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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홀릭 MONGS Sep 16. 2020

신입이 뭘 알아.....

신입은 신생아가 아닙니다.

2002년 12월 연락을 받는다. "입사를 축하합니다", 나는 00여 대 컴퓨터 응용 학부 전자 상거래과 01학번이다. 졸업 전 학교에서 여는 취업전략 워크숍을 다녀온 후 2003년도 신입사원 모집에 열을 내며 입사지원서를 보낸다. 보낸다는 표현보다 뿌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신입사원 모집이라는 곳에는 전부 보냈으니깐. 나중엔 회사명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열심히 입사지원서를 뿌린 그해 겨울 끝에 기분 좋게 최종 입사 합격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은 물론 나도 너무 기뻤다. 대학도 한 번에 들어가고 취업도 졸업 전에 하였으니 얼마나 좋으랴,,, 전공을 살리지 못한 것 빼곤 완벽했다. 인사팀의 간략한 안내로 첫 출근하는 날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일찌감치 준비 완료! 같은 회사에 합격한 대학 동기들과 신나게 늦게까지 술 마시며 놀았다. 기분 최고였다. 난 이제 진정한 자유다.라고 외치면서... 


2003년 1월 6일 검은색 정장 바지에 하얀 블라우스, 검은색 하프코트 나의 첫 출근 Look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촌스럽다. 그땐 그게 예의였고 신입사원 look에 공식 같았었다. 오전 8시까지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는 1층~5층까지 있는 건물로 2층은 쇼룸&미팅룸, 3층은 강당&창고, 4층은 영업부, 5층은 인사&총무, 경리, 기획부 with 회장님 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8시 도착하자마자 회장님 훈화 말씀을 듣고 5층에 있는 각 팀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인사를 드린 뒤, 각자의 배정된 부서로 가는 시간 오전 10시였다. 나는 이 회사의 핵심인 영업부에 배정되었다 (부서 배정은 적성검사를 통하여 인사팀에서 직접 하였다.) 무역회사 영업부는 어떨지 괜히 기대되고 설레었다. 4층으로 내려가 첫 발을 딛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공장 창고인지 사무실인지, 파티션 하나 없이 천장에 붙은 부서 푯말을 보고 부서를 찾고 그야말로 영업부 전체가 2줄씩 나눠서 다닥다닥 붙어 줄 세워진 책상들 원단과 옷에 둘러싸여서 사람인지 원단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업무 환경,  으악.... 최악이었다.  5층은 자연숲 이면 4층은 오염된 공단 같았다. 


신입이 들어왔지만 영업부서 사람들 얼굴에는 "나 바쁘다, 말 시키지 마라"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유럽팀에 배정되어 있었다. 강 00 대리님~ 신입사원 김안나 씨입니다.  한마디 말만 남기고 인사팀은 5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렇게 나는 팀에 소개가 된다. 


강대리님께서는 부장님, 신입입니다!

"어 그래! 열심히 해!"  


여기 보세요 우리 신입 왔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나의 소개는 이걸로 끝났다. 

리얼인 거냐..... 


샘플 더미를 비 짖고 들어가 나의 자리를 안내받는데 한 번 더 뜨악하였다. 너~무 지저분한 나의 자리. 

샘플들의 자리를 잠시 내가 임대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옆에 계신 선배는 놀라지 말라는 말투로 "우리가 치운다고 치운 거야 다~그래 영업부는"라고 얘기해주신다.  ㅎㅎㅎㅎ 네~, 최대한 활짝 웃어 보였다. 


나는 이후 신입사원이 오기 전날, 앞뒤로 신입사원 자리 청소를 말끔히 최대한 깨끗이 해주었다. 신입은 첫 출근에 대한 기대가 있는 거라고요.


입사 첫날 신입이 뭘 하겠나, 일을 시킬 수 없는 백지장 상태. 

회사의 역사가 담긴 책 한 권과, 규칙, 팀 내 구조와 이름, 사내 내선번호, 전화받는 법, 특히 당겨 받는 법 등을 속사포로 알려주시곤 선배는 일하러 본인에 자리로 가버렸다. 


그래... 읽어보고 내 자리 청소나 하자,,,,, 다~ 그런데잖아 영업부는.. 속으로 나를 위로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책상 위에 컴퓨터가 설치되고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실행해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았는지 권 대리님께선,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한글 사용할 줄 알아?" (그때는 한글문서 파일을 쓸 때였다.) 

"네~ 알아요,,"

"그럼 엑셀은 쓸 줄 알아?"

^_______^ 네 쓸 줄 압니다. (아... 그래도 난 컴퓨터 전공했다고요. ms office 프로그램을 쓸 줄 압니다...)

"어~ 그래~"

그렇다 나는 프로그램을 쓸 줄 안다 업무를 모를 뿐.

선배나, 대리님이나 누가 뭐라도 시키면 좋으련만 뭐 시키실 일 없냐고 물어봐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내 자리를 청소하고 책상도 닦고 6시에 퇴근이나 하자. 


5시 정도 되었을 때 선배가 복사 좀 도와줄래라고 묻는다. 넵! 그래 이게 어디냐 이거라도 하고 오늘 하루 마무리하자.  그때는 6시가 정말 퇴근 시간인 줄 알았다.  6시는 그냥 공식적인 서류에 기재되어 있는 퇴근을 가르치는 숫자일 뿐이다.


복사를 하기 위해 복사실로 가는데 권 대리님께서 옆에 살짝 와서 물으신다. 

"복사할 줄 알아?" 

네 압니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신경을 써주니 나는 액션으로 보여주며 대답하였다. 

"이렇게 하는 거 맞죠?" 


"오~ 잘 아네,,"  그 모습을 본 선배는 " 대리님~ 복사도 못할까 봐 그래요?" 하며 웃는다 


우리 권 대리님께선 같이 웃으며, "신입이 뭘 알아 하나도 모르지 아직 학교도 졸업 못했는데.. 괜히 기계 고장만 난다."라고 하셨다. 


끄응... 복사 버튼 누르는 게 이렇게 눈치 볼 일이더냐 학교 때 과제하면서 수백 장 복사하느라 얼굴이 벌겋게 익었던 날이 스쳐 지나간다. 

복사를 무사히? 마치고 서류 세팅까지 도와드리니 6시 30분이다. 그런데 왜 다들 퇴근을 안 하지? 무슨 일 있나?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전 영업부가 거의 다 "아직은 근무 중"이라는 기운을 뿜어 내고 있다. 


그때 강대리님께서 부르신다, 신입~ 안나 씨, 퇴근해! 쭈뼛되는 나를 보던 선배도 거든다, 7시 전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이번 주 만일 걸?  "얼른 퇴근해!"

가방을 들고 원단과 샘플 더미를 해치고 나와서 "퇴근하겠습니다..."라고 소심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말하는 것 같은 느낌. 


나 오늘 회사 첫 출근 한 거 맞나? 

회사 로비를 거쳐 밖으로 나오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모든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직 옹아리를 떼지 못한 신생아가 말하겠다고 옹알 되고, 걷겠다고 바둥 된 기분이랄까? 그걸 보며 선배들은 재밌어한다. 정말 신생아가 된 기분이었다. 


입사라는 것을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교육과 스펙을 쌓으면 달려왔는가, 당연히 완성된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놀라고 허무한 마음을 달래며 생각했다. 오늘은 첫날 이니깐 내일은 다르겠지 신입은 신생아가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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