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작사를 더 열심히 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작사학원을 여럿 알아봤다.
작사학원은 기본적으로 한 달 수업료가 40만 원이고, 초급 3-4개월, 중급 3-4개월, 고급 3-4개월로 1년 정도 다녀야 본격적으로 앨범작업에 참여하게 되는 구조였다. 대부분의 학원의 커리큘럼이 비슷했다. 요즘에는 작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3개월 정도 대기를 해야 하는 학원도 있었다. 각 단계의 반을 중간에 들어가기는 어렵고 초급부터 학원을 다녀야 고급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1년을 참고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프로데뷔반이라고 불리는 고급반에 들어가야 '데모'를 받고 본격적으로 작사 공동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SM, JYP, HYBE 같은 우리나라 음반업계에서 작곡가가 작곡을 한 작업물을 '데모'라고 한다. 기획사는 '데모'를 작사학원에 뿌리고 작사학원에 소속된 기존 작사가들, 그리고 프로데뷔반의 수강생들이 함께 공동 작업, 공동 경쟁을 해서 작사를 하고 기획사에 보내면 기획사에서 그중에 선택해서 컨펌을 하는 구조였다. 일종의 공모전 개념이었다.
1년 정도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서 프로데뷔반에 들어가야 유명 기획사의 곡을 기존에 있던 쟁쟁한 작사가 분들과 함께 공동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데뷔반에 들어가서 실제 작사에 참여하게 된다 하더라도 경쟁이 아주 심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가속화될 것 같았다.
작사학원은 수강생들을 계속해서 모집을 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그 수강생들을 자신과 함께 경쟁하는 경쟁자로 양성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었다. ZEROSUM게임처럼 스스로가 파이를 쪼개는 역설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어떤 업체가 그렇게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업계의 흐름이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어쩔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학원이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한 최고의 무기는 프로데뷔반에 가서 '데모'곡 작업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약속이다. 학원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온라인강좌까지 열리고 있는 상황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알 수 없는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갈지 알 수 없어 보였다.
원래 세상이 경쟁이라지만 이러한 산업구조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될 것이 뻔해 보였다. '갑'이 되는 기획사만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져서 좋아질 테고 '을'이 되는 작사학원과 작사가들은 더 고달파지게 될 것이다. '데모'를 특정 학원에 주면 상관없겠지만 공모전 형식으로 뿌리는 구조는 작사가 당사자들에게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작사학원이 아니라 소수정예 작사에이전시처럼 운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작사 인력을 고급화할 수 있고, 자신들의 시장경쟁력, 확보력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이미 늦어버렸다. 기획사가 내놓는 곡은 한정적일 텐데, 그 파이를 나눠먹겠다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니 끝도 없는 비정상적인 경쟁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취미나 알바, 투잡 개념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겠지만, 말했지만 무한 경쟁체제로 돌입하고 있는 작사시장이다. 대충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내가 봤을 때, 음악적 천재가 아닌 이상, 최소 5년 이상은 해야 어느 정도 좋은 가사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1-2년 초보 작사가가 대량으로 양산되고 있다면, 기획사는 어떻게 할까? 많은 선택지가 생겼다고 좋아할까? 아니다. 그들은 효율을 최고로 중요시 여긴다. 이제부터는 고급 경력자들을 찾고 그들과만 일하고 싶어 할 것이다. 어차피 새로운 작사가들은 고급 경력자의 제자들이니, 그들보다 뛰어난 작사가야 물론 있겠지만 많지 않을 것이다. 경력이 많은 작사가분들이 먼저 작사 시장의 파이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남은 부분들을 학원생들에게 나눠줄 가능성이 크다. 그 남은 부분은 점점 작아지는데 그 남은 부분을 챙기려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 형국이 되고 있다. 프로작사가가 되기 위한 10여 년 동안 돈을 제대로 못 벌 수 있다는 말이다. 훌륭한 작사가를 양성하기 위한 작사학원도 있고 모든 작사학원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제3자가 봤을 때 생각이니 현실은 아닐 수 도 있다.
그래서 인생의 비전이나 사명이 작사가 아니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돈도 제대로 못 벌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도 아니라면 중간에 포기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가수들은 자기들이 작곡, 작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면 작사도 작곡과 마찬가지로 저작권을 갖고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자기가 모두 독차지해서 더 큰돈을 벌 수 있은 게 음악산업이다. 또한 앞으로 닥칠 가장 큰 경쟁자는 AI다. AI를 활용한 작사가들이 양성된다면, 작사의 세계의 미래는 더 암울해질 것 같다.
그래도 음악산업을 지키려는 어떠한 의리로 한동안은 기획사들이 작사학원에 '데모'곡을 보내주고 작사학원은 1년 동안 충성스럽게 학원을 다닌 후 계속해서 배출되는 학원생들과 함께 '데모'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아주 불안하면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시스템이 당분간은 유지될 것 같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커지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