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캣맘분들이 있다. 캣맘분들의 사랑으로 배부르고 등따신 스트리트 캣들이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 캣의 의무는 뭐니 뭐니 해도 쥐새끼사냥이다. 백해무익한 쥐새끼들을 먹이로 하든, 노리개로 하든, 어떻게든 쥐새끼의 개체수를 줄여줘야 한다. 그런데 사랑이 가득 넘치는 캣맘분들이 시시때때로 냥이들의 양식을 풍족하게 챙겨주니 길냥이들이 살이 올라 느릿느릿 여유롭게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어떤 아주머니가 소형차를 타고 다니면서 동네 이곳저곳에 마련한 길냥이 먹이창고에 먹이를 채워 넣는 걸 본 적이 있다. 애틋함이 느껴졌다. 캣맘은 있어도 캣파더는 없는 걸 보면 여자들은 남자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공감능력, 모성본능, 보호본능, 양육감각들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캣의 영원한 라이벌 도그를 위한 도그맘은 왜 없을까? 개는 고양이처럼 자력으로 먹이나 잠자리를 잘 구하지 못해 스트리트도그로 생활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궁지에 몰린 개들이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어 유기견 신고를 통해 대부분 구조되어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이 없기에 도그맘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만약 길강아지들이 존재한다면 그것들을 돌보는 도그맘도 분명히 생겼을 것이다. 반드시!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 만화에서 악당들이나 괴물의 눈은 주로 캐츠아이로 그려졌다. 대부분 고양이는 교활하고 사악한 이미지였다. 그래서인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보다 강아지를 키우는 집이 월등하게 많았다. 성인이 돼서도 주위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2천 년대에 들어오면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왜 그럴까? 고양이가 야행성인데, 현대인들도 야행성이 돼 가고 있어서 친해진 걸까? 아니면 예전과는 달리 동그랗고 귀여운 눈을 갖고 있는 토시토실한 고양이들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 사실 그런 인형 같은 냥이들을 보면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나도 한 번은 키워보고 싶기도 하다. 고양이의 매력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냥이들의 애정표현은 가히 놀랍도록 섬세하다고 한다. 주인의 몸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거나 발바닥에 꼬리를 살며시 대고 가는 냥이만의 애정표현을 느낄 때면 소름이 끼칠 정도라고 하니 무작정 달려들러 폴짝폴짝 뛰고 발발거리는 강아지와는 사뭇 다른 인간을 호리는 매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몇 주 전에는 골목에서 어떤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평범한 길냥이가 아니었다. 혈통 있는 냥이가 분명했다. 은은한 회색빛 털로 뒤덮인 몸통과 얼굴은 수묵담채화처럼 거무스름했고 눈빛에서 푸른빛이 돌았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배회하다 골목 안쪽 화단에 숨어있었다. 녀석에게 살며시 다가가봤다. 인기척을 느낀 냥이는 쏜살같이 튀어 도망갔다. 완전히 내빼지는 않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어중간한 거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지켜봤다. 나는 손뼉을 치고 녀석을 유인했다.
"야옹아! 일로와!"
고양이는 이놈을 믿어도 되나 싶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쩌다 버림받았는지, 몸통의 그레이색처럼 녀석의 앞날에 먹구름이 낀 것 같아 보였다. 두려운 얼굴이라 그런가 예쁘고 귀여워 보이지 않았다. 예쁘지 않아 버림받은 것 같기도 했다. 따뜻한 집에서 곱게 자라다 정글 같은 길바닥에 버려진 고양이들은 공포로 가득 찰 것 같다. 그런데 본래 고양이들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생활하여 인간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좁은 곳에 숨을 수 있어 길에서 생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럼에도 길냥이들이 개들보다 훨씬 더 로드킬을 당하는 이유는 왜일까? 독립적이고 야행성인 고양이들이 어두운 골목을 돌아다닐 때 운전자의 눈에 잘 안 띄며 위험한 상황에서 튀어나가는 도망본능이 있어 차가 다니는 위험천만한 도로를 분별하지 못하고 튀어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취객들의 발에 걷어차이기도 하고, 흉기에 찔리기도 하고, 심지어 시골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뉴스를 본 적도있다. 이처럼 아무리 생존 본능이 뛰어나더라도 도시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그래서 캣맘분들이 길냥이들을 돌보는지도 모르겠다.
길냥이들이 괴롭힘을 많이 당한다고 하는데, 나는 어렸을 때 본 만화에서 고양이를 잘못 괴롭히면 쥐새끼를 잡아서 신발에 넣어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잘못하면 고양이 저주를 받는다고 들었기에 고양이를 함부로 괴롭히지 못했다. 반면 개들은 인간의 의존도가 고양이보다 훨씬 높아 리드줄에 묶여 사람의 통제를 받고 주로 낮에 활동하여 위험에 덜 노출된다. 집안이나 마당 같은 인간의 보호 아래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고양이에 비해 안전한 편이다.
DMZ에서 군생활을 할 때, 선임이 검정 새끼 고양이를 주워서 키운 적이 있다. 주먹만 한 조그마한 고양이였는데, 선임이 잘 때 침낭 위에 누워 녀석을 가슴 위에 올리고 귀여워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병균이 잔뜩 있을 그 고양이 새끼를 만지기도 싫어했고 멀리했다. 그 선임은 분명 나보다 먼저 전역을 했을 텐데, 새끼 고양이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공무원으로 일할 때 구청 지역경제과에서 길냥이들의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수술을 주기적으로 한다고 알고 있었다. 길고양이 암컷은 1년에 1-2회 임신하고, 한 번에 3~5마리를 출산해서 약 10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천적이 없는 고양이 개체수가 급증할 수 있기 때문에 서울시에서는 길냥이를 포획하고 중성화 수술 후 방사한다. 포획, 이송, 방사에 캣맘들이 자원봉사로 나서기도 한다고 한다.
교육청으로 인사교류를 하고 유치원에서 근무할 때였다. 주말 내내 폭우가 쏟아졌었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했는데, 뒷마당에 새끼 고양이가 비에 쫄딱 맞은 채 흙바닥 앉아 그대로 죽어있었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모양이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에게 낯선 냄새가 나면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함부로 새끼 고양이를 만져서 사람의 체취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로 비를 피하지 못하고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 사채를 만져 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구청에 연락해서 고양이 사채를 발견했다고 하니, 비닐봉지에 담아두면 환경미화원이 수거하겠다고 했다. 죽은 고양이가 앉아있는 흙밭을 삽으로 파서 흙과 함께 고양이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얼마뒤 형광색 옷을 입은 환경미화원이 와서 봉투를 가져갔다. 그 후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캣맘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길냥이들의 도시생활이 힘들지만 그렇다고 길냥이들을 과보호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먹다 남은 먹이들 때문에 비둘기나 다른 지역 냥이들이 몰려와 인근주민과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길냥이 한 마리에게 먹이는 종이컵 한 컵정도면 적당하다고 하지만 더 적게 줘야 한다. 사계절 여름이 있는 나라의 꿀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듯이 고양이도 배가 부르면 설취류와 해충을 열심히 제거해야 할 본분에 소홀할 수 있다. 길냥이들이 야생의 습성을 잊지 않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