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리뷰
유랑의 달
저자 나기라 유
역자 정수윤
출판사 은행나무
출간일 2020.10.28
페이지 372
* 해당 리뷰는 소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순전히 작가 이름만 보고 골랐다. 책 소개에 나올 법한 간단한 정보조차 모르는 채로 읽기 시작했다. 어릴 때 유괴당한 적이 있는 여자와 유괴범의 이야기라니. 알았다면 책을 고르는 데에 많이 망설였을 것 같다. 소재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과는 별개로 술술 읽히는 소설이었다. 뒷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나가다 보니 평일임에도 사흘 만에 완독했을 정도로 '이야기'로서의 흡인력이 있었다.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궁금한 이야기 같달까.
사라사는 초등학생 때 소아성애자 대학생 후미에게 유괴당한다. 엄밀히 말하면 후미의 입장에선 유괴가 아니라 가출 조력이었지만, 세간에서는 유괴범과 끔찍한 일을 당한 나머지 그런 유괴범을 감싸는 스톡홀름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피해자로만 바라본다. 그들 사이에 성적인 관계는 없었고, 오히려 사라사가 맡겨진 집 아들의 성폭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후미의 집에 머물었던 것인데도.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혐오의 눈빛은 피해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알고 아연했다. 위로나 배려라는 선의의 형태로 '상처 입은 불쌍한 여자아이'라는 도장을,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쾅쾅 찍어댄다. 다들 자기가 상냥하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어도 유괴 피해자라는 꼬리표는 계속 따라온다. 주위에서는 내막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동정의 말을 건넨다. 연애를 해도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지 못한다. 전 애인은 사라사를 지키겠다는 둥 피해 아동으로 대해 놓고 평범한 연애를 하고 싶다며 이별을 고했다. 현 애인 료는 사라사를 무슨 흠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기면서 사라사의 의향을 묻지도 않고 결혼을 혼자서 결정한다. 후미가 운영하는 카페를 사라사가 발견하면서, 사라사와 료의 관계는 크게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후미의 등장으로 사라사가 자기다움을 찾아가면서 원래 부실했던 관계가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뒷부분에 후미의 시점이 조금 나오는데, 반전인 건 사라사조차 줄곧 후미를 소아성애자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후미가 무성애자로 보였다. 그토록 후미를 그리워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던 사라사조차도 후미의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포인트 아니었을까. 결국 이야기는 '구원 서사'로 흘러가긴 하지만. 서로의 구원자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이들이 있다.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기라 유가 그리는 구원 서사는 가끔 껄끄러울 때가 있다. 사랑의 다양한 모양을 그리려고 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어쩌면 인물 당사자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성을 그리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다. 서사 사이에 녹아 있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에 대한 묘사가 꽤 구체적이어서, 자꾸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이게 만드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