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인가 적었던 글인데, 서툰 글 솜씨 그대로 기록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올려봅니다. 귀엽다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 -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나는 철이 들었다. 수많은 누군가를 보내고 나니 30대를 앞두고 있었고 지금은 친언니를 보낼 때가 되었다. 언니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집안의 경조사를 필히 챙겨 멀리 있는 동생의 안위여부까지 체크하는, 맏딸로서 어디 내놓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믿음직한 자식이었다. 현재 그녀는 음악과 술을 멀리하고 취미로 프랑스 자수를 놓는 건전한 사람이 되어 비슷한 류의 남자친구를 만나 7년의 연애 끝에 건전한 가정을 꾸리기로 약속했다.
언니가 프랑스 자수를 놓을 때 나는 테이블에 소주잔을 놓았다. 글과 독서가 취미라지만 1,2,3,4를 알게 된 순간부터 공부와는 연을 끊었으며 음악과 술을 가까이해 청춘의 한 부분을 유흥으로 적셨다. 언니가 7년간 한 남자와 안정적인 연애를 이어갈 때 나는 남자와 친구를 통한 각종 이별에 천천히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눈물 한 방울에 술 한 모금을 마시고 흘린 눈물만큼 기억을 잃던 나에게 언니는 마냥 지루한 사람이었다.
떠나보낸 사람들의 빈자리와 잃었던 기억의 공백은 경험으로 채워졌다. 그 기간 동안 나는 항상 받기만 했던 안위여부를 먼저 물어볼 수 있는 정도의 어른이 되었고 언니는 ‘지루한 사람’에서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달에 한 번 본가에 모여 한 달 치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날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나는 당황했다. 서로 전화도 잘하지 않는 사이에서 늦은 시간의 전화는 전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별’이었다. 7년 연애의 마침표를 찍고 마음이 아파 동생에게 전화를 했나 싶었다. 누구보다 이별의 아픔에 공감해 줄 수 있는 나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생각보다 멀쩡한 목소리었다.
“뭐하노~”
“그냥 있다, 왜?”
“그냥~ 밥은 먹었나~”
전화할 때 말꼬리를 끄는 버릇이 있는 언니는 말꼬리와 함께 말의 요점도 끌었다.
“어어, 왜 전화했는데?”
“있잖아~”
“어어~”
“내가 결혼하면 어떨 것 같아~?”
“..... 언니야 프러포즈받았나????”
이별은 이별이었다. 7년의 연애를 끝내고 다시 부부로 만나는 행복한 이별이었을 뿐이었다. 결혼식은 빠르게 진행됐고 어느 때보다 가족 간의 소통은 활발했다. 본래라면 언니와 반년치 되는 연락의 양을 한두 달 사이에 나눴다. 짧고 굵은 소통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소울푸드가 돼지갈비와 김치찌개라는 것, 손이 커서 요리를 할 때 음식량이 감당 안 된다는 것, 하고 싶은 게 많아 본업 외에도 벌리는 일이 많다는 것. 언니와 나는 성격과 취향이 다를 뿐 같은 점 또한 있는 분명한 자매였다.
하루는 결혼 준비 중 속상한 일이 있던 언니와 한 시간 가까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속상함을 토로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쳐준 게 다였다. 전화를 끊고 언니와 이렇게 오래도록 전화를 한 적이 있나 생각했다. 2년 전 딱 한 번, 그날도 늦은 저녁이었던 것 같다. 언니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을 때 참다 못해 너무 힘들다고 전화를 했었다. 언니는 오랫동안 쌓아놨던 속상함을 털어냈고 나는 또 맞장구를 치며 들어준게 다였다.
언니는 힘들 때 나를 찾은 적이 있었다. 인지를 하고 나니 미안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언니에게 의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었던 것 같다.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무뚝뚝한 동생에게 언니 또한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삶의 답을 얻는다.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위해 떠나는 언니에게서 소통을 배웠다. 약속처럼 정해진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닌 나의 하루와 감정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 언니와 나 사이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전혀 놓치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의 연락만 하고 있지만 언니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닌 ‘나와 다르지만 또 같은 사람’이 되어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편한 마음으로 든든히 지내고 있다.
나는 이제 30대를 맞이한다.
앞으로도 누군 가를 떠나보낼 것이고 새로운 답을 얻어 또 다른 누군가를 후회 없이 떠나볼 수 있도록 다듬어질 것이다.
나는 여전히 철이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