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이자 외식 사업가 백종원 씨를 둘러싼 논란이 화제다. 자신의 이름을 건 가공육 통조림의 비싼 가격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더니 식품 원산지 표기 오류와 품질 문제, 원재료 함량 부족까지 연달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식품 위생법 위반, 회사 직원의 비위로 인한 경찰 수사 사실까지 알려지며 전에 없던 위기를 맞았다. 급기야 백 씨는 방송 활동 중단과 함께 기업인으로서 회사 경영에 매진하겠다며 사과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22년에는 작곡가이자 역시 방송인인 유희열 씨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유 씨가 당시 발표한 새 음반의 수록곡이 일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연주곡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던 것이 그가 과거 자신의 앨범에 싣거나 다른 유명 가수들에게 준 노래들도 해외 음악가들의 원곡을 따라한 것이라는 이른바 ‘표절 시비’에 크게 휘말리게 되었다. 유 씨도 앞서 백 씨처럼 그가 장기간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급히 사태를 수습했다.
최근의 백 씨 논란을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3년 전 유 씨의 표절 시비가 퍼뜩 떠오른다. 외식과 음악, 전혀 무관해 보이는 두 분야에서 일어난 일에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는 걸까.
우선 사태의 표면적 양상이 닮았다. 백 씨와 유 씨 모두 대중적 호감과 신뢰를 구축한 ‘창조적 전문가’ 이미지를 가진 인물들이다. 한 사람은 ‘집밥’ 만드는 요령을 쉽게 가르쳐주고 외식 자영업의 롤 모델이 되는 ‘선생님’으로 통했다. 다른 사람은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부터 경쾌한 댄스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대중을 위로하는 ‘감성 뮤지션’으로 칭송받았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전문 분야인 요리와 음악을 내세우는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들의 주인공으로 맹활약했다. 사업가로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던 중이어서 큰 규모의 회사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일이 커지게 된 모양새도 비슷하다. 백 씨가 만든 가공육 통조림이 논란의 작은 씨앗이었다. 그러다가 유튜브와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중심으로 여러 파생적 문제들로 쟁점이 번져나갔다. 네티즌들은 과거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가 했던 발언들까지 파편적 분석 대상으로 삼아 신뢰와 진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유 씨도 처음에는 1인 미디어 제작자 한 사람이 제기한 표절 의혹이었다. 금세 다른 여러 누리꾼들이 자발적 사건 수사관이 되어 그가 지난 시간 세상에 내놓아 인기를 모은 자작곡의 허상을 낱낱이 공개했다. 방송 통신 기술의 발달, 그로 인한 미디어 수용 행위의 능동적 전환이 두 사람의 작은 시비를 걷잡을 수 없이 큰 논란으로 만들어버렸다.
두 사람이 겪게 된 패착의 근본적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백 씨와 유 씨의 남다른 재능이 도리어 그들을 위기에 직면하게 했는지 모른다. 두 사람은 외식과 음악 분야에서 탁월한 감각을 가졌고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자신들의 무대를 시나브로 ‘쉽게’ 여기게 된 것은 아닐지 싶다. 백 씨는 그가 출연한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음식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며 쉽고 간단한 요리법을 초보자들에게 설파했다. 유 씨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기 한참도 전에 동료 가수가 그의 재능을 칭찬한 일이 있다. “외국 유명 곡의 도입부와 비슷하게 꾸며 달라 주문하니 삽시간에 뚝딱 만들어냈다.”라고 소회를 남겼다. 차라리 능력이 없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을 외려 그것이 많았기 때문에 각자 열정의 대상을 ‘쉽게 할 만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아닐까. 거듭된 성공 경험으로 남들과 견주어 자신들에겐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경계의 빗장이 스르르 풀린 것은 아닐지 짐작해 본다.
두 사람과 각각 같은 분야에 종사했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다른 두 사람을 떠올린다. 음악인 윤종신과 안성재 요리사다. 윤 씨가 만든 노래가 다른 사람의 기성곡을 따라 했다는 얘기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예술가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는 않을 것 같은 상상 밖의 근면함으로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손수 만든 노래를 거르지 않고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안 씨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식재료와 조리법에 천착하며 정교하고 진지한 예술 작품으로서의 요리를 고집한다. 두 인물 모두 간편하고 빠른 손쉬움보다 느리더라도 진정성 있음, 유행과 경향이 아닌 끝없는 자기 성찰을 전제로 한 지속적 창작을 고집했다는 점에서 논란에 선 다른 두 인물과 대비를 이룬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 우리말로 취소 문화(取消 文化)라고 부르는 사회학 용어가 있다. 성공한 저명인의 과거 언행을 문제 삼아 그의 사회적 지위를 일시에 잃게 만드는 대중의 심리, 혹은 근래의 사회 문화적 현상을 뜻한다. 백종원, 유희열 논란도 그저 그런 세태의 단면이려니 싶었다. 살펴봐야 할 것은 비단 백 씨와 유 씨 같은 유명 인사가 아니더라도 범인인 우리가 무엇을 새기느냐다. 어떤 분야와 영역 위에 있는 사람이든 ‘잘 안다’고, ‘잘한다’고 해서 그것을 쉽고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새삼스런 경구(警句)다. 재능을 바탕으로 한 효율성 추구도 필요하겠지만 일관된 진정성이 더 빛나는 가치다. 음식이든 음악이든 ‘팔리는 것’보다 ‘남는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은 이제 단순히 ‘좋은 것’이 아니라 ‘정직한 것’을 원한다.
백종원 씨의 사과 이후, 논란을 즈음해 급락했던 백 씨의 회사 주가가 조금 반등했다고 한다. 시장은 경영인인 백 씨의 사죄를 그래도 진심 어린것으로 평가하고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사정만이 아니라 그에게 가족의 생계를 모두 건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의 형편이 회복되길 무엇보다 소망한다. 디지털 감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도 고개 숙인 백 사장의 진심을 계속 검증할 요량이다. 단, 백 씨의 출연을 예고한 예능 프로그램 새 시즌은 시청하지 않을 셈이다.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