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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19. 2024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통기타로 연주하는 법

  가수 성시경 씨가 개인 유튜브에 오랜만에 ‘먹방’ 말고 가창 녹음 영상을 게시했다. 제목이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라는 노래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들어본다. 오래전 가수 이소라 씨가 부른 노래를 다시 불렀다. 노래 말과 가락은 가수 김동률 씨가 지었다. 그가 직접 부른 음원도 있다.


[성시경 노래] 58.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l Sung Si Kyung Music (youtube.com)


  이런 노래가 있었지, 나 이 노래 좋아했었어, 재발견은 귀하다. 어릴 적 서랍 안에 ‘꼬불쳐’ 놓았다가 잊어버린 박하사탕을 다시 맛보는 것 같달까. 성시경 씨는 그만의 색깔로 노래를 재해석했다. 이소라 씨의 원곡이 담담한 고백에서 시작해 비장한 다짐이 되었다면 성시경 씨는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이내 애절한 흐느낌이 된다. 원작자 김동률 씨가 부른 것은 차라리 격조 있는 가곡 같다.


  노랫말은 이 얼마나 보석 같은가. 시적 화자는 지독한 외사랑 중이다. 연모의 대상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화자는 되돌아오는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마음을 비웃지만 말아 달란다. 외롭고 고되지만 끝까지 그 길을 가겠단다. 이제 멈출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으니 말리지 말란다. 나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바라는 것은 그게 전부다.


<가사>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그대 없이 나 홀로 하려 한다고

나의 이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려 말아요


  기타로 직접 연주하며 불러보고 싶어졌다. 길거리 버스킹을 하거나 뽐낼 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자기만족의 취지다. 몇 해 전 직장 생활이 새삼 괴로워졌을 때 어릴 적 취미였던 통기타를 다시 들었다. 기타를 사려고 퇴근길에 들렀던 낙원동 악기 상가의 이세계(異世界) 같은 공기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덕분에 둘 데 없는 마음을 일정 부분 의탁할 수 있었다. 요즈음도 주말이면 집 작은 방으로 들어가 둥기둥기 기타 줄을 퉁긴다.


  먼저 기타 코드를 표기한 악보가 필요하다. 대중가요 악보를 구매하여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근 일 년은 접속한 기억이 없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뒤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아낸다. 다행히 인터넷 사이트도 아이디도 살아있다. 노래 제목을 입력하여 검색한다. 마침 여러 버전의 악보가 검색된다. 최신곡이냐, 주음계와 부음계가 모두 표기된 2, 3단 악보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내가 찾는 노래는 비교적 옛 노래고 기타 코드만 필요한 1단 악보이므로 단돈 오백 원이다.


악보 사이트 화면


  출력은 B4 사이즈로 축소하여 인쇄한다. 대중가요는 대개 악보 두 장으로 된 노래가 많다. 간혹 세 장 짜리도 있는데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기타를 연주하다 중간에 악보 페이지를 넘기는 손동작이 영 번거롭다. B4 사이즈로 두 장 짜리 악보를 한 면에 인쇄하면 A4 용지 한 장에 딱 들어간다. 악보를 수납하는 클리어 파일도 마찬가지로 B4 크기로 준비한다. A4 규격 클리어 파일은 휴대하기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B4 클리어 파일은 통기타 가방에 쏙 넣어서 휴대할 수 있다. 「사랑이 아니라고..」 노래는 악보 두 장짜리 노래다.


  다음 유튜브를 검색한다. 코드 변환과 기타 주법을 참고하기 위해서다. 코드 변환이란 연주하기 쉬운, 그러니까 손가락 파지(把持)가 어렵지 않은 화음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기타 주법은 피크(기타를 치는 데 쓰는 삼각형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를 사용해 위아래로 훑어 소리를 내는 ‘스트로크’ 주법이나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뜯는 ‘아르페지오’ 주법에서 노래에 맞는 연주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지금 찾는 노래는 마침 여러 사람이 올린 연주 영상이 올라와 있다.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여 인쇄한 악보에 펜으로 변환된 코드를 써넣는다. ‘C#’보다는 ‘C’ 코드가 연주하기 쉽다. 주법은 서정적인 발라드 곡에 어울리게 아르페지오 주법이다. 기타 연주의 세계에서 오른손 엄지를 T, 검지 i, 중지 m, 약지가 r로 줄여 부른다.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T-i-m-r인지 T-m-i-r이 맞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안방 맞은편 작은 방이 연습실이 된다. 붙박이장에서 발판과 ‘보면대’를 꺼낸다. 보면대는 악보를 거치하는 일종의 키 큰 독서대다. 발판은 오른발 아래에 받쳐 기타를 몸에 더 바짝 붙일 수 있게 해 준다. 악기가 멀면 코드를 정확히 짚어 연주하기가 어렵다. 통기타와 다르게 클래식 기타는 왼발 아래에 발판을 둔다. 연주하는 자세의 차이 때문이다. 통기타는 통상 옆구리에 끼고 연주하고 클래식 기타는 두 다리 사이 몸 가운데에 두고 연주한다. 아내의 화장대 의자가 오늘은 악기 연주용이 된다. 「사랑이 아니라고..」 노래는 앞서 코드를 변환했으므로 원래 음계로 연주하려면 ‘카포’라고 부르는 집게처럼 생긴 도구를 써야 한다. 카포는 기타 목(neck)에 걸어 여섯 개의 줄을 전체적으로 음계를 높여준다.


보면대와 발판


  준비가 되었으므로 연습을 시작한다. 악보를 짚어가며 한 마디 한 마디 더듬더듬 연주해 나아간다. 첫 코드부터 운지가 무척 어려운 게 걸렸다. 프렛(기타 목에 마디마다 가로로 박아 넣은 가느다란 쇠막대, 음 높이를 결정하는 구간)을 두 개나 건너서 손가락으로 짚어야 하는 코드다. 일전에도 내가 아무리 연습해도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었던 그 코드다.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기타 코드 애플리케이션을 연다. 원하는 코드 이름을 입력하면 비슷한 화음을 내는 여러 개의 운지법(運指法)을 보여준다. 더불어 여러 개의 유튜브 영상을 조합해서 나만의 연주법을 완성한다. 그야말로 고도의 사고 작용과 끈기, 인내, 정성을 요하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잡아보는 코드가 많아서 왼손 손가락 끝마디가 금세 아리고 쓰리다.


  대학원 수업이 없는 저녁과 주말 낮 한 때를 이용해 반복 숙달한다. 처음에 자꾸 방지 턱을 만나 덜컥거리던 연주가 어느덧 스무드하게 한 곡으로 완성된다. 연습량이 쌓이다 보면 유튜브의 프로 연주자가 팁으로 제공하지 않은, 코드의 전환 사이에 미세한 손가락 동작이 만들어내는 음가(音價)의 뉘앙스까지 저절로 흉내 낼 수 있게 된다. 이때의 쾌감이 짜릿하다. 가수가 부른 음원의 속도대로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카포


  악보 없이 연주가 가능하게 만든다. 노래 자체는 무한히 반복 청취하면 저절로 외워진다. 연주는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사유가 필요적으로 수반된다. 노래의 전체적인 구성을 다시 살핀다. 「사랑이 아니라고..」 노래는 A+A+B+A(간주)+B+A’

의 구조로 돼있다. 이런 구조면 외우기가 비교적 쉽다. 노래의 큰 구조를 염두에 두면서 어려운 코드를 중점적으로 머리에 새긴다. 이렇게 보름 정도 연습하니 악보가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연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레퍼토리가 하나 늘었다. 비로소 내가 통기타로 연주할 수 있는 온전한 내 노래가 되었다. 굳이 김춘수 시인의 시어(詩語)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은 그렇다. 제아무리 좋고 귀한 것도 내가 직접 호명하여 나의 품으로 부르지 않으면 하나의 의미가 되지 못한다. 배우고 익혔으므로 틈틈이 연주하여 더 반짝반짝 빛나게 가꿀 것이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어도 상관없다, 아빠의 뮤직 라이프를 야속하게도 ‘시끄럽다’ 평론하는 아내와 딸의 핀잔에도 절대로 주눅 들지 않을 것이다. 작은 방 나 홀로 버스킹은 중단되지 않는다.


  자그마치 오십 년이나 진료한 어떤 저명한 정신과 의사가 그렇게 술회했단다.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며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통기타를 익혀서 연주하고, 그것을 구태여 기록으로 남기는 사소한 즐거움을 오래도록 유지할 셈이다.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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