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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Jul 29. 2023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연수중일지도

《연수》출간 기념 장류진 북토크 후기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 좋았다. 북토크나 작가와의 만남 류의 행사에 참석한 게 오랜만이라서 잊고 있었는데, 나는 원래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일단 소설책을 읽는 사람이면서, 북토크를 찾아서 올 정도의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그랬다. 끝났을 때 '정말 즐겁고 좋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 나머지 북토크 장소였던 도서관 밖으로 나섰을 때 그 이 온도, 습도, 분위기(!)를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은 기분이었다.


북토크 진행자가 김하나라는 걸 전혀 모르고 신청했던지라 깜짝 놀랐다. 진행을 정말 매끄럽고 유머러스하게 하셔서 팬이 되었다. 초반에 북토크가 이루어진 장소가 북토크계의 체조경기장이라는 비유부터 이미 빵 터졌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이런 식으로 유머 코드가 맞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다.

장류진 소설가는 매우 사회화가 잘 된 작가 같았다. 아, 가끔 사회화가 잘 되었다는 수식어가 작가들에게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작가라는 점을 방패삼아 무례나 비상식과 솔직함이나 예술가적 선구자 기질을 구분 못하는 면면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해온 나에게는 칭찬에 가깝다. 특히 장류진처럼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세태 소설 계열의 작가라면 더더욱.


《연수》북토크인만큼 소설집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완독 후 참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독자들이 많이 궁금해했을 법한 <공모>의 결말에 대한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천 사장이 무슨 암에 걸렸을까를 고민하다가  '천 사장이 정말 암이긴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만들어낸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인물의 모든 것을 소설가가 아는 것은 아니니까.

재미있는 부분이 너무 많았는데 쿨팬티 이야기가 너무 강력했다. <라이딩크루>에서 얇은 팬티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여름 팬티'로는 표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치 팬티 배너 광고에서 소재가 얇고 시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손을 넣어 찰랑찰랑함을 연출하는 장면이 떠오르는 표현을 찾다가 '쿨팬티'가 되었다고 한다. 한방에 이해할 수 있는 소설가의 글쓰기의 한 예시였다. 심지어 표현하고자 했던 게 팬티인 것도, 그 작품이 <라이딩크루>라는 것도 전부 웃기다.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건 2011년부터고 2019년 데뷔라서 8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중간에 소설쓰기를 그만둔 적도 있다고. 중간에 문예창작과를 가야 하는지 고민도 했고 심지어 실행에 옮겼다고. 안 쓰는 기간에 소설을 쓰고 싶다는 불씨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행운이면서도 고난의 길이 예약된 각성이, 그리고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성실하게 써 온 궤적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글쓰기(심지어 시도 아닌 소설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아주 잘 알기 때문에. 회사에서 작품을 인쇄하기 위해 프린트 버튼을 누르고 나서 누가 볼새라 공용 프린터로 달려갔다는 경험담이 진짜로 리얼하게 짠하고 애틋하고 웃펐다.


장류진 소설가가 꼽은 카피의 3대 적폐 이야기에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기억에 남는 건 페퍼톤스를 좋아한다는 것! 나도 페퍼톤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북토크 시간 내내 공감으로 내 마음이 가득찼고 많이 웃었다.

원래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도 기사나 인터뷰를 찾아보는 편이 아니라서 몰랐는데 이 후기를 쓰면서 검색해 보니 IT 기업에서 기획자로 7년간 일했다고 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 괜히 하이퍼리얼리즘이 아니었구나 싶다. 심지어 MBTI도 나와 있는데 나와 동일하다. 기획자 경력, 비슷한 성격 유형에 페퍼톤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까지(!) 장류진 소설을 읽으며 그토록 공감했던 이유를 더 알 것 같았다.


소설집의 제목을 《연수》로 짓게 된 비하인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원래 두 글자 제목은 너무 단출할 수도 있어서 고민했는데 결국 연수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표제작 제목이 그대로 소설집 제목이 된 것이긴 하지만, 정하고 나니 실린 소설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고. <연수>는 물론이고, 연수원이 배경인 <펀펀 페스티벌>, 인턴 기자의 이야기인 <동계올림픽> 등. 연수라는 키워드가 관통한다는 작가의 느낌에 공감한다. 비단 운전 연수나 인턴십 같은 눈에 보이는 연수가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는 모두 '내가 원하는 나'가 되기 위한 연수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다소 헤매기도하고 힘겹기도 하고 웃프기도 한 그런 연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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