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아 Apr 13. 2024

수면양말을 신으면서 지난날을 후회하겠지.


거긴 어때? 춥진 않아?  

나는 오늘 볕이 좋길래 환기시킨다고 화장실이랑 주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가 발이 시려워서 금방 닫았어. 집에만 있으니까 자꾸 날씨에 속아. 창문 밖의 볕이 너무 좋아서 봄이라고 착각하거든. 아직 2월인데 말이야.


20대 후반이 되니까 조금만 추워도 발이 시려워. 그래서 요즘 길가다 쳐다도 안보던 수면양말을 사서 신는데 문득 할머니가 생각나더라. 촌의 공기는 더 뜨겁고 차가워서 가을이 될 때 쯤엔 항상 양말이나 덧신을 신고있었잖아. 내 발 시렵다고 바로 사게되는 이천원짜리 수면양말 하나 사주지 못했던게 너무 미안해. 할머니는 하나라도 더 주려고 냉장고에서 요플레를 꺼내고 과일을 건내고 박상을 담고 바지 안에 속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만원짜리 한두장을 쥐어줬었는데.


지난날을 후회해서 뭐하나 싶겠지만 후회해야 더욱 자주 떠올릴 것 같아. 사랑하는 마음이 원래 그런 거잖아. 속은 걸 알면서도 또 열어보는 창문처럼 말이야. 나는 내일도 날씨에 속을 예정이야. 그럼 수면양말을 신으면서 지난날을 후회하겠지. 따뜻해지는 봄이 오기 전까진 이렇게 그리워할게. 거기는 날이 좋아서 덧신이 필요 없었으면 좋겠다. 잘 지내고 있어. 또 편지할게.


2021년.02월

현아가

작가의 이전글 반복되면 자라나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