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디자인전문회사에서 인턴을 했었다. 당시에는 중국의 디자인 퀄리티가 한국을 따라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과거의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디자인 격차가 굉장했다. 중국 휴대폰 생산 회사들은 자사 제품 디자인을 한국의 디자인전문회사에 의뢰해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대기업 디자이너들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와서 디자인전문회사를 차리고 돈을 많이 벌던 시대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은 것처럼 중국도 어느새 우리나라를 따라잡았고 더 이상 한국에 디자인을 의뢰하지 않게 되자 여러 디자인전문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번쩍번쩍 빛나는 외제차를 몰던 디자인전문회사 대표들이 국산 중형차로 차를 바꾸는 걸 보며 좋은 시절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됐었다.
인턴을 할 때 여러 학교에서 온 학생이 6명 정도있었는데, 그중에 기억나는 누나가 있다. 그 누나는 회사 대표와 인턴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단팥빵이라고 소개했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던 것 같은데 단팥빵의 어떤 특성을 자기에게 대입해서 설명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 한마디는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나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면접을 봤다. 공무원 면접, 삼성전자 면접, 대한항공 면접 같은 대기업 면접부터 중소기업의 조촐한 면접까지, 단체 면접, 개인 면접들을 여럿 봤지만 기억나는 자기소개는 단 하나밖에 없다. 자기는 단팥빵이라는 그 누나의 자기소개.
"나는 단팥빵입니다."
20년도 넘게 지나서 그 자기소개를 그대로 써먹었다. 최근에 8명 정도 단체로 면접을 봤는데,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나는 자기소개가 제일 짜증 난다. 열심히 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보면 될 거 아닌가? 제출한 자료에 정확히 나와있을 텐데 굳이 말로 들으려고 하는 면접관들의 심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자기소개 준비를 안 한다. 그런데 그걸 우리들에게 시켰다. 다행히도 나는 2번이었는데, 1번의 훌륭한 자기소개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때 기억하고 있는 단 하나의 자기소개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단팥빵이라고 말하며 솰라솰라 뻐꾸기를 날렸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인재를 몰라보는 사람들이었다.
40일 정도 참았던 빵을 드디어 먹었다. 단팥빵이었다. 팥을 좋아한다. 단팥빵 중에서도 아주 맛있는 단팥빵이었다. 피자의 도우의 두께에 따라 normal, thin으로 나누는 것처럼 단팥빵도 빵이 얇고 팥이 듬뿍 들어있는 것과 빵은 두껍고 팥은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간 게 있는데,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전자를 훨씬 좋아한다. 그런 단팥빵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40일 동안 빵을 먹지 않았기에 고민이 되었지만 내 손안에 들려있는 영롱한 빵의 유혹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서둘러 비닐봉지를 뜯었다. 향긋한 빵향내가 장미꽃 향기처럼 피어올라 나의 다이어트 자물쇠를 마술처럼 풀어버렸다. 노릇하게 구워진 단팥빵 표면에는 참깨 형제들이 최고급 초밥의 금가루처럼 올려져 있었다. 한 입 앙! 깨물었다. 세상에! 팥앙금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소리 없는 탄성과 폭죽이 울려 퍼졌다. 황홀할 정도로 맛있었다. 앙금 안에 숨어있는 호두 알갱이들이 씹히면서 고소함이 증폭되자 꿈나라로 각성되듯 온몸으로 행복감이 퍼져 나갔다. 순간이동을 한 듯 단팥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 뱃속으로. 바보처럼 하나를 더 달라고 말하지 못한 게 너무 후회스러웠다. 집에 가는 길에 하나를 더 사 먹을까 생각했지만 참아보기로 했다. 다음날 거울을 봤다. 40일 동안 빵 참기로 생겼던 턱선은 변함이 없었다. 휴- 다행이었다.
단팥빵을 먹은 다음날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빨랫감을 세탁기 앞에 놓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거실에 피자박스가 보였다. 피자는 자석처럼 나를 순식간에 끌어당겼다. 그리곤 나를 조종하듯 피자박스 커버를 열어젖히고 피자 한 조각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서 내방으로 날려 보냈다. 아이보리 컬러의 치즈가 듬뿍 들어있고 옥수수, 파인애플 같은 토핑들이 치즈 안에 가득 숨어있었다. 출근길 지하철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직장인들처럼 피자는 순식간에 입안으로 꽉꽉 들어찼다. 살랑살랑 녹아져 내리는 피자는 도파민 교향곡 No.1 이 되어 입안 가득 울려 퍼졌다. 어떤 수면제보다도 강력하게 나를 평온하게 잠들게 했다.
다음날 아침잠을 깨고 거울을 봤다. 금세 턱선이 흐려진 게 보였다. 하..... 40일의 밀가루 금식이 단 이틀 만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다이어트성은 모래성이었다. 금세 무너져내리는 부실공사였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조차 들지 않고 먹고 싶은 걸 맘껏 먹었다. 떡볶이, 빈대떡, 국수, 어묵, 식혜를 닥치는 대로 먹었다. 거울을 보니 금세 둥근 얼굴이 되어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다 싶었다. 40일 동안 참고 3일 밀가루를 먹었다고 제자리로 곧바로 돌아오다니! 믿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나는 왜 금방 얼굴살이 찌는 걸까? 누구는 나이 들면 얼굴살이 빠진다는데, 나는 얼굴살이 제일 먼저 찌고 제일 나중에 빠진다. 그런 상황에서 또 빵선물을 받았다. 저녁밥을 먹고 빵이 담긴 비닐봉지를 봤다. 빵을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마음속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가볍게 무시해 버렸다. 빵의 크기는 내 얼굴만큼 거대했다. 여러 매듭모양의 빵 안에는 무화과가 보이고 크림치즈가 보였다. 한 입 먹으면 부산행 KTX 열차처럼 멈추지 않고 초고속으로 통째로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또 다른 마음에 소리가 들렸다.
"턱선과 빵의 달콤한 행복,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
"둘 다 선택하면 안 될까? 빵을 먹고 운동을 하면 되잖아?" 나는 말했다.
"아니, 안돼. 너 운동 안 좋아하잖아."
"그러긴 해."
"하나만 선택할 수 있어."
"그렇구나."
너를 두들겨 패주고 싶다고 말할 걸 후회됐다. 고민을 했다. 빵을 먹고 달콤한 행복에 젖은 채 보름달 같은 얼굴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달콤한 빵을 포기하고 살을 빼고 턱선을 유지할 것 인가. 51:49로 턱선이 빵맛을 이겼다. 빵을 가방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다행히 빵의 유혹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하지만 호시탐탐 나를 무너뜨리려는 오랜 탄수화물 친구들이 내 주변에 수두룩 빽빽 가득하다.
'그래 인생은 이런 거구나.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는 거야.'
빵과 턱선, 둘 다 가지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 나이에 말이다. 인생의 지혜가 이런 걸까? 그러고 보면 여자들이 남자보다 지혜로운 건 다이어트하는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평생토록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들은 미친 듯이 안 먹거나, 미친 듯이 운동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중간은 없다. 완전히 포기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살을 빼거나. 여자들은 대단하다.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절제를 할까?
요즘에는 워낙 현란하고 버라이어티 한 빵들이 많아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팥빵은 빵집의 메인 스테이지에서 늘 멀리 떨어져 있다.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단팥빵은 빵집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단팥빵만의 포스가 있기 때문이다.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단팥빵 만들기를 배웠을 때를 돌이켜보면, 단팥빵은 빵 만들기에서 중요한 기본 테크닉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밀가루 반죽 둥글리기, 팥앙금 넣기, 눌러서 모양 만들기, 굽기 팬 위치 잡기 같은 중요한 기초 기술들이 녹아져 있다. 그래서 단팥빵 테크닉을 익히면 그 기술을 응용해서 다른 여러 빵들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단팥빵 만들기를 배울 때쯤에야 '아! 내가 빵의 세계에 들어왔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제 아무리 유행하는 빵들이 난무하더라도 단팥빵이 없는 빵집은 드물다. 2050년이 돼도 2100년이 돼도 단팥빵은 빵집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단팥빵을 보면 단팥빵 같은 사람도 괜찮은 것 같다. 아니 괜찮은 사람을 넘어 훌륭한 사람 같다.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지 모를 자기를 단팥빵이라고 말했던 누나가 생각나는 늦은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