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한없이 두려웠던 적이 있다.
에어컨 소리만 가득 찬 좁은 원룸에서 바들거리는 마음을 붙들고 맥주 네 캔을 왕창 때려 넣어야 잠들었던 매일은 이제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수입 맥주는 네 캔에 만 원이었고 나는 네 캔의 맥주를 고르는 시간을 좋아했다. 다양한 맥주가 빽빽이 꼽힌 커다란 냉장고를 훑으며 뭘 먹을지 궁리하던 순간은 나에게 어떠한 슬픔도 없었다. 결국 내 손에 뽑혀 나오는 맥주는 파울라너 뿐일 걸 알면서도 그 순간은 놓칠 수 없는 하루의 설렘이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파울라너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달갑지 않은 추억에 대한 역치가 낮은 내 회피법인데 6년이나 된 그 시절에 잡혀있는 것 같아 종종 씁쓸하기도 했다.
심지어 두 달전 부터는 금주를 선언해 술 자체를 가까이하지 않고 있다. 만족스러운 매일을 위해 나를 더 조절하기로 한 것인데 꽤 괜찮다. 무려 평생 술을 안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놀라운 생각까지 들었으니 지금까진 성공적인 금주다.
며칠전엔 외출하다 집에 가는 길 심한 갈증에 제로콜라가 너무 먹고 싶었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콜라를 찾는데 맥주코너가 눈에 띄었다. 투명한 유리 안 빽빽한 맥주, 그 속에 금색의 파울라너는 여전한 모습으로 꽂혀있었고 나는 이 맥주를 다시 찾을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더듬거리며 그때의 맛을 떠올려봤더니 속이 울렁거려 아직은 때가 아니구나했다.
만약 그때의 맛이 맛있게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언제일까.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것에 만족을 느끼고 있을까, 또 내 옆엔 누가 있을까. 어떤 모양이든 그때의 나는 달갑지 않아도 달가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괜히 그날을 기대하며 제로콜라를 집어 들고 계산을했다.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마셨다. 해소된 갈증이 어느때보다 시원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