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널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싶어. 의미 없는 시간들로 인생을 허무하게 낭비한 적도 많았지만, 네 인생의 스케치북에는 열정과 성실의 색깔들이 가득 칠해져 있어. 새벽 5시에 힘겨운 몸을 일으켜서 씻고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서 교회에 갔지. 교회 의자에 팔베개를 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곤히 잠든 적도 꽤 많았지만, 열심히 기도하려고 애썼고, 성경을 읽었고 필사를 했잖아.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했던 너의 마음과 노력은 언제나 빛나고 멋졌어. 왕성한 식욕과 식탐이 있는 네가 10년 가까이 하루 한 끼 금식기도를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어. 아침마다 배고픔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꿋꿋하게 참아낸 건 아주 대단한 거야. 하지만 아침을 굶어서 점심때 폭식을 하는 건 안 좋은 습관이니까 그건 하루라도 빨리 고쳤으면 해. 소식을 해야 장수한다고 하잖아.
먼저 인생에서 만난 사랑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20살 때 만났던 착한 A, 26살에 만났던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B, 28살에 만났던 결혼 문턱까지 갔던 C, 37살에 만났던 D, 4명의 여자를 만나면서 꿈같은 시간도 보내고 죽을 만큼 힘든 시간도 보냈어. 충동적이고 어리석었던 너의 모습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만남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에 대해 칭찬해주고 싶어. 신기하게도 여자친구들이 좋은 사람이었던 거 같아. 그건 너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자신감을 갖어도 돼. 아쉽게도 결혼의 골대 앞에서 헛발질을 하거나 딴짓을 하거나 공을 빼앗겨서 지금은 쓸쓸한 솔로지만, 너의 반쪽이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좌절하지 말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도록 날마다 노력해야 돼! 그리고 지난 연애의 실패 원인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바보가 돼서는 절대 안 돼! 가까이 갈수록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일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아. 너는 굉장히 머리도 좋고 성실하긴 한데, 변덕이 너무 심해.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고 쉽게 포기하고 말이야. 그런 것들이 모두 네가 ADHD 여서 그랬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지? 인생의 중반에 와서야 알았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단다. 늦게 알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리고 늦게나마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이야. 너의 다양한 경험들이 모여서 너만의 특별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거야.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고 너무 조바심 내지 마. 조바심 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잖아. 너도 잘하는 일이 있잖아. 너는 30년 가까이 디자인을 했어. 그 시간들을 우습게 보지 마. 다른 사람들이 너의 디자인을 무시하고 AI가 난리 브루스 떨어도 넌 너만의 스토리가 있고 너만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야. 경험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재료는 없어. 그러니까 너는 너만의 이야기가 담긴 디자인을 하면 돼. 그럼 꽤 훌륭하고 이름 있는 디자이너가 될 거야. 이젠 무조건 목표를 고정하고 다른데 눈 돌리지 말고 앞만 보고 가는 거야 알았지? 한눈팔지 마!
일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반드시 와, 유치원 어린이들도 아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꼭 잊지 마. 흥청망청 쓰면 안 돼. 아끼고 아껴서 일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야 해. 비참한 배짱이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야.
건강에 대해서 따끔하게 말하고 싶어. 넌 언제나 운동을 열심히 해야 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다치고 아팠잖아. 여자친구도 없으면서, 키도 작은 애가 배까지 나오면 어떻게 하니? 마음은 여전히 팔팔한 20대겠지만, 안 아팠던 데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지? 머리숱도 빠지고, 근육도 빠지고, 힘도 빠지지? 몸은 에너지를 담는 그릇이야. 깨진 그릇에 물이 세듯이 에너지가 줄줄 세는 몸을 만들어선 안돼. 에너지가 빠지니까 머리카락, 근육, 힘이 빠지는 거야. 충전도 안되고 충전된들 금방 방전되지? 피곤해죽을 것 같지? 같은 차를 타도 어떤 사람은 몇 년 안에 똥차를 만드는 사람이 있지만 다른 사람은 수십 년을 타도 새 차처럼 관리하는 사람이 있잖니? 자동차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정교하고 소중한 몸을 소중히 관리해야 해. 다른 건 몰라도 몸관리는 반드시 해야 해! 하루에 1시간 땀 흘리며 운동한다는 약속은 꼭 지켜!
돈, 친구, 사람 관리도 잘 못했지? 어쩌겠니? 지난 일인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잖아. 과거는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어. 과거에 묶여서 후회하면서 인생을 낭비할래? 아니면 과거를 통해 잘못을 반성하고 성장할래? 우린 미래를 선택하고 만들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마. 그러니까 이제라도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 네 핸드폰에 쓸데없는 사람들을 모두 지워. 친한 친구는 7명만 있으면 돼, 앞으로는 사람들한테 인색하면 안 돼. 돈을 써야 사람이 모이는 거야.
부모님, 여동생, 친척, 조카들에게 해준 게 없어서 늘 미안한 마음일 거야. 나 하나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이니까. 그래도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늘 품고 있었잖아. 그 사람들도 그래. 너에게 잘 못해줘도, 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각자 사는 게 힘들어도 힘든 일이 있으면 네 곁에서 힘이 되고 도와줄 사람들이야. 그리고 언젠가는 이별할 사람들이란 걸 잊지 마.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후회하기 싫다면 있을 때 잘해야 돼.
할 말이 많다고 계속 말하면 안 되는데,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너무 애쓰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말하고,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더 밀도 있게 더 넓게 더 깊고 더 자유롭게 너만의 인생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면 좋겠어. 네가 더 많이 웃고 행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