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독서》 리뷰
쾌락독서
저자 문유석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18.12.12
페이지 264
새해 계획을 세울 때 늘 들어가는 항목이 독서다. 막연한 계획은 실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대략적인 연간 목표 완독 권수를 정한다. 연간 목표 권수를 12로 나눈 월 단위 할당량(?)을 기준으로 독서 페이스를 점검한다. (참고로 이 리뷰를 쓰는 시점에 할당량 대비 약 두 권 뒤처져 있다) 독서와 멀어지는 삶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종종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같은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나를 지인이 발견하고 말을 걸면 '할당량을 못 채워서'라며 변명처럼 말하곤 한다. 할당량이라니, 유쾌한 단어로는 들리지 않는다. 약간 업무나 숙제처럼 자율보다는 강제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독서는 나에게 하기 싫지만 도움이 되니까 억지로 하는 무언가일까? 나는 왜 책을 읽으려고 할까.
《쾌락독서》는 내가 왜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지를 상기시켰다. 단순한 이유다. 재미있어서였다. 《쾌락독서》라는 제목 그대로, 저자에게 책이란 즐거운 놀이였다고 한다. 심심해서 재미로 책을 읽었고 재미없으면 덮어버렸다는 부분을 보고 어렸을 때 나도 그랬다는 것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사둔 별별 전집류를 재미로 읽었다. 전집으로 함께 엮였어도 좋아하는 편과 재미없는 편이 있었다. 맘에 드는 내용이 있는 권은 열 번 넘게도 읽었고 흥미를 못 느낀 권은 거의 새 책처럼 책장에 꽂혀 있었다. 전집을 다 독파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서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도 의식도 하지 않고 그저 책읽기를 즐겼던 시절이었다. 장담하건대 이 시기의 독서 경험이 지금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이미 엄청나게 공감 가는 말들이 적혀 있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의 세계로 진입했다. 저자는 아무래도 책에 대한 생각이 나와 너무나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았다. 저자의 전작인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을 때의 '코드가 맞는다'는 느낌은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예전에 읽은 책들을 들춰볼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남아 있는 기억들만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부분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과 똑같아서 놀랐다.
(전략)
그 책들은 그저 그 시기에 거기 있었기에 우연히 내게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지나간 연인들도 그렇듯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나간 인연들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 안에 생겨났던 그 순간의 감정들이다.
간혹 독서 관련 도서 중에는 책 속에서 말하는 책을 읽지 않으면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쾌락독서》는 그런 부분이 없어서 좋았다. 내가 아예 존재조차 몰랐던 책에 대해서 다룰 때 충분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서 물 흐르듯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부분이 그랬다. 하루키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인데도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심지어 인상적이어서 따로 문단을 찍어두기까지 했다.
책을 선택할 때 목차를 먼저 읽어보는 습관이 있다. 《쾌락독서》의 목차에서 '나는 간접경험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는 소제목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서 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함으로써 공감의 범위를 넓힌다는 건 우리가 익히 아는 독서의 긍정적 효과다. 현실의 부조리나 타인의 고통을 간접 경험하는 독서가 과연 쾌락독서일 수 있을까. 즐겁지만은 않은 독서를 하는 이유가 의무감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이유가 모범답안(?)이자 나의 답이기도 해서, 하루키에 대해서 문유석 저자가 썼던 그 심정 그대로, '책을 읽으며 마주치게 되는 순간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독서를 '쾌락'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는 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의무감만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뭐랄까,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걷고 싶지는 않다는 생존 본능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몰라서 남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잠시라도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은 나를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구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