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공업디자인과는 휴대폰, 백색가전, 자동차, 운송기기 같은 산업전반의 기계들을 디자인하는 학문을 배우는 학과다. 학창 시절 나는 꽤 잘 나가는 학생이었다. 2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디자인전문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삼성케녹스에서 디자인멤버십도 하고, 전국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도 받았다. 솔직하게 건방지게도 우리 과에서 나보다 디자인을 잘하는 학생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반면, 같은 과에서 정말이지 디자인을 참으로 못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과거나 현재나 미니멀하고 심플한 디자인이 트랜드인데도 뿔 같은 형상의 디자인을 하는 친구도 있고, 몇 년 동안 같이 학교를 다녔지만 작품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친구도 있고, 아이디어는 좋지만 제품답지 않은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2%가 부족하거나, 졸업 후가 진정 걱정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2-3년 동안은 대부분의 졸업동기들이 공업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몇 년을 못 버티고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고, 방황도 하고,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졸업 후 15년 정도가 지난 현재는 하는 일이 모두 제각각이다. 아버지 사업을 함께 하는 친구, 나처럼 공무원을 했다가 그만둔 사람, 편집디자인을 하는 친구, 인테리어, 전업주부, 과수원 영농후계자, 일러트스레이터, 등 하는 일도 각양각색이다.
신기한 건 학교 다닐 때 디자인을 제일 못했던 친구가 현재까지 계속해서 현역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뿔 같은 제품을 디자인했던 정말이지 촌스럽고 답이 안 나오던 친구말이다. 그 친구는 디자인 분야에서 권위적인 상도 받는 공업디자인 전문가가 되어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친구의 최근 디자인을 보면 여전히 예전의 촌티가 느껴지는 구석이 있긴 하다. 하지만 실무디자이너로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기 때문에, 경력단절 디자이너 내가 그 친구를 평가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의 의견을 가소롭게 여길게 분명하다.
그리고 특이한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과도하게 겸손하고 너무나도 힘이 없어 보이는 지푸라기 같아 무시받던 오타쿠 같은 녀석이었다. 그 친구도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상당히 성실한 학생이었다. 계속하는 놈 당할 재간이 없다는 말처럼 디자인을 잘하진 않았지만 날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녀석은 졸업을 하고 하나의 디자인전문회사에 꾸준히 다니면서 디자인공모전에서 수십 차례 입상을 하고 관리자급으로 성장한 실력파 제품디자이너가 되어있다.
우리 문화예술대학 산업디자인학부 공업디자인 전공의 여러 동기, 후배들 중에 공업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친구는 단 두 명 밖에 없다. 제일 못했던 친구와 제일 성실하고 비실됐던 친구. 그 친구들을 보면서 사는 게 정말이지 신기하고 앞날은 알 수 없다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흔한 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란 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어떤 순간이나 기간에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한 분야에서 계속해서 버티고 참는 자가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학교 다닐 때는 나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못했던 친구가 이제는 나와 비교도 안 되는 전문가가 되어있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말이다. 한 우물을 끝까지 계속 파는 자가 결국 살아남아 실력자가 된다는 걸 왜 몰랐을까? 중요한 건 어떤 분야든 긴 시간의 테스트와 힘든 연단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느냐였다.
나는 엉망진창으로 커리어를 관리하여 디자인도 잘 못하고, 공무원 하면서 흥청망청 놀다가 특별한 자격증도 없고,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고 체력도 전투력도 떨어졌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자전거 배달을 하다 이대론 안될 것 같아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살길이 참으로 막막하다. 내 나이면 어디라도 자리를 잡고 실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여기저기 깔작깔작 대다 보니 남는 게 없다.
흥미를 느끼는 일들이 많고 자주 바뀐다. 조금만 자극을 받으면 곧바로 책을 사고 한 장도 읽어보지 않는다. 빠른 TRY와 빠른 GIVE UP, 나의 인생이다. 처음에 흥미를 갖고 시작하는 일은 재밌게 열정적으로 한다. 마치 껌을 씹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껌을 씹으면 달짝지근하고 상큼한 맛에 침샘이 폭발하고 입안 가득 향근한 향이 진동하며 콧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껌을 씹는다. 하지만 이내 단맛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아무 맛도 안 나고, 침맛이 나고, 심지어는 고무덩어리를 씹고 있는지 모를 정도가 된다. 그럼 나는 가차 없이 신나게 시작한 일들을 냉패겨쳐 버렸다.
나는 직업도 껌처럼 여겼다. 단맛이 있을 때는 열심히 하고 단맛이 떨어지면 뱉어버렸다. 좋아하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은 일을 계속하는 건 너무나도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참을 수가 없고 버티기가 힘들고 멀미를 할 지경이었다. 참을성도 없고 인내심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바보 같아 보였다. 하지만 바보는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달삼쓰뱃,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다는 자세로 세상을 살았다. 그렇게 세상을 내 멋대로 살다 보니 반대로 세상이 나를 달삼쓰뱃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나는 단맛을 내는 일꾼이 아니게 되었다.
디자인이든, 사무직이든 나의 객관적인 실력은 신입과 대리 사이 수준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누가 중년의 남자를 신입과 대리로 채용하겠는가? 어떻게든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과 걸맞은 실력과 수준을 갖춰야 하는데, 기나긴 시간과 경력의 공백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메꿀 수 있겠는가? 자꾸 조바심이 들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만 복잡하고 어떤 결정도 못 내리고 있다. 결정을 내린다 한들 몇 달 반짝하다가 또 포기하고 시간만 날려버릴 것 만 같아 겁이 난다.
과거로 돌아가 뿔 같은 디자인을 했던 친구의 작품을 보고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비웃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학교 다닐 때 잘하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잘하고 못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노력하는 게, 꾸역꾸역 하는 게 중요한 거라고, 진득하게 한우물을 파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자전거로 음식배달이나 할 처지가 될 거라고. 그때는 몰랐다. 15년 뒤에 우리들의 모습이 어떻게 역전되어 있을지. 지금 같은 상황이 펼쳐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떻게 인생을 수습해야 하는지 암담하다.
하지만, 좌절하거나 절망하진 않으려고 한다. 비록 커리어는 뒤죽박죽 짬뽕이 되었고, 뭐 하고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이지만. 분명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했던 순간들이 있다. 스티브잡스의 Connectiong the dots처럼 나의 여러 인생의 순간들이 모여 나만의 이야기와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크리스천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나를 이끌어주실 줄 믿는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