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촌은 어느 곳보다 낭만적이다.
먼 곳을 바라보면 산이 있고 가까운 곳을 바라보면 논이 있다. 회색의 시멘트라곤 울퉁불퉁한 도로와 집집마다 쌓여있는 담벼락뿐인데 이마저도 집 마당에 심어놓은 감나무 덕분에 낭만적인 촌에 이바지하게 된다. 감나무의 가지들은 담벼락을 넘겨 파란 잎을 내놓는데, 그 잎의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쾌쾌하고 삭막한 시멘트 담벼락 위에 쏟아질 듯 자리하고 있는 감나무 잎들은 바람이 불면 사그락 소리를 내며 제각각 움직인다. 그럴 때면 나뭇잎 사이사이 생기는 공백을 놓치지 않고 햇빛 기둥이 무지갯빛을 내며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뜨거운 햇빛과 미지근하지만 선선한 바람, 어마어마한 감나무잎들 사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햇빛, 이보다 낭만적일 수 없지 않을까.
경상북도 경주시, 문화의 도시다운 기와모양의 톨게이트를 지나 옆 샛길로 빠지면 낭만적인 촌 동네 도초가 나온다. 내 할머니 옥조가 살던 집, 정확히 말하면 아빠의 부모님의 부모님 때부터 살던 집이 거기에 있다. 옥조는 몸이 작은 편이었다. 쉬지 않고 논과 밭일을 해온 굽어진 허리와 다리는 옥조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작아진 몸 만큼이나 옥조는 건강이 좋지 못했다. 시멘트 바닥 위를 탈탈거리는 플라스틱 유모차 바퀴 소리는 들리다 말다를 반복했다. 유모차에 의지해도 숨이 차서 오래 걷지 못하던 옥조는 짧은 거리도 한참 걸렸고 나중엔 그 짧은 거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새벽녘에 나갔다가 길을 잃고 울었다는 소리에 마음 아파하던 아빠가 생각난다. 감정표현에 서툰 경상도 남자인 아빠는 속상하면 화를 내는데 괜히 엄마와 언니와 나에게 이야기를 하며 목청을 높였던 것 같다. 옥조는 요양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자식들의 만류에도 집 앞 마당 양쪽에 여덟 줄이나 되는 텃밭을 가꿨다. 요양병원에 들어가서도 텃밭이 걱정되어 자식들과 며느리를 괴롭혔다. 엄마와 아빠와 고모는 짬짬이 시간을 내어 텃밭을 보러 갔다. 잡초를 캐고 커다란 돌을 고르고 농작물을 캐내어 나눠 가지기도 했다.
부산에 사는 나는 달에 한 번 경주에 들린다. 나의 엄마 아빠가 사는 곳도 경주에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 살고있는 언니는 화상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덕분에 쉬는 날이 들쑥날쑥해 언니의 스케줄에 맞춰 경주에 가곤 한다. 작년 8월 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언니와 날짜를 맞춰 경주에 갔다. 새로 농작물을 심기 위해 밭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며 움직이는 엄마 아빠를 따라 도초로 향했다. 8월 한여름 대낮의 햇빛은 말도 못하게 뜨겁다. 아빠는 도착하자마자 촌스럽지만 힙한 갈색 모자를 썼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 여덟 줄이나 되는 텃밭을 천천히 바라봤다. 시들거리는 고추와 무성한 깻잎, 새로 자라나고 있는 부추와 썩어가는 호박잎, 그리고 너덜거리는 비닐들.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마음이 들리는 듯했다. ’이걸 언제 다 치우노.’
아빠는 서둘러 커다란 통에 농약과 물을 채워 넣고 농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먹을만한 호박잎을 따고 나는 잔디를 다듬었다. 엄마는 주방에 들어가 점심을 준비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매콤, 달콤, 새콤한 비빔국수와 소고기. 도초에 오면 자주 해먹는 단골 메뉴다. 하던 노동을 대강 마무리하고 엄마를 도우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옥조의 집 냄새가 음식 냄새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요양병원에 있는 옥조는 잘 있는지 궁금해졌다. 면회를 갔던 엄마가 찍어서 보내준 옥조의 사진을 보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자다 깬 모습의 옥조는 더욱 작고 야위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많이 아픈 거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웃으면서 아직 괜찮다고 말했고 안심하며 전화를 끊었었다.
엄마는 비빔면에 넣을 국수를 삶고 오이를 썰은 후 양념장을 만들고 있었다. 소고기를 구우라고 건네는 걸 받아들고 가스버너에 올려져 있는 프라이펜 앞에 섰다. 소고기를 올리며 내가 말했다. “할머니도 고기 좋아하는데.” “할머니?” “응” “맞아, 할머니 고기 좋아하시지.” 엄마는 대답하고 소량의 면을 양념장에 묻혀 간을 보라며 먹여주었다. 너무 맛있었다. 엄마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하고 서둘러 고기를 마저 구웠다. 언니도 하던 노동을 마무리하고 도우러 왔다. 사랑채에서 밥을 먹기 위해 물과 그릇과 컵을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한입만 먹었을 뿐인데 자꾸 입에 감칠맛이 맴돌아 침이 고인다. 입을 쩝쩝거리며 나도 서둘러 비빔국수와 소고기를 옮겼다.
본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뻗어있는 텃밭 중 오른쪽엔 사랑채가 있다. 초가집마냥 허름했던 사랑채를 무너뜨리고 회색깔 컨테이너로 멋들어지게 지은 나름의 새집이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비빔국수와 소고기를 세팅한 뒤 아빠를 부르기 위해 사랑채 문을 열었다. 아빠는 농작물이 자라날 때 방해가 되는 큰 돌을 고르고 있었다. 돌을 고르느라 숙여진 허리를 보고 있자니 옥조와 체구가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옥조가 작아진 만큼 아빠도 작아졌다는 뜻이다. 한참 올려다봐야 했던 눈높이는 비슷해졌고 살이 빠져 마른 몸이 안쓰러웠다. 마음이 아팠다. 그만하고 빨리 밥을 먹으라고 소리쳤다. 아빠가 힘든 게 싫었다. 낭만적인 도초가 조금은 덜 낭만적이게 보였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아빠를 보며 ‘오늘 노동은 내가 다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아빠와 언니와 나는 엄마표 비빔국수를 맛있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엄마는 뿌듯해하며 많이 있으니 더 먹으라고 했다. “을든 드 묵우부구!(일단 다 먹어보고!)” 입안에 비빔국수와 소고기를 가득 넣은 채 대답하다 비빔국수는 정말 멋진 서민의 음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만드는 시간 10분, 필요한 재료는 고추장, 간장, 설탕, 참기름. 이렇게나 간단한데 이렇게나 맛있다니! 도초에 올 때마다 비빔국수를 해먹는 이유가 있었다. 찐한 햇빛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모든 염분을 배출시키고 난 뒤 탈진이 될 즈음 짭쪼름하고 달콤한 비빔국수는 새로운 염분을 충전시켜주는 새참으로 적합한 음식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달짝지근한 비빔국수, 그리고 고소한 소고기를 한 번 더 음미하며 유리로 된 사랑채 문 넘어의 텃밭을 바라봤다. 지저분하지만 푸릇푸릇 자라있는 농작물과 잔디들, 길고 찐하게 뿜어져있는 무지갯빛 햇빛. 아, 역시 촌은 낭만적인 곳이구나.
옥조도 동네 사람들 다 같이 모여 농사를 지을 때 비빔국수로 새참을 먹었을까? 아빠가 비빔국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옥조가 자주 해줬던 음식이라 그런 건 아닐까? 문득 궁금해졌지만 묻진 않았다. 아픈 옥조에 대한 걱정과 한참 남은 옥조의 텃밭일에 아빠의 심신이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빠는 금새 비빔국수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문밖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빠가 햇빛에 나가서 땀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대로 가만히 앉아 낭만적인 촌의 풍경만 즐겼으면 좋겠다. 아빠에게 비빔국수 한 그릇을 더 먹으라고 했다. 아빠는 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슬금슬금 노동할 채비를 하는 아빠를 뒤따라 나도 서둘러 준비했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쉴 수 있도록 노동을 도와야 했다. 나는 밭일을 제대로 도와본 적이 없어 아빠에게 배워야 했다. 웬일로 열심히 돕는 막내딸이 기특한 아빠는 하나씩 알려주었다.
아빠에게 배운 너덜너덜해진 비닐과 천을 걷어내어 정리하는 일을 한참이나 했다. 계속 숙이고 있던 허리를 필 때에는 수축된 근육을 억지로 늘리는듯한 아픔이 찾아왔다. 하지만 아빠가 힘든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나 건강이 호전된 옥조가 요양병원에서 돌아와 잘 가꿔진 텃밭을 보며 기뻐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아마 아빠의 마음도 같지 않았을까. 노동을 끝내고 잡초와 흙으로 지저분해진 마당도 쓸었다. 아빠는 오늘은 막내가 일을 다 했다며 좋아했다. 웃는 아빠를 보니 힘들어도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아마 나는 20대 후반인 지금에서야 철이든게 아닐까 싶었다. 몇 시간 바짝 일했다고 조금 배가 고파졌다. 아까 남은 비빔국수가 생각났지만 이미 불어터져 엄마가 버리고 난 후였다. 아쉬워하며 아까 먹었던 비빔국수의 맛을 상상했다. 금새 입에 침이 고였다. 역시 비빔국수는 서민의 음식이 확실했다.
그리고 3일 뒤, 옥조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생각보다 덤덤하다고 생각했는데 경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났다. 콧물도 났다. 많이 슬펐다. 이제 옥조의 텃밭 일을 배워 도울 수 있게 됐는데 옥조는 떠났다. 떠나기 얼마전쯤, 옥조는 잃었던 기억을 찾았다고 한다. 아빠도, 엄마도, 고모들도 모두 기억했다. 듣진 못했지만 아끼던 텃밭 걱정도 하지 않았을까. 아빠가 유난히 작아보여 마음이 아팠던 그날, 노동 후 먹는 비빔국수의 참맛을 알아버린건 아빠를 도와 아끼는 텃밭을 가꿔달라는 옥조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옥조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