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혼자된다는 상상.
무역회사 영업부에서 일 한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몰라서 멍 때리고, 틀려서 속상하고,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왜"를 묻고 따지느라 화를 낸다.. 힘이 쭉쭉 빠진다. 그러면서 배우고 큰다,,, 그러는 동안에 눈물도 찔끔찔끔 흘린다. 그럴 때면 늘 옆에서 괜찮다고 힘내라고 해주시는 김대리님, 내 사수에게 나는 늘 고마웠고 의지했다. 대리님도 나한테 의지할까?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별명이 있었다. 매일 야근하는 몬순이 시스터즈, 이런 별명을 붙여준 사람은 바로 뒤에서 등지고 일하는 대구 브라더스들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사수, 부사수 관계에 2인 1팀 누가 먼저 별명을 짓고 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각자 별명의 배경은 고향과 바이어 이름을 딴것이다. 서로 같은 처지인데 서로를 딱하게 본다. 1주일에 4일 정도는 대구 브라더스와 같이 야근을 하며 약 올리고 떠들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그 대구 사투리는 어떻게 따라 할 수가 없다.
"저 몬순이 들 또 남았나? 그러다 시집은 다 갔다!!" 밉진 않았다. 우린 그냥 "저 덤 앤 더머들 저 대구 브라더스들 또 시작이군 일이나 해~" 라며 같이 놀렸다. 1,2년을 그렇게 일하며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마무리하고, 한 시즌을 마감을 했다. 시간이 참.. 빠르다. 그러는 사이에 대구 브라더스는 둘 다 장가를 갔네... 결혼식 전날까지 야근을 했다는 웃픈 사연이 있었다는...
사수도 남자 친구가 있었다. 대학 CC로 꽤 오랜 커플이었다. 처음 사수 남자 친구를 봤을 때 첫인상은 눈이 크고 잘? 잘생겼다 였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서 대리님께 어떻게 찾았냐고 자주 묻곤 했다. 그럼 대리님은 "그가 나를 찾은 거야!"라고 얘기하셨다. 누가 누굴 찾은 건지 뭐가 중요한가? 그들은 결혼 준비에 한창 바빴었다.
지금은 결혼 하신지 10년이 넘었나 보다...
결혼 준비를 하는 사수는 너무 바빠서 종종 얼굴이 흑빛이었다, 이게 과연 예비신부의 얼굴이란 말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일은 재밌는데 결혼 후에도 이렇게 바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대리님 머리를 짓눌렀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업계는 골드미스가 많다. 혹은 자녀 없이 사시는 분들도 많다.
내 마음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면 모르지만, 일이 나를 지배해서 생기는 결정이라면 좀 슬프다. 그게 다가 아닌데,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도 있는데 그저 내가 걷는 이 한 길만 보고 다른 길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예비신부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몸매 관리, 피부관리 스. 드. 메.. 등등 주말은 결혼 준비로 개인 시간이 없다. 대리님의 월요일 아침 모습은 "나 너무 피곤해"라고 얼굴에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일에 대한 자괴감도 온다고 얘기하신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몰려왔다. 이번 주는 쉬시라고 했지만 맘처럼 되지 않는가 보다.
시간이 갈수록,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예비신부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나는 괜히 눈치 보는 날이 많아졌다. 눈치를 준 적은 없지만, 내가 눈치를 봤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문득 머릿속에서 스치는 것은 저러다 그만두시면 어쩌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제일 위에 차장님과 둘이 일해야 하나? 갑자기 마음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함이 몰려오고 공중에서 빙빙 도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고 혼자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커져갔다. "대리님 그만두시면 안 돼요."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말없이 모니터를 보며 턱을 괴고 있는 사수의 모습을 나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