. 그리고 준식은 웨이하이로 오기 전 동배에게서 영규를 배신하라는 요구에 승낙했었습니다. 영규는 지금 외통수에 빠진 거죠.


그런데 반전 때문에 영화가 꼬여버립니다.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납치한 사람은 살린다? 이건 불법을 저지르는 장기밀매업자에게 인간미를 불어넣는 행위입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무엇보다 장기밀매업을 고발하려는 영화가 이래서는 안 되죠. 가해자에게 스토리를 부여하는데 비판의 칼이 안 무뎌질 수 있습니까? 영화의 모든 게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쓸데없이 착한 장기밀매업자


상호 역시 한 패였다! 라는 반전도 너무 허술합니다. 사실 상호도 동배와 함께였습니다. 상호를 축으로 한 세력들은 결국 중국의 병원에서 채희의 장기를 적출합니다. 아내의 장기까지 돈으로 본 파렴치한 사람이었죠. 사람이라는 표현도 아깝네요. 또한 유리의 아버지는 장기를 제공받을 줄 알았건만 사기 당해서 병원에서 장기를 적출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왜 상호는 한 패가 됐을까요? 설명을 듣다보면 돈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죽으면 세 명도 살린다고 하는 걸 보니 공리주의자인 것 같기도 하고요. 벤담을 좋아하나 봅니다.


하지만 이걸로 부족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삶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영화에서 상호는 갑자기 나쁜 놈이 됩니다! 왜 나쁜 놈이 됐는지 알 수 없고 언제부터 동배와 접촉을 해왔는지 알 수 없고 굳이 왜 장기밀매업을 택했는지 알 수 없고 왜 아내를 그 대상으로 삼은 건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고 “사실 상호는 천하의 나쁜 놈이었어!”라고 소리쳐본들 설득력이 생길 수 없습니다.


장기밀매업자가 교훈을 주는 엄청난 영화!


영화는 장기밀매업자 영규가 교훈을 남기며 끝납니다. 장기밀매업자가 ‘사람은 돈이 없어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라고 교훈을 주니 웃기지도 않네요. 그리고 급작스레 이 모든 상황을 와라랄라 쏟아내는데 이러한 방식이 참신하기까지 합니다. 뭐 3년간 공들여 채희를 납치하려 했다는데 3년 공들인 것치고 너무 허술하고 교통사고 내면서까지 일을 벌이기엔 수지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공모자들’의 단점은 스릴러 영화로서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죠. 세상에 재미없는 영화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 단점을 약자를 수단으로 활용해 메꾸려는 행태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아무런 서사도 부여하지 않고 그저 노출, 피와 같은 자극적인 요소로만 사용하고 버리는 그 행태 말입니다.


조주빈에 향해 있는 저 마이크들은 피해자를 향했어야 했다 / 출처: 뉴시스


올해 n번방 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주빈이 구속된 후 여러 언론이 열을 올리며 취재했죠. 그 때 언론이 받았던 큰 비판 지점 중 하나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한 방송사는 구속 후 조주빈의 생애를 단독 취재해 보도하다가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소모되기 바빴습니다. 피해자에겐 서사를 가질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한 언론사는 n번방에서 여아를 두고 성폭력 모의하는 텔레그램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 표현들이 적나라해 아연실색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피해자가 실재한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버젓이 있는데도 언론사는 이 사건을 그저 가십거리로 활용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영화 ‘공모자들’ 같은 영화가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 격으로 소개했지만 분명 ‘공모자들’이라는 영화만 이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힘은 강합니다. 영화가 그 힘을 계속 잘못 활용한다면 자는 여전히 자극성의 재료로만 소모되고 말 겁니다. 그런 분위기에 일조한 영화 ‘공모자들’은 나쁜 영화입니다.



영화는 어떻게 약자를 다뤄야 하는지 스릴러 영화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어떻게 살펴보다 보니 여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됐는데요. 여성에 대해 많은 고민과 성찰을 담고 있는 영화도 많습니다. 다음엔 여성을 다루는 영화를 소개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팬데믹 백수의 골방 속 영화 감상: 떼시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