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wiseon Jul 10. 2020

걷기, 마지막 날

하동에서의 마지막 날

Day 4


마지막 조식을 먹기 위해 씻었다.


물론 최대한 숙소에서 뒹굴거리다 나갈 예정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도시 고양이 생존연구소’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사장님이 아침마다 정성스러운 빵과 달걀, 과일 몇 가지를 조식으로 준비해주셨다. 나는 마음을 다해 밀가루와 커피를 사랑하는 편이지만, 몇 년 전부터 체질의 변화로 아침이나 여행지에서의 조식을 잘 챙겨 먹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의 조식은 매번 감사하며 즐겁게 즐길 수 있었는데, 마지막 날에서야 알았지만 사장님이 직접 빵을 만들고 커피를 볶아 내려주셨기 때문인 것 같다.


정성 가득했던 식사


조식을 먹고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마지막으로 풍경을 꾹꾹 눌러 담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늘 이렇게 실감이 안 난다니깐. 짐을 챙기고 이불을 정리한다. 그런데 체크아웃 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배가 아팠다. 아무래도 어제 매운 음식을 많이 먹은 탓이다. 식은땀이 났다.


사장님이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다른 손님 한분과 함께 하동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셨는데 배가 아픈 나 때문에 조금 늦었다. 미안한 마음이 땀이 되어 쏟아졌다. 그렇게 부랴부랴 짐을 싣고 터미널로 출발하는 차 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번뜩 내가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뿔싸 마스크를 숙소에 두고 왔다.



운전 중인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여쭤봤다. 친절하신 사장님은 다른 체크아웃 손님을 먼저 버스 터미널에 데려다주신 후에 다시 숙소로 돌아가 주신다고 하셨다. 사실 일회용 마스크면 버리고 오면 그만이지만 두고 온 마스크는 화개장터에서 산 천 마스크였다. 그냥 버릴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와 마스크를 챙겼다. 본의 아니게 번거롭게 해 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 가득한 차 안,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혹은 그냥 가벼운 번거로움으로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와 사장님은 하동 이야기를 나누며 차 안의 어색한 공기를 채워주었다.



오늘의 행선지는 딱히 정해진 곳이 없었다. 구례로 넘어가 대나무 숲을 구경할까 하다 버스를 타고 넘어가는 것이 귀찮아 하동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며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점심으로 섬진강 재첩 파스타를 먹고, 쌍계명차에서 차를 마시며 지난 며칠을 회고해본다. 어쩐지 적게 걸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하동 삼만보 여행. 무리하며 모든 거리를 걷거나 아예 멈춰서 몇 시간을 누워있는 극과 극의 여행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걷는 것을 좋아할까?



어쩌면 단순히 운전을 할 수 없어서, 버스나 택시를 타는 것보다 잠깐 걷는 것에 개의치 않아하는 성격 때문에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걷는 길에 의미를 붙이고 기억으로 남긴다는 건 우리가 길에서 만난 그 시간 때문은 아닐까?



하동 여행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