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곳곳에 전구가 걸리기 시작했다. 휑하니 펼쳐진 인도에 쇠로 만든 철골이 세워지고 알록달록한 빛이 감싼다. 편의점이나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지없이 캐롤들이 들려온다. 새로울 것 없는 캐롤들. 본격적인 연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아니지만 연말의 언저리에 도달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사실 눈이 오는 것을 보았던 날에도. 달력의 마지막 장을 펼쳤을 때에도. 스쳐가던 그 순간들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깊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연말이 다가오는 것이 썩 달갑지 않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31일로 수렴해 가는 12월의 숫자들을 보면 마음 한 켠이 무거워져만 간다. 점점 무거워 지는 마음은 심장을 짓누르고 괜히 조금함을 불러일으킨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 삶을 추구하겠노라 성인이 되면서 부터 수도 없이 다짐했지만 부질없다. 시간은 결국 흘러만 간다.
‘연말’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새해의 시작이 다가온다는 느낌보다는 한 해의 끝이 다가오는 느낌이 더욱 강렬하다. 그런 이유로 연말엔 부정의 감정이 앞선다. 오늘이 그랬다. 운전석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어둑어둑해 지는 하늘을 응시했다. 함께 달리던 도로의 차들은 같은 신호에 멈춰섰다. 사방이 차에 갇힌 덕분에 세상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간간히 웃음을 머금게 만들던 라디오의 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곧이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저녁 노을이 지던 하늘은 사라졌다. 세상에 멸망이 찾아온 듯하다. 아무렴 괜찮다. 신호가 다시 바뀌려면 몇 분의, 몇 백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멸망한 것 같은 세상에 다녀오기엔 충분하다. 오랜만에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죽음. 삶.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생각의 세계에서 나는 스스로를 죽였다. 그 순간 만큼은 무로 돌아갔다. 실제 무의 세계가 그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상상력을 끌어모았다. 묵혀 두었던 삼십삼 년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스친다. 진짜 기억인지 아닌지 모를 어린 시절의 기억 부터 방금 전의 상황까지. 수 많은 기억들 중에 그리울 법한 기억들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립지가 않다. 그리운게 있다면 삶에대한 미련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조금 더 멀리서 기억들을 보기로 했다. 마치 남의 삶인 것 처럼 평가를 시작했다. 가치 있는 삶이었는가.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이내 머리를 흔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 했어야 하는 것들… 나는 청개구리라더 된 듯이 모든 것들을 반대로 살아왔다. 자제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런 삶이었다. 자제 하나 못하는 삶이 가치있을 리가 없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생각을 멈추었다. 다시 빛이 시신경을 통해 뇌로 들어온다. 주변에 멈춰섰던 차들이 다시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볼륨이 줄어든 것 같았던 라디오의 목소리도 다시 커졌다. 바뀐 신호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찝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올 해의 갈무리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파에 며칠을 누워 올 한 해 내가 적었던 글들을 다시 읽었다. 문자로 적혀진 삶의 흔적을 되짚었다. 글을 읽으면 하루 하루를 다시 사는 듯 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살아나기도 하고 가라앉아 있던 감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큰 웃음은 아니지만 나의 입술 양 옆의 근육이 미소를 만들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들이 온전히 나의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어딘지 모르게 낯설은 이야기들. 어쩌면 삶을 옮겨 적을 때에 덧입혀진 부분들이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적어놓은 것들 덕분에 한 해를 되찾은 기분이다. 별로 오래되진 않았지만 방 구석에 묵혀둔 상자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은 느낌이랄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적어둔 이야기보다 빠진 이야기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두지 않은 이야기들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던 것은 아닐터였다. 다시 나지 않을 영구치가 강제로 뽑혀버린 기분이었다.
어떤 글에서는 스스로가 불쌍히 여겨지기도 했다. ‘자책’,‘갈등의 회피’, ‘우울’, ‘타인에 대한 눈치’ 등 지난 한 해 동안 지양하려 하던 것들이 엿보인다. 바보이자 멍청이 같았다. 모르는 척을 하고 싶어 ‘이방인’으로 치부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안다. 육신이 자라면서 나의 몸에 기생하여 함께 자라온 것들이라 이미 뗄 수 없는 것들임을. 좋으나 싫으나 공존을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이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늘 경계하는 것 뿐이었다.
스스로를 늘 경계하는 것은 바람직한 사람의 방향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경계하는 까닭은 모자란 부분이 있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모두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감에서 비롯되곤 한다. 내가 한 해의 끝에서 이런 생각을 반복하는 것은 이루어둔 것 하나 없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었다. 20대의 젊음이라는 연료를 마음껏 썼던 지난 날 덕분에 연비가 한 없이 낮은 차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호기롭게 젊은 날의 방탕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던 과거의 나는 온데 간데 없다. 호기롭지는 않지만 묵묵히 지난 날에 대한 책임을 지고있는 나만이 남아있다. 그저 고요하게. 섣부르게 달리지도 않고 지나치지 않게 오래 달리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으로.
늘 빠른 속도로 신나게 달리는 것에 익숙했던 나에게 느린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조금씩 섣부른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 옮겨진 발걸음은 빠름에 익숙한 나의 답답함이 담긴 발걸음이다. 참다 못해 나가버린. 이성을 이겨바린 무조건 반사적인 발걸음. 슬프게도 그 발걸음은 몇 발자국을 떼지 못한 채 되돌아온다. 과거의 섣부른 판단들로 인한 결과들이 떠오르며 경종을 울려왔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이 엇나가려는 나를 붙잡아준다. 아마도 이런 붙잡음이 없었다면 나는 또 다시 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내년의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한 해의 갈무리가 필요한 까닭이 아닐까.
멀어지고 싶은 모습에서 멀어지기 위하여. 가까워지고 싶은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하여. 끊임없이 과거를 떠올리며 살아간다. 내년 말에 또 다시 적어놓은 글들을 보며 한 해를 갈무리 하는 것도 당연할 테다. 지금보다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모른다. 다만 내년을 갈무리 할 때는 올해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