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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Jul 15. 2023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보통 사람의 철학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리뷰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저자 마이클 슈어

역자 염지선

출판사 김영사

출간일 2023.02.24

페이지 408


좋아하는 미드가 무엇인지 질문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굿 플레이스>다. 보기에 부담이 없다는 점 그리고 영어 공부를 핑계로 시즌 전체를 열 번 넘게 봤다. 넷플릭스 계정을 해지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굿 플레이스>의 작가가 교양 철학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접했다. 바로 이 책,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이다.


책 곳곳에 시트콤 작가스러운 유머가 깔려 있는 것이 교양 철학서로서는 새로웠다. 다만 저자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 이 책을 접했다면 주석에 달린 드립성 유머에 당황할 수도 있다. 적응되면 읽으면서 실실 웃게 될지도 모른다. 철학책은 읽다 보면 지루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십상인데, 글에서 느껴지는 유머 감각이 흥미를 지속적으로 끄는 점이 좋았다.

철학자가 아닌 저자가 쓴 철학서여서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는 철학자의 눈높이에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철학자가 아닌 사람은 조금 더 쉬운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다. 철학 분야에 있어서 소시민성이 있달까.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드는 예시가 피상적이지 않고 생생했다. 더 공감하면서 읽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면접용으로 입는다며 어떠냐고 물어본 셔츠가 엄청 별로일 때, 셔츠가 괜찮다고 거짓말할 경우의 장점과 단점을 번호까지 달아가며 열거하는 식이다. 이렇게 보편적이고 시시콜콜한 딜레마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소시민인 나에게는 더 와닿는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는 오랫동안 내 주요 관심사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언젠가부터 내가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령 좋은 사람이 되려고 친절하게 대하면 도리어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윤리적 소비를 하고 싶은데 내 기준에 차는 소비재 기업이 오히려 손에 꼽을 지경이다. 심지어 나름 믿고 소비했던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가 나중에 드러나서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최선은 없고 차악을 골라야 하는 상황에 지쳐가고 있었다.

나같은 상태에 대해 이 책에서는 ‘윤리적 피로감’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회의 요소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도덕적 의도에서 비롯한 행위도 비윤리적 행위에 동참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어떤 행동이 ‘윤리 위반’이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보 접근성이 높아졌다. 어떤 행동 하나를 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아진 것이다. 심지어 그 정보 또한 나중에는 뒤집힐 수 있다. 이래서야, 자급자족하거나 자연인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완전 <굿 플레이스>의 더그 포세트의 삶이다) 자본주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 책에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자동차를 바꾸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완전 공감하면서 읽었다.


윤리적 피로감에 시달리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에 비윤리적 기업이 이렇게나 많은데 모두 불매할 수가 있나? 그걸 하나하나 다 따지고 어떻게 산단 말인가. 그렇다고 불매하려는 노력조차 안하는 게 맞나? 어지럽고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내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나의 핵심 가치와 위배되는 소비는 최대한 지양할 것' 정도로 나 자신과 합의를 했다. 이 책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이정표를 제시한다.

다시 시도하라. 그리고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서야 이 구호는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지점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실패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와 비슷한 실패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패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 (지구 저편에) 있다는 것은 꽤 힘이 되었다.


대학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자기자신을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노약자가 앞에 섰을 때, 내 상태가 좋으면 양보하지만 내 상태가 안 좋으면 양보하지 않는 보통 사람'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비유다. 대체적으로 합리적이고 도덕 관념이 있는 보통 사람이라면 노약자에게 양보하려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지만 내가 힘들 땐 실행하기 쉽지 않다. 때로는 착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이기적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보통 사람이다.


이 책에서는 모든 사람이 덕을 갖출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 잠재력을 계발하고 발현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동일한 잣대를 갖다 대어서는 안 된다고 ‘12장 - 행운의 신’에서 이야기한다. 체력이 뛰어난 사람과 장시간 서 있기에 힘든 사람 이 둘을 놓고 볼 때 자리를 양보한다는 선한 행위에 대해 지불하는 에너지의 총량에는 차이가 있다. 자리를 양보한다는 동일한 행위라고 해도 말이다. 이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지금의 능력주의다. 동일한 출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의 수준은 물론이고 국적, 인종, 성별, 성 지향성, 시대상에 따라 천차만별의 출발선에서 삶을 시작한다. 백인 중산층 출신 이성애자 남성인 저자가 자신이 얼마나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는지를 열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적어도 인지라도 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살다 보면 이 책에서 언급했듯(그리고 <굿 플레이스>의 대사에도 있듯)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3루타를 친 줄 아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으므로. 출발선의 차이를 인지하고 이해했을 때, 1루는커녕 구장에 들어올 차비조차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생긴다. 저자는 '좀 나눠 짊어질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매우 동의한다. 삶은 고단하다. 누군가에게는 더 고단하다. 다만 각자의 삶의 무게 속에서 최대한 공동선을 위한 시도를 하는 것, 그 시도를 하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것, 이게 우리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윤리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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