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잠에 들었을 이들이 깨어있기 위해 노력을 하는 시간. 헌 해와 이별을 하고 새해를 맞이하던 순간에 저는 마음 속으로 다짐합니다. 그 다짐 안에는 삶에 여유를 불어 넣거나 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바람을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고즈넉한 곳에 산책 가기, 저녁에는 도심 속 러닝하기, 집 밖에 나가 조금 더 세상의 것들을 관찰하기 등. 날이 풀리면 시작할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머릿 속에서는 풀벌레 소리와 풀 향으로 가득한 어느 들판을 거닐고 있는 것만 같은 상상을 해 봅니다. 상상은 환상을 선물하려는 듯 상쾌한 박하향과도 같은 향기들이 기억의 너머에서 넘어오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는 사람 없는 새벽 강남 한복판을 가로 질러 달리는 스스로를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헐떡임 속에 느껴지는 건강함에 마치 방금 달리기를 마친 사람이 된 것만 같습니다. 또 어느 순간에는 사람 없는 카페에 앉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들을 관찰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커피를 갈고 있는 그라인더의 소리,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커피머신, 제 각각 다 다른 방식으로 기다리는 사람들. 자그마한 관찰들을 통해 글의 소재 하나 둘 씩을 얻는 경험의 쾌감이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이 모든 상상하는 것들은 지난 해에 너무 집에만 있어 정저지와의 삶을 살아온 것 같은 아쉬움이 생겨 그렇습니다. 조금 더 밖에 나가는 삶을 살았다면 여유도 건강도 글도 조금 씩 더 나아진 상태이지 않을까 하는 현재에 대한 미련일까요. 그러나 세상은 한 순간에 변하지 않듯. 안하던 일을 꾸미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지 양력 해의 시작과 더불어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쉽사리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의지가 박약한 스스로를 차마 탓하지는 못하고, 겨울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이 왜 새 해의 시작에 곁들여져 있는지 원망스러워 할 뿐입니다.
추운 날씨에 그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을 글을 쓰는 것 역시 쉽지 않아집니다. 추위에 글을 쓰던 손마저 얼어버린 듯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낼 때마다 버벅이고 있습니다. 날이 추운 까닭에 글을 쓰려 하다가도 숨겨 두었던 귀찮음이 나타나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이 흐르고 일주일이 되어서야 겨우 키보드를 앞에 두고 자리에 앉습니다. 게으름이 요동치는 겨울의 품에 안겨 살면서 늘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뿐입니다. 날이 따스해지면 얼어버린 글에 대한 욕망도 다시 샘솟을까요. 어서 봄이 찾아와서 게으름도, 저의 손도 녹여주길 바라는 중입니다.
소한의 다음 절기는 대한. 큰 대라는 한자를 쓴 대한이라는 이름 앞에서 소한의 추위는 행여나 작은 아이이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게 만듭니다. 혹여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옷은 없을까. 어떠한 옷을 더 껴입어야 할지. 손난로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온갖 걱정들이 들어서게도 만듭니다. 그리고 요즘 보다 더한 추위가 온다면 봄이 다가오는 3월 까지는 계획했던 것들을 추위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까닭에 올 해도 계획하던 것을 이루기엔 그른 것을 알아 체념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한의 추위는 소한만큼은 아니라는 점에 다행스러운 마음을 찾아 잡아 봅니다. 대한이라는 지레 겁먹게 만드는 글자가 가져다 주는 안도감이란 아이러니함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해의 시작과 동시에 다가온 소한이라는 녀석이 원대한 계획을 방해하는 듯 하여 원망스러웠지만 다행인 점은 내년의 소한이 찾아오기 전까지 이보다 더 추울 날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 동안에는 ‘올 해도 글렀어’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삼십년을 넘어서야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아주 조금은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의 결과물이 나타난 것만 같습니다.
저는 늘 나은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내일은 오늘 보다 덜 추운 날이길 바라며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추운 날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새해의 시작이 가장 추운 소한과 함께 하는 까닭은 앞으로 따스해질 일 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고 싶은 이유이지 않을까요. 자연의 한 부분인 우리 역시 오늘이 춥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일이 오늘보다는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보다 따뜻한 날들이 우리의 앞에 펼쳐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