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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Jul 18. 2022

문방구를 서성거리는 발걸음

추억에 대해

이제는 찾기 힘든 문방구가 학원 근처에 있었다. 부족한 당 보충을 위해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날. 나는 몇 개월을 지나다니던 길 위의 문방구를 그제야 발견했다.


어린 나는 문방구를 참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친구를 만나는 약속 장소는 늘 ‘우리 문방구’ 라는 작은 사거리골목에 위치한 문방구였다. 친구를 기다리던 나는 문구점 앞에서 솔솔 풍겨오는 소시지와 쥐포를 굽는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삼백원을 내밀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소시지에 쥐포를 감싸 아끼고 또 아껴 먹으며 친구를 기다렸었다.


문방구 안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었다. 문방구에서만 사용 할 수 있었던 메달 기계, 세대 정도의 오락기, 오징어게임으로 유명해진 달고나 기계와 유독 원하던 장난감은 늘 나오지 않던 뽑기 기계들까지. 수 많은 문명의 즐거움을 위한 기계들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 주었다. 전투 게임을 통해서는 게임에 재능이 없다는 것과 뽑기를 통해서는 도박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라는 것, 돈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돈만큼 시간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들을 말이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문방구가 눈에 보이면 쉽사리 지나치지 못한다. 한번 들어가 볼까 말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한다. 문방구에 안전거리라도 두는 듯 10여미터의 거리를 두고 괜히 폰을 들여다 보기까지 한다. 문방구 앞에 너무 대놓고 서있으면 너무 목적이 빤히 보이는 듯 하니까.


문방구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뽑기 기계 앞에 서서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저 아저씨가 뽑기 게임 하고 싶나봐’ 하는 말을 주고 받는 것은 아닐지 눈치를 살폈다. 아이들은 아직 문방구에 볼일이 남았는지 섣불리 자리를 뜨지 않는다. 눈치 없는 아이들이 괜히 얄미워졌다.


아이들이 자리를 뜬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내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혹여 웬일로 자신감에 차 문방구의 문을 열어 젖히는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문방구 주인 아저씨의 눈을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30대 초반의 수염 덥수룩한 남자가 지폐를 내밀며 뽑기를 위해 잔돈으로 바꿔달라 했을때 예상되는 아저씨의 당혹스런 눈초리가 예상된다.


그러니 나는 아마 문방구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결국 낯빛을 붉히며 본래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말 할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이를 테면 괜한 삼색펜을 사려 왔다거나 철자나 공구용 칼을 사러 왔다 하는 등의 목적을 말이다. 그러면 문방구 주인은 속마음도 모른 채 나의 거짓된 목적들을 건네 주겠지.


이렇게 고민을 한참 하다가 문득 차에 놓인 잔돈이 있나 기억을 되짚어 본다. 차에서 내리기 전 바라보았던 차 안의 이곳 저곳을 기억에 의존해 되살핀다. 은색의 엄지 손톱만한 동전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작고 반짝이는 것은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한층 풀이 죽어 문방구를 공허히 바라본다.


괜히 들어갈 자신도 그렇다고 밖에서 문방구를 맛볼 기회도 없다고 생각하니 닿지 못할 그 곳의 안이 궁금해 진다. 불량식품은 몇개나 있을까. 여기에도 종이 뽑기 같은게 있을까. 미니카나 BB탄 총도 있을까 하며 어린 날 문방구에서 팔던 것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았다. 들어가지 않으면 모를 곳 앞에 서서 쓸데 없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아이들은 사라졌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난 후 조금 더 고민을 하던 나는 문방구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산한 거리에는 더이상 나를 의심할 만한 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행털이 직전에 답사하는 듯한 은행 강도처럼 곁눈질로 사방을 살핀다. 그리고 곁눈질의 끝엔 잘 보이지 않는 문방구의 내부를 스캔하려 들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는 볼 수 없었다. 기억 속의 동네 문방구가 그랬든 눈앞의 문방구의 문에는 많은 잡다한 물건들이 걸려있어 안을 보려는 나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었다.


일전에 아파트 상가에 있던 문방구엔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에는 무슨 용기가 생겨서 들어갔나 하는 의아함이 들었다. 한참의 생각 끝에 아이의 손을 잡고 문방구에 들어가는 엄마들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그랬다. 오늘은 아이들 밖에 없어서 내가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 물러나야지 싶어졌다. 다음에 다른 어른이 들어가면 용기를 내볼 수 있지 않을까. 기왕 용기를 낸다면 뽑기 기계도 한번 돌려볼 수 있는 정도의 용기가 솟아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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