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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Nov 01. 2024

쥐젖

언젠가 샤워를 하는데 겨드랑이에 쥐젖이 보였다. 하나가 보였는데 뒤쪽에 하나가 더 있었고, 반대쪽에도 두 개가 있었다. 4개나 있었던 것이다. 왜 갑자기 쥐젖이 4개나 생겼는지 의아했다. 문득 예전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그 여자친구는 쥐띠였다. 그 친구는 쥐띠답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고양이를 상상이상으로 무서워했다. 골목을 걷다가 고양이가 나타나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벌벌 떨 정도는 아니지만 고양이를 굉장히 두려워했다. 쥐띠라서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건가?
 

나는 그 여자친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헌신적으로 만났다. 그녀가 헤어질 때조차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줄 정도였으니까. '나에게 최선을 다해줘서 고마웠어.' 나는 사실 그 말이 이상했다. 최선을 다하는 건 일, 운동에나 쓸법한 말이다. 연인사이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진심으로 사랑해 줘서 고마웠어.'라고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살고 있는 여자친구가 외롭지 않도록 나는 최선을 다했다. 거의 매일 저녁 같이 밥을 먹었다. 돈을 많이 썼다. 사실 엄청나게 썼다. 공무원으로 8년을 일했으면서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는 건 그때 나의 씀씀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 친구를 딸처럼 사랑했다.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넘어 딸처럼 생각해야 된다고 알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4년 동안 쥐띠 여자친구를 열심히 먹이고 보살폈다. 그래서 나에게 쥐젖이 4개가 생긴 것 같았다. 어미쥐처럼 새끼쥐를 보살핀 몸의 흔적이랄까.


사실 나는 사람에게 동물띠를 부여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고 거부한다. 특정 동물의 특성이 인간에게 저장되어 어떠한 특정 행동이나 성향이 있다고 하는데,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신 같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인간띠이지 무슨 동물띠인가? 말이 안 되는 말이다. 만약 예전 여자친구가 쥐띠이기 때문에 쥐의 어떠한 특성이 있었다면나는 내가 가장 혐오스러워 하는 동물의 특성을 갖고 있는 여자와 연애를 한 지극히도 모순적인 사람이 될 터였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고민하지 않고 쥐라고 말할 수 있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봤던 유행성 출혈열 환자의 사진을 본 충격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이후로 쥐를 싫어하는 것만으론 모자랐는지 쥐가 다니는 길바닥 자체를 혐오했다. 그래서 물건이 땅바닥에 떨어지면 반드시 물이나 소독제로 소독을 해야 했다. 쥐에 있는 세균이 묻어서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결벽증은 나의 삶을 수십 년 동안 참으로 고달프고 힘들게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지행동치료를 받고 그 결벽증은 거의 치료되었다. 이젠 땅에 떨어진 물건을 잘 줍는다. 할렐루야!



조지오웰의 1984에서 윈스턴도 가장 싫어하는 게 쥐였다. 줄리아와의 밀애의 비밀방에 쥐가 나타나자 소스라치게 놀랐던 윈스턴이었다. 비밀경찰은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윈스턴이 마지막에 갔었던 101호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케이지 같은 것이 있었다. 케이지 안에서 윈스턴을 맞이했던 건 굶주린 거대한 갈색쥐였다. 갈색쥐가 들어있는 케이지는특이한 구조였다. 인간의 얼굴에 밀착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밀착한 후에 칸막이를 걷으면 인간의 안면은 쥐의 먹잇감이 되는 악마의 고문도구였다. 윈스턴은 그 순간 세상이 온통 고요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고문을 자신이 그토록 지켜왔던 사랑하는 존재인 쥴리아에게 하라고 소리친다. 빅브라더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순간이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행성에도 쥐가 등장한다. 온 세상을 지배하는 쥐때와 싸우는 고양이 전사들의 이야기다. 세상에 쥐는 얼마나 있을까? 책에서 쥐는 인간의 개체수 곱하기 4를 하라고 나온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이라면 2억 마리가 한반도에 있다는 말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쥐들이 있다. 마치 지하세계는 쥐들의 세계인 듯, 쥐 때로 만들어진 양탄자 위에 한반도가 들려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을 방치하는 이유가 쥐 때문인가? 지상에 고양이 군대가 있으니 쥐들이 함부로 거리를 활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이유에서라면 고양이가 더 많아져도 괜찮겠다. 언젠가 고양이가 쥐를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소설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영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찾지 않았다. 잔혹한 장면이 내 기억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내가 싫어하는 고양이와 쥐지만 왜 관심이 가는지 아이러니하다.


쥐는 크게 RAT, MOUSE로 나눈다. RAT은 우리가 흔히 보는 회색의 징그러운 쥐로 다양한 크기다. 커다란 RAT은 동물실험에 쓰인다고 한다.  MOUSE라고 불리는 쥐는 전 세계인들에게 친근한 미키마우스를 떠올릴 수 있다. 쥐를 극도로 협오하는 나조차도 미키마우스를 좋아해서 미키 마우스 티셔츠를 즐겨 입을 정도였다. 월트디즈니는 마법사 같은 애니메이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하는 동물을 전 세계인들의 친구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영어학원 선생님이 미키마우스를 닮은 쥐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정말 너무 귀여웠다고 했다. 쥐가 귀여울 수 있다는 게 놀라웠지만 미키마우스를 생각해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하긴 햄스터도 쥐고, 다람쥐도 쥐다. 귀여운 쥐가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세상에 쥐가 왜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동물이다. 인간과 가까이 살면서 인간에게 저주에 가까울 만큼 미움을 받는 동물이다. 형태를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쥐의 문자를 분해해서 다시 조합해 보니 죄가 되었다. 쥐는 죄 같다고 생각했다. 죄는 쥐처럼 더럽고 혐오스럽고 불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바보청년의사라는 책이 있다. 책은 크리스천 의사청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청년 의사는 환자들에게 책과 음반을 선물하고 기도를 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준 진심으로 환자를 소중하게 대해준 의사였다.그 의사는 바쁘고 힘든 의대시절  환자의 곁을 지켜주느라 유급을 당하기도 하고, 의료파업에도 참여하지 않고 환자를 보살피는 사랑의 의사였다. 그 청년의사는 군의관이 되었는데, 군대에서 유행성 출혈열에 걸려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갔다. 군대 풀밭에 무심코 앉았다가 감염된 것으로 보았다. 고 안현수 청년은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었다. 그 청년의사가 세상에 살면서 보여줬던 사랑은 책으로 기록되고 남겨졌다. 세상이 변할수록 점점 식어지는 사람들의 사랑을 다시금 불타오르게 만드는 횃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쥐는 우리 인간에게 혐오의 대상이지만, 인간과 가깝기에 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주방선반을 열었는데 쥐가 튀어나오면서 어깨를 밟고 꼬리로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 과거에는 쥐꼬리를 잡아서 학교에 제출했다는 이야기, 유럽을 초토화시킨 패스트는 겨울이라는 혹독한 추위 앞에 무너졌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 내가 썼던 소설에도 쥐가 등장한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 지하에 몰래 살고 있었던 근세처럼쥐는 자주 띄지 않지만 인간과 쥐는 공존하고 있다. 죄가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강남의 지하철 역의 계단을 내려가는 데 역 안에 있는 병원 창문에 '쥐젖'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갖고 있는 쥐젖이 생각났다. 쥐젖은 아주 조그만하지만 가만 두면 조금씩 커진다. 사람들이 잘 볼 수 없는 겨드랑이에 있기 때문에 제거에 대한 시급성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제거를 해야 한다. 일을 미루는 밀림의 대가답게 급하지 않는 일은 한없이 미루는 성격이라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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