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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홀릭 MONGS Sep 25. 2020

N.K 작업의 눈물

Oh No! It's gradations!

2층 창고에 수십, 수백 개의 박스가 쌓이고 인천 대형 보세창고까지 빌려 전수검사를 위해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다고 한다. 나와 입사동기 1명, 과장님 세명은 2층 창고로 투입되어 생산된 의류의 전수 검사가 시작되었고, 김대리님은 인천 보세창고로 홀로 투입되어 현장에서 인력을 구해 3-4일 밤늦게 까지 전수검사를 하게 되었다. 정말 대형 사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2003년 개성공단의 생산단지를 이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실제로 내수 업체들은 당시 인건비 및 기타 비용 절감 목적으로 개성공단 이용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수출 업체로 써 영업부 유럽팀의 오더를 개성공단에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당시 상무님께서 개성공단에 직접 다녀오신 것으로 기억한다.


공장 운영은 기술자들이 현지 거주 인력을 뽑아 기술을 가르치면서 작업성을 점차 올려야 하는 완벽한 신생공장, 어려운 재킷 스타일보다는 작업용 조끼 스타일을 투입시키기로 한다. 우리는 일명 NK작업 (North Korea production)의 첫 타자가 되었다.

의류 작업은 final 샘플을 먼저 공장에 입고시키고 final 원, 부자재를 입고 시키면서 공장 샘플을 받아 보아야 한다. 생산전 공장에서 만든 샘플의 리뷰가 통과되어야 대량 라인을 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다행인지 불행 인지 대량 생산이 시작된 것이다. 첫 작업이라 in_line sample (공장 라인 생산 샘플)을 1차~3차 샘플까지 받아 보았고, 개성 라인을 잘 키우면 베트남까지 안 가도 되겠다고 말할 정도로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었다. 임원진들 사이에서는 살짝 기대하시는 분들도 계셨었다.


우리가 너무 첫술에 배부르려 했던 탓일까? 항상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는 법, 그런데 이번 사고는 심상치 않았다. 의류 생산은 원단 검사가 제일 중요하다, 원단의 퀄리티, 컬러 등등 원단에 문제가 생기면 아예 작업 진행이 안되거나, 작업 진행을 했다면 판매 자체를 할 수 없다. 더불어 원단 검사가 패스되더라도 대량으로 원단을 재단할 때, 재단 물에 넘버링을 한다, 원단 롤 별로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1벌의 옷이 같은 롤의 원단으로 작업이 되게끔 장치를 걸어두는 것이다. 봉재 작업에선 아주 기본 중에 기본이다.


원단이란 염색이 되어 나오는 것이므로 전체 수량이 100% 같은 색상으로 작업하더라도 롤 별로 컬러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99.9% 완벽을 구연하였어도, 후가공 처리에서 컬러의 변, 이색은 늘 존재한다. 그래서 재단 물 넘버링이 중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공정을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 어느 순간 생산현장에서 재단 물이 몽땅 섞여버린 것이다. 혹은 재단 시 넘버링은 안 한 것도 있었다. 완전 대박 사고가 터졌다. 중간 검사 때 바이어가 한 얘기가 있다.

"Oh, It's Gradation way! isn't it?"

 

옷에서 이색이 나는 것이다. 옷의 조각, 조각, 조각 컬러의 이색이 눈에 보이니 옷에서 컬러 그러데이션이 돼버린 것!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 모두 비상이 걸렸고 생산된 제품을 보니 전수검사를 피 할 수 없다.  말단들은 물론 팀 전체가 전수검사에 투입되었다. 회사 2층 창고 그리고 인천 보세창고를 빌려서 일명 "박스 까대기 작업"에 투입되었다.


인천 창고에서는 인력이 너무 부족하여 대리님 대학 동아리 후배들까지 불러 알바를 시켰을 정도였고, 설상가상으로 작업하시던 분 중에 칼을 밝아 부상까지 입었다. 119를 불러 응급조치를 치하고 보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는 되었지만,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회사 2층에서는 공간은 좁고 옷은 많으니, 눈이 맵고 따가웠다. 옷을 컬러별로 맞춰서 새롭게 패킹을 해야 했으므로 박스 마킹까지 스티커 작업을 했다. 바이어가 원하는 SIZE ASSROT S-M-L-XL/1-2-2-1 ONE COLOR WAY WITHOUT COLOR BLOCK...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무섭다. 수량은 왜 이렇게 많은 거냐...... 블랙, 베이지, 카키 이런 컬러들이 이색 사고가 제일 많이 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된 사실이다. 바이어의 선한 영향력의 행사로 DISCOUNT 하는 조건으로 수출을 겨우겨우 할 수 있었다. 물론 선적 불가 판정받은 수량도 많았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설득을 했던가. E-mail을 바이어님께 하나하나 쓸 때마다 과장님의 얼굴을 흑빛이었다.


그 후 나와 대리님은 원단 검사와 재단 넘버링 검사에 극도로 민하게 굴었다. 공장에서 치를 떨 정도다. 이후 회사에선 손실이 컸다. 수량이 너무 많았던 터라, 임원회의 결과 NK작업을 추가로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NK 작업은 그렇게 마지막을 장식 했다.


야간작업을 하면서 강 과장님이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북녘 동포들은 우리의 마음을 알까?"... 더 재밌는 사실은 동아리 후배까지 불러 알바를 시켰던 대리님이 의류 무역회사가 아닌 인천 창고에 취직했다는 소문이 학교 친구들과 후배들 사이에 돌았다 확인 전화도 엄청 왔었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배는 채우고 일하자! 과장님은 닭볶음탕 집으로 우릴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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