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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Aug 26. 2023

한국 젊은 작가 많관부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저자 이미상, 김멜라, 성혜령, 이서수, 정선임, 함윤이, 현호정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23.07.22

페이지 364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을 4년 연속 읽으면서 다소 겹치는 작가가 많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202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김멜라를 제외하고 모두 새로운 이름이었다.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었다. 이렇게 여러 작가의 작품이 함께 실린 작품집을 읽으면 유독 한 작품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젊은 근희의 행진>이 그랬다. 책장을 덮은 직후에도, 지하철에서 청년들을 마주칠 때에도 불쑥불쑥 <젊은 근희의 행진>의 결말이 떠올랐다. 은근하게 생활 속에서 여운이 길었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에서의 위기 상황 묘사가 은근하게 현실적이어서 불쾌했다. (이 소설이 불쾌했다는 것이 아니라, 불쾌한 장면을 불쾌하게 잘 그렸다는 의미다) 산에서 총을 잃어버려 우연히 만난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주시면?"이라고 대가를 바라거나 "안녕. 삼촌 해봐. 삼촌."이라고 어린 자매에게 말하는 부분이 소름 돋을 정도로 싫었다. 그들과의 대화 장면이 꽤 리얼한 악몽처럼 느껴진 데에 비해 모험 서사의 본질이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해설이나 심사평에서는 이 모험 서사에 대해 호평 일색이었는데 나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


<제 꿈 꾸세요>는 자살 시도를 했을 때는 죽지 못(?)했다가 살겠다고 결심하고 먹은 초코바에 목이 막혀 죽었다는 이야기의 시작점이 흥미로웠다. 죽음을 오히려 '깨어남'으로 표현하고, 판단 이전의 상태인 빈 괄호의 이미지를 내세운 것도 좋았다. 죽은 이후 다른 사람의 꿈으로 갈 수 있어서, 누구의 꿈으로 갈지를 반추해 보는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신파적이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점이 좋았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서 빠져들듯이 읽었던 작품이 두 편이었는데, 바로 <버섯 농장>과 <젊은 근희의 행진>이다. <버섯 농장>의 기진과 진화가 기숙형 고등학교에서 만났고 정서적으로 가정환경도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둘의 삶에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수저'였다.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기진은 회사를 욕하면서도 쉽게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진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방음이 잘 되지 않고 더러운 오피스텔에 대해 불평하는 진화에게 '이사가면 안 돼?'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둘 사이에는 깊고 큰 간극이 있다. 때로는 기진에, 때로는 진화에 이입하면서 읽었다. 명의 도용으로 갑자기 채무자가 된 진화가 명의 도용자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결말이 다소 갑작스럽긴 했지만 소설에서 허용되는 극적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해설인 <책임은 법보다 강하다>에서 작품에 대해 조목조목 분석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소설도 해설도 재미있었다.


<젊은 근희의 행진>은 세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튜버를 한다며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방송을 하는 동생 근희를 바라보는 문희의 시선이 나와 너무나도 비슷했다. 이 시대에 넘치는 관종들을 알게 모르게 혐오해 온 내 입장에서 만약 이 소설의 근희 같은 동생이 있다면 문희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유명한 걸로 유명해지는 것'이 가능한 이 시대 자체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 시대에 편승하는 관종들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문희가 근희를 아메바로 취급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문희가 나처럼 느껴졌기에, 마지막 부분의 문희의 심경 변화가 더 와닿았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구절이 오래오래 가슴속에 남았다. 해설에서는 팩폭(?)을 당하기도 했다.

(전략) 모두 근원적으로는 '관심에 대한 관심'에 포박돼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이 소설은 관종을 주변과 분리시키는 대상화의 굵은 실선을 지워나간다.

결국 관종을 싫어하는 나 또한 '관심에 대한 관심'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았다. 꽤 충격적인 각성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언니의 호적으로 살아온 서연화의 이야기인 <요카타>는 차분하게 한 인물의 인생을 가공된 버전(인터뷰 내용)과 진실 버전(소설 내용)으로 그려냈다. 가공된 버전과 진실 버전이 따로 논다는 점 자체가 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단정하고 조단조단한 소설이라는 이미지다.


원하는 곳을 어디든 (편도로만) 갈 수 있는 자개장이라는 상상력이 돋보였던 <자개장의 용도>, 연필로 만든 샌드위치라는 이미지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연필 샌드위치>도 재미있게 읽었다. ‘젊은작가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개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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