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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May 06. 2024

다정하게 반짝이던 시간을 지나 건네는 안부

《눈부신 안부》 리뷰


눈부신 안부

저자 백수린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23.05.24

페이지 316


이 작품을 알게 된 건 뜬금없는 계기였다.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젊은 근희의 행진>의 여운에 빠져있던 때였다. 어떤 온라인 서점의 굿즈 이벤트에서 소설의 구절이 각인된 유리잔 2종이 있었다. 하나는 <젊은 근희의 행진>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구절이 실린 버전이었고 다른 하나가 바로 《눈부신 안부》의 어떤 구절이 실린 버전이었다. 그 당시 <젊은 근희의 행진>에 빠져 있었고 유리잔에 있는 부분을 특히나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눈부신 안부》 버전에 마음이 갔다. 심지어 이 작품을 읽지도 않았고 아무런 정보도 없었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눈부신 안부》 버전을 골랐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라는 아름다운 문구가 적힌 그 유리잔을 잘 쓰고 있다. 유리잔을 쓸 때마다 《눈부신 안부》를 읽어야겠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들었다.


《눈부신 안부》에서는 시공간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해미의 가족이 독일로 가게 된 계기, 낯선 땅에서의 생활, 소중한 만남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가 교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H.라는 인물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를 큰 줄기로 하고 있어서 타임라인이 혼란스럽지 않다. 화자인 해미의 심리나 행동을 물 흐르듯 따라갈 수 있다. 조금은 슬프고 버거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해미의 시간이 덤덤하게 그려져 있다. 장면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때그때의 공기가 느껴지는 힘이 있었다. 독자를 소설의 장면으로 데려가는 것에 능했다.

아쉬웠던 점은 그게 물리적 시공간 측면에서의 서사에만 국한했다는 것이다. 사실 표면적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요소는 'K.H.의 정체'인데 이와 관련한 서사는 다소 납득이 안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한수라면 엄마가 위독할 때 한국에 있는 해미를 찾기보다는 K.H.의 이름이 뭔지를 직접 물어보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같은 의문이 여러 번 생겼다. 물론 한수도 해미도 레나도 다 어릴 때라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설 속에서 충분히 개연성을 만들어가지 못한 게 아쉽다. K.H.의 정체가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는데 전혀 새롭지 않고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아서 약간 허무했다. 물론 정체 자체가 소설의 의미적인 면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서사적 장치로서는 중요한 요소라서 아쉽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지만 이 추적의 단서가 일기나 편지라는 것 또한 매력적이라 말하기엔 어려웠다.

아름다운 문구로 이 소설을 처음 접한지라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쉬운 면을 많이 적었지만, 어찌 보면 《눈부신 안부》의 세계에 몰입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두가 조금은(사실은 많이) 슬픈 이 세상을 순하고 다정하게 그린 소설이었다. 제목에 있는 '눈부신'이라는 수식어가 아름다움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서글픔을 안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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