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백수 되다.
2005년 여름 태양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아스팔트를 달구고 그 아스팔트는 더 뜨거운 열을 내며 우리를 푹푹 삶고 있던 그해 여름 우리 사수님께서 결혼하실 예정이다.
나는 아직 싱글이라 예비신부의 바쁨과 정신없음을 체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쁘고 정신없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김대리님도 회사일 하면서 결혼식 준비할 때 "정신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다니셨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일은 일대로 꼬여있었다. 의류 생산현장에서의 가장 핫한 성수기는 6,7,8,9월 여름이다. 자사의 본공장 라인을 부킹 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하청도 잡기 힘들다. 이때는 공장이 상전이다. 겨우 잡은 생산라인에서 빼겠다는 소리가 세상 제일 무섭다.
우리는 하청공장만 3~4군데 나눠서 생산라인을 잡아놓은 상태, 하노이에 있는 하청관리팀에서 생산관리를 해주시지만, 성수기 때는 인력이 부족함으로 내 바이어 작업 챙기려면 담당자가 직접 공장에 가서 스타일별 디테일은 정리해주고 자재 상황 함께 체크해주는 것이 그나마 실수와 사고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니 한 바이어의 오더를 전반적으로 다 책임지는 김대리님은 얼마나 바쁘셨겠나.
김대리님의 일에 대한 철학을 살짝 얘기하자면, 겉으로는 순하고 욕심이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일에 대한 욕심과 스스로 이뤄내는 성과와 성취에 대한 집착과 신념이 강하시다. "내가 잡은 내 바이어 일은 완전한 내 것이어야 한다." 일과 본인의 삶은 하나 되어 영혼까지 불어넣고, 누군가 당신이 진행하는 오더에 관하여 쓴소리를 하면, "흥! 두고 봐라..."라는 내적 승부욕이 끓어오르신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중간은 없다. 겉으로는 크게 들어내지 않아 일에 대한 그녀의 철학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 모두가 놓치기 싫어하는"일. 꾼"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를 돌아보았을 때, 내가 그렇게 일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수를 보고 고스란히 보고 배운다는 얘기는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아무리 일이 많고 바빠도 회사일은 회사 일이다, 인륜지대사 결혼은 잘 치러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결혼식 한 달 전, 덜컥 김대리님의 출장이 잡혔다. 출장 기간은 10일 정도 최대한 기간을 짧게 했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황당했었다. 김대리님이라고 두 팔 벌려 기다렸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리님은... 가신다고 하셨다.
도대체 왜? 피부 마사지 예약시간도 못 맞춰서 맨날 취소하시면서...
"이러다가 결혼식 전날까지 야근하시는 거 아니야?" 나는 정말 괜찮겠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내린 결정엔 번복은 없었다. 이후 나도 출장을 여러 번 다녀와봐서 잘 안다, 기간이 짧을수록 일은 빡쎄다.
10일간의 일정은, 계약된 하청공장 돌면서 생산 투입된 것 검사, 수정 사항 체크하여 작업지시, 공장 담당자와 생산일정과 스타일별 디테일 리뷰가 주요 일정이다. 가능하면 돌아오는 길에 자사 공장 사람들과 간단한 미팅 시간도 갖는다.(가능하면 얼굴 보며 인사하고 오는 게 좋다.) 간단해 보이는 일정이지만 현지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은 영어로 이뤄 지거나 통역이 함께 동행한다. 그러나 답답함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일도 수 없이 많다.
열심히 교육시켰지만, 뒤돌아 서면 그대로인 상황이 하루에도 여러 번 벌어지고, 수정 작업해야 할 제품이 완성반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허다하다. 차라리 장님이면 모를까 두 눈 뜨고 보려면 환장할 노릇이다.
"백번 말해도 안 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동수단은 회사 승합차 혹은 택시,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 이다. 도로위에 무법자 이기도 하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있듯 아수라장 같은데 부딪히는 이 한 명 없다. 동시에 크락션을 울려대며 복잡한 도로를 빠져나간다. 승합차는 차체가 크니 도심을 빠져나가는데도 오래 걸린다. 공장에서 공장으로 이동하는 거리도 꽤 멀다. 편도 1시간이면 감사한 일이다, 편도 2~3 시걸 리는 공장이 수두룩 하다. 공장 한 군데 혹은 두 군데 다녀오는 일정을 마치면 몸은 녹초가 된다.
김대리님과 출장 기간 동안 주로 전화로 연락하며 업무를 하였다.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늦다. 퇴근 무렵 통화를 하면서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곤 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대리님은 하루하루는 참 더디게 가는 것 같은데 10일은 빨리 지나간 것 같다고 얘기하신다. 그렇게 짧지만 굵은 10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대리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빨리 가서 쉬자... 아니다... 결혼 준비 하자였을까? 그렇게 대리님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출장에서 복귀하는 출근 첫날 대리님이 나를 부른다.
"안나야, 나 얼굴 이상하지?"
"아니요, 괜찮아 보이는데 왜요?"
"아니야,, 얼굴 잘 봐봐...." 하며 활짝 웃어 보이 신다.
어! 그런데 진짜 얼굴 이상 했다.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대리님 왜 그래요?" 나는 너무 놀랬다.
대리님이 더 놀랬을 거다. 그때는 결혼식을 2주 남겨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