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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 아이 May 25. 2023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직장을 11년을 다녔으니 꽤나 오래도 다녔다. 30살에 입사해서 이제 내가 41살이 됐으니 내 꽃다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이곳에 다니면서 서른여덟에 결혼도 했다. 그리고 이제 결혼생활을 한지도 3년이 다 돼 간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기에 대한 간절한 생각이 크게 없었다. 부부관계에 문제가 없다면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태의 문이 열릴 날이 있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던 친구들의 출산 소식이 들려오면서 내 마음도 조급해지는 걸 느꼈다.


분명 저 친구는 나보다 늦게 결혼을 한 거 같은데 벌써 아이가 생기고 출산을 했구나... 저 친구는 벌써 아이가 둘이구나... 지인들의 카톡 프로필에 아기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왜 우리 부부에겐 아이가 찾아오지 않을까, 이러다가 영영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때때로 들었다.


1년 여전 우리 부부는 결국 난임병원을 찾았다. 그때까진 의술의 힘을 빌려보자는 생각이 없었다. 다만, 현재 우리 부부의 몸 상태가 어떤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자궁 초음파는 걸 하고 피검사를 했다. 초음파를 할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덤덤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별 이상이 있을까. 그냥 노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그런 마음으로 다음 내원에서 의사로부터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시 의사는 내 난소가 얼마나 나이 들었는지 그리고 바로 난임시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이를 가지려면 내 몸에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때의 충격이 컸던 탓일까. 이후 나는 더 이상 난임 병원을 찾지 않았다. 나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동안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거는 아니다.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서 약도 지어먹고, 찬 것은 되도록 먹지 않고 커피도 디카페인만 먹는 등 나름의 건강 관리를 했으니까.



지난 연말쯤 다시금 병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해를 소득 없이 보내며 이제 더 이상은 아이를 늦출 수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병원에서는 다른 소견을 얘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이번에는 좀 더 크고 유명한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포털에서 그 병원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찾아봤다.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세상에 그 의사는 두 달 후에다 진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수십 통의 전화 끝에 그 유명하다는 의사 진료 예약을 잡고 첫 진료를 볼 수 있었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초음파 검사와 나팔관 검사, 피검사 후에 다음 내원에서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결과는 1년 전과 마찬가지. 난소 나이가 많아서 시험관 시술을 서둘러야 하고, 성공률은 20-30% 내외라는 것.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 검사 결과에서 나온 동일한 결과지를 받아 들고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너무 직장 생활을 열심히 했나? 그래서 내가 건강관리를 잘 못했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자책만 하고 있다가는 또다시 시간만 흘러갈 것이 뻔했다. 다음 내원에서 나는 바로 시험관 시술을 하겠냐는 의사의 말에 바로 예스를 했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 후회할 바에 안되더라도 일단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관 시술이 여성의 몸에 굉장히 무리가 가고 쌍둥이 출산이 많으며, 비용도 많이 들고, 그 과정이 너무 어렵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담담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이보다 더 힘든 과정도 겪어 왔는데 그 정도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담담한 마음 말이다.


회사에도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다. 노산이라 휴가 쓸 일이 많을 거라는 통보였다. 상위자는 오히려 아이를 가지는 건 축하할 만한 일이라며 눈치 보지 말고 휴가를 쓰라고 했다고 했다.


그렇게 회사의 배려 덕분에 현재까지 시험관 1차 난자 채취를 하고 수정란을 만들어서 키우는 단계까지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배아가 더 이상 발달하지 않아 1차 채취에서 끝나고 배아 이식까지는 가지 못했다. 다음 기회가 있으니깐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강남에 유명한 큰 병원이다 보니 아이를 가지려는 여성들의 모습이 병원에 갈 때마다 보인다.  20대 어려 보이는 여성에서부터 임신이 가능할까 정도로 생각되는 고령의 여성들도 보였다. 옷차림도 제각각, 간호사를 대하는 태도도 제각각이었다.


한 번은 검사 비용 결제를 하려는데 한편에서 간호사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한 여성을  보았다. 나보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간호사에게 거의 욕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퍼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엄마가 되려면 나의 품성이 화를 참고, 온화한 마음을 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극히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인데 이제 진짜 엄마가 되려고 하니 그런 마음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미래의 엄마가 될 사람이니 품행을 방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2차 난자 채취는 6월 말에 하게 되니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1차 시도가 실패로 끝났지만, 내가 엄마로서 아직 마음이나 몸이 준비되지 못해서 그렇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서 요즘은 맛있는 게 있으면 마음껏 먹고, 그냥 웃으려고 하고 되도록 화를 안 내려고 한다. 안 보던 좋은 영화도 보고, 열심히 과일도 챙겨 먹고, 햇살이 좋으면 일부러 걷기도 한다. 나의 모습이 미래에 내가 가질 아이에게 투영될 테니.. 몸과 마음과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발라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오늘도 햇살이 청명하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은 이미 아이를 배 속에 가지고 있는 거마냥 기쁘다.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그 기쁨은 상상을 초월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내가 필요할 때 휴가를 낼 수 있다는 직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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