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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Feb 20. 2024

이토록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

《총 균 쇠》 리뷰


총 균 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자 강주헌

출판사 김영사

출간일 2023.05.11

페이지 784


자칭 애독가라고 말하는 사람으로서 고전이나 필독 도서라 불리는 책들을 언젠가 클리어하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있다. 《총 균 쇠》도 그중 하나지만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책이기도 했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에게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을 읽는다는 건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인류 문명이니 하는 키워드에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새해를 맞아 갑자기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균 쇠》라는 제목에 다 읽었음을 의미하는 취소선을 긋고 싶은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784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왜 부와 힘이 지금처럼 배분되었을까?'라는 질문 하나에서 비롯했다. 현대 사회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의문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왜 유라시아에 뿌리를 둔 종족이 부와 힘을 가진 반면 다른 대부분의 종족은 그렇지 못했는가다. 저자는 환경적 요인이 그 답이라고 말한다. 복잡하고 무수한 환경적 요인 중에서도 결정적인 건 작물화 및 가축화할 수 있는 야생식물종과 야생동물종의 차이, 확산과 이주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지리생태적 요인이다.

수렵 및 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넘어가면서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때 작물화와 가축화가 수월한 환경이었는지가 중요한 요인이다. 식물과 동물을 길들인 결과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고 이는 곧 더 많은 인구를 의미한다. 인구 밀도가 높아진 식량 생산자는 수적인 우세로 수렵채집민을 몰아내거나 편입시킬 수 있게 되면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한다. 또한 인구가 많아지면서 중앙집권화 정치 구조와 경제적 복잡성, 과학기술력을 가진다. 가축화는 동물에서 시작한 질병들에 대한 면역력을 높였고 이 또한 정복 관점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요인이 되었다. 먼저 전염병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병원균에 노출된 적 없는 원주민들을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비로소 제목의 '균'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했다. 코로나 시기를 겪은 지금 더욱 와닿는 통찰이었다.

확산과 이주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지리생태적 요인은 10장에 있는 위도 차이와 확산의 관계 부분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유라시아는 가로로 길고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세로로 길다. 세로로 긴 지형은 기후가 다양하기 때문에 작물이나 가축의 확산이 어렵다. 일반적으로 작물과 가축 및 식량 생산 관련 기술 교환이 활발한 사회는 다른 것도 적극적으로 교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술이나 문화 등의 확산과도 연관이 있다. 단지 직선거리가 가깝다고 교류가 쉬운 것이 아니라 바다나 사막 같은 생태적 장벽이 있는지도 변수로 작용한다. 납득이 가는 주장이다.


사실 단일민족국가라 분류할 수 있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문명 발달이 종족마다 다르게 진행된 이유가 종족 간 생물학적 차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기껏해야 면적이나 자원 보유 차이 정도를 막연하게 떠올렸을 뿐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역사가 종족마다 다르게 진행된 이유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지 종족 간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고 언급한 걸 보면 저자 주변에는 생물학적 차이가 현재 부의 분배를 만들었다고 보는 의견이 많았던 게 아닐까 싶다. 해제에서도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인종이나 민족 간의 타고난 우열이라는 지긋지긋한 생물학적 편견을 일소했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맥락과 함께 원서가 출판된 1997년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총 균 쇠》가 당시 얼마나 획기적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주장이 명확한 만큼 반박 거리도 많겠지만 납득 가는 논리를 촘촘하게 전개했다는 점에서 힘이 있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이 시대에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통용되는 인류학 고전을 읽는 건 어렵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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