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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Jul 19. 2022

집안을 뒤집은 어린 꿈


종교가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당당히 천주교 신자임을 밝힌다. 비록 성당에 나가지 않은 지 꽤나 오래 되었지만 늘 언제든 다시 나갈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꽤나 오랜시간 나와 함께였다. 체세포 분열을 할 때부터 였으니. 모태 신앙이라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성당을 자주 찾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덕에 천주교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상당히 두터웠다. 오죽하면 엄마와 아빠에게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 했을 정도였을까. 아직도 그 날의 엄마의 표정이 생각난다.


아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엄마의 두 눈은 곧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옆에 있던 아빠는 재차 나에게 확인하고 싶었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음성이 녹음된 인형처럼. “정말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거니?” 라는 말을 뱉어내는 아빠 인형의 목소리는 당혹감과 더불어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느껴진다.


가벼이 생각하면 그냥 어리니까 멋진옷 입은 신부님이 부러운 거겠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결과론적인 이야기 이지만 그랬더라면 엄마와 아빠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할머니에게 한 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겠지.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그럴 수 없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만큼의 이유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당을 드나들면서 느낀 천주교의 매력은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늘 그 가운데에서는 화 한 번을 함부로 내지 않던 신부님 두 분이 계셨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곧 잘 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시는 그 두분들을 조용히 따르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 사제의 길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신부님 옆에서 미사를 보좌하던 복사라는 것도 해보 싶어 근 두달여간 매일 새벽 미사를 나갔다. 비가오고 태풍이 불어도 갔다. 그런 정성과 진심의 세달이 지나 나는 결국 복사가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보인 이런 열정이었으니. 내가 사제의 길을 걸어 보겠다는 말을 꺼내었을 때 엄마와 아빠는 웃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나의 그 폭탄 발언은 집안에 결코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엄마와 아빠는 그 날 이후 저녁만 되면 큰방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사제가 되면 힘든 점들을 내 긔에 나열했다. 마음을 어찌든 돌려보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미 사제직에 마음이 꽂힌 나는 이겨내면 되는 것들이라고 당당히 답했다.


그 이후 엄마와 아빠는 더 이상 나에게 별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제직의 꿈은 멀어져갔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뿌리치기에 나는 단단하지 못했고 세파에 흔들리는 한 줄기의 풀에 불과했기에. 그래서 가끔 지금도 내가 사제직으로 살았다면 어땠을지에 대한 미련을 두는 것 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엄마 아빠는 나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가끔 한다. 물론 대부분은 본인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로 인해 살아간다는 것을 느꼈을 일들을 말이다. 마음대로 살아가지 않는 아이. 일년에 한 번씩은 사고를 치는 아이. 어디로 튈지 몰라 늘 조마조마한 마음을 지니고 살던 엄마와 아빠는 어느집의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너같은 아들 낳아보면 알 것이라는 마무리 멘트가 식상해 질 정도로 자주 했다.


그런 엄마 아빠가 과거 사제직을 꿈꾸었던 어린 날을 화두에 올렸다. 그 때는 정말 식겁했다고. 매일 침대에 누워 둘이 회의를 하며 보냈단다. 그리고는 아이러니하게 사제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고도 했다. 독실한 만큼 혼란도 컸었나 보다.


내가 사제직을 꿈꾸었다는 이야기는 할머니 귀에 까지 들어갔었다. 할머니의 반응은 노발대발 그 자체였다. 과감히 하느님을 포기하고 가문의 대를 이어감을 선택해야 한다며 성당에 발도 못 붙이도록 하라고 엄마 아빠에게 단단히 일렀다. 그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와 한 판 크게 싸웠던 적도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웃으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내가 진짜 사제가 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야가 쓸데없는 소리 하고 앉았네.”




매몰차게 돌아오는 할머니의 반응을 보며 웃는다. 하나뿐인 손자가 사제직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할머니의 하늘은 분명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기도했겠지. 죄송하다고. 죄송하지만 손자는 안된다고.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의 태도와는 반대였다. 내가 그렇게 원해서 사제가 된다면 그 것은 하늘의 뜻으로 기뻐하며 받아들이겠다고 잠정적으로 둘이서 합의를 봤다고 했다. 우리는 웃으며 그 날을 회상했다. 지나고 나니 웃을 수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나저나 정말 신부님이 되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라 미련같은 것이 남았다. 마치 산 너머에는 아름다운 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뿐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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