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공부하는 법》 리뷰
내 마음 공부하는 법
저자 신고은
출판사 유유
출간일 2022.06.14
페이지 264
마음이 심란하던 시기에 독립서점에 갔다가 발견한 제목이었다. 역시 서점에서 눈에 들어오는 제목은 나의 꾸준한 관심사와 더불어 그때그때 고민하는 것과 연관된다.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던 것도 내 마음이 어지러운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다. 당시의 나는 병환이나 경제적 곤란 등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힘들었다. 일이 많던 시기이긴 했지만 절대적인 업무 강도로 치면 그리 결정적인 이유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였다. 커다랗고 결정적인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나도 내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게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다.
사람들의 상황과 심리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마음에 딱 알맞은 이름표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섹션 쪽에 있는지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자기복잡성에 대한 인지와 잘못된 기질은 없다는 부분이 가장 다가왔다.
흔히 사람에겐 다면적인 부분이 있다고들 말한다. 자기복잡성과 맥락이 이어진다. 자기복잡성을 이해하고 나를 위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세상을 향한 시선이 변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되어야 할 나'의 대기자로 살아가면서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기 쉽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나를 위한 나의 모습, 나다운 나의 모습이 있다. 이 모습으로 살아갈 때 세상에 대한 시선이 희망적인 방향으로 바뀐다고 한다.
한국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처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목표와 의무를 지닌 나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대학 진학, 취업, 결혼, 내 집 마련이라는 끝없는 목표를 지닌 나의 대기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뤄야 할 과제는 끝이 없다. 당연히 실패감이 누적되고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적당한 목표의식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동기를 주기도 하지만 알다시피 한국의 경쟁 사회의 치열함은 이미 적정선을 넘어선지 오래다. 모두가 경쟁적 구도에서 눈을 돌려서 나다움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빛난 기회를 찾'아 '적재적소에 알맞은 자기를 배치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에 조금 서글퍼졌다. 그래도 찾는 걸 멈추지 않기로 했다. 그게 나답게 사는 방식이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던 시절 사소한 일에도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백팩을 멘 사람이 나를 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짜증이 나 있었다. 앉아 있는데 자꾸 내 자리를 침범하는 옆 자리 사람에게도,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 나를 보고도 속력을 줄이지 않는 차들에게도 불쑥불쑥 화가 났다.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서로 자리를 침범했다며 어깨를 밀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목격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이기에 그 신경전의 전말을 직관한 입장에서 보기에 사실 처음부터 딱히 크게 침범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다. 처음에 뭔가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 짜증을 내면서 어깨를 밀었고 밀린 사람도 되갚아 주겠다는 듯 밀었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시트콤의 코믹한 연출 장면처럼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사실과는 달라도 더 부정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쉽다는 것, 그리고 작은 불편함에도 너그러워지기 어렵다는 것을. 그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내 모습을 제삼자의 입장으로 보게 된 기분이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작은 일로 화내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원래 사람들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를 고민하게 만든 에피소드였다. '기질'에 대한 부분을 읽었을 때 이 원인에 대해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기질과 환경의 궁합이 잘 맞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좋은 성격을 가지게 된다. 반면에 기질과 환경의 궁합이 안 맞고 더 나쁜 방향으로 발현시키는 환경을 만날 때 성격은 나빠지는 것이다. 이때 이 나빠진 성격을 ‘고장났다’고 표현하고 싶다.
크게는 사회에 조금 더 좋은 가치를 만들어 가는 데에 0.1그램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이 세상의 약자가 억압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약자를 위한 가치를 배신하는 약자를 만났을 때의 딜레마를 고민하는 나의 기질은 결코 오늘의 한국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내 마음이 고장나는 중이었구나, 그래서 힘들었구나' 하고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변화는 같이해야 한다고, 우리는 함께 수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대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나 혹은 그 부조리를 견고하게 만드는 기득권들의 카르텔이라면 같이 변화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사회의 축소판인 회사에서 일하면서 크고 작은 부조리들을 마주하면서 무력감이 들었다. 나의 심란함은 이 근본적인 우울과 무력감에서 왔다. 나를 변화시킬 노력은 할 수 있고 해 왔지만 부조리라는 큰 덩어리, 공기처럼 깔려 있는 강약약강의 사회 분위기는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 내 기질을 좀 더 무디게, 좀 더 권력친화적으로 바꿔야 하나? 그건 내가 아니다. 책에서는 '현실을 긍정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나 자신을 긍정하'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실현하기가 어려워 보이는 말이다. '나는 이렇게 먼지같고 나약한 존재인데요?'라고 반문하고 싶어진다. 자답하겠다. 어쩌겠나,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