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러쉬업라이프> 리뷰
브러쉬업라이프 ブラッシュアップライフ
방송기간: 2023.01.08~2023.03.12
각본: 바카리즈무
출연: 안도 사쿠라, 카호, 키나미 하루카, 미즈카와 아사미
* 해당 리뷰는 드라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최근 몇 년간 미드 <굿 플레이스>가 최애 드라마였다. <브러쉬업라이프>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들려왔을 때 <굿 플레이스>를 좋아한다면 이 드라마도 좋아할 것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발견했다. 게다가 믿고 보는 안도 사쿠라가 주연이었기에 점찍어 두었다. 후에 각본이 바카리즈무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가 나오는 방송을 꽤 자주 봤던지라 친숙했는데 드라마 각본을 썼다니 놀랍기도 하고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콘텐츠를 볼 때 대략적인 소개나 줄거리를 찾아보지 않는지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타임리프물이라는 것도 모른 채로 봐서 내용 전개가 당황스러웠다. 주인공인 아사미가 딱히 나쁜 인생을 산 것도 아니었기에 '다시 살아서 어쩌려고?' 싶었다. 이렇게 평범한, 아니 꽤 선한 사람이지만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어 보이는 주인공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나갈지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중간에 다소 전개가 느슨하게 느껴졌어도 배우들이 다들 연기를 잘하는지라 하차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약간 진도가 나가지 않는 부분(아마 4, 5화 정도가 아닐까 싶다)이 있는데, 단언컨대 이 드라마의 진면목은 후반에 있다. (그러니까 하차하지 말기를!) 후반부 마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부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가벼운 터치로 그렸지만 안에 담긴 내용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벼운 터치로 그려졌지만 그 안에 담긴 여성의 우정, 연대, 인류애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엉엉하고 목놓아 울었다. 친구들뿐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180여 명을 살리기 위해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수십 년에 걸쳐 지난한 노력을 한다. 단지 '그날'만을 위해서. 잘 되리라는 확신도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정작 그 친구들은 그 사실조차 모르고 심지어 이번 생에서는 친한 친구도 아니다. 자신이 빠진 3인방을 보는 마리는 n회차를 살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인생을 쏟아붓고 있는데 정작 그 친구들은 자신을 친하게 여기지도 않는 외로움의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다. 그래도 아사미가 합류하면서 그 쓸쓸함을 공유할 사람이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친구들만 살리는 것이 더 쉬운 길인데도 불특정 다수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인류애가 정말이지 멋있었다. 그래, 여자의 의리는 이런 거다. 나의 소중한 사람도, 나와 관계없는 사람도, 심지어 내가 썩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미타콩)까지도 구하고 싶어 하는 포용력과 인류애. 타인을 희생시키거나 불가항력이라며 폭력을 행하는 일(그럴 뻔한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영웅물에 나오는 폭력과는 비교도 안되게 심사숙고한다) 없이 오롯이 자신의 노력과 정성으로 이루어내려고 하는 것도. 결국 다수의 죽음을 막았지만 그 성취 자체를 그들이나 일부 타임 리퍼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영웅적 과제를 이루고 나서 첫 번째 인생에서 택했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오래오래 넷이서 잘 살다 간다. 전체적인 흐름이 여성 서사의 면모를 보여준다.
노년기에 넷이서 <YAH YAH YAH>를 부르며 전동 체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이런 우정을, 삶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소망한다. 이런 삶을 살다니 마리와 아사미가 쌓은 덕은 다음 생이 아닌 현생에서 보답받은 것 아닐까. (물론 다음 생도 마리의 의향이 많이 반영되었으리라 믿는다. 아사미가 첫 비행을 마쳤을 때 마리가 '새가 된 기분'을 반복한다. 그리고 1화 첫 장면과 최종화 마지막 장면에 비둘기 네 마리가 나온다. 마리의 의향이 반영되어 넷이 비둘기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 믿고 있다.)
이 드라마를 쓴 각본가가 쓴 <용사의 우울> 가사가 떠오른다. '모험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용사 같은 거 아니어도 돼.' 다음에 이어지는 '내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걸로 좋아.'(1절) '너와 함께 또 웃을 수 있으면 그걸로 좋아.'(2절)라는 부분이. 결국 내 마음이 편안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웃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삶이라는, 구태의연해 보이는 말이 빛나는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