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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시 모집

by 태리우스

"원서접수 사이트에 이름을 한자로 쓰는 칸이 있는데 한자로 써야 하나요?"

"그럼요? 그 칸에 뭘 쓰시게요? 한글을 쓰시려고요?"

"아..... 네....."

어이가 없어서 나도 웃고 수화기 너머 학생도 멋쩍은 듯 웃는다.

"한자 쓰라는데 한자 쓰면 됩니다."

"네."


이런 걸 물어보는 학생들이 있다. 그럼 한자를 쓰는 칸에 한자를 쓰지 도대체 뭘 쓴단 말인가? 가슴이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되지만 한자세대가 아니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웃으면서 넘어간다.


생각보다 원서접수를 하면서 연락처를 잘못 쓰는 경우, 학과를 잘못 체크한 경우, 주소를 잘못 쓰고, 자기 성적보다 너무 우상향을 해서 취소하고 싶다는 학생, 이메일을 잘못 쓴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떤 엄마는 자녀가 개명을 했는데, 법원에서 실수를 해서 원하지 않는 한자로 바꿨는데, 원서접수를 할 때 자신이 원하는 한자를 넣어도 되는지 같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 적도 있다.

"아니요. 어머님, 법원에서 판결 내려준 한자 그대로 쓰셔야 합니다. 현재 주민등록증, 등본에 나와있는 한자로 쓰셔야 해요."


수시모집 관련 질문들을 모아보았다.

"서류발급을 대입전용으로 해도 되는지, 일반출력으로 해도 되나요?"

"다른 학교와 면접, 실기, 논술이 겹치는데, 조정이 가능한가요?"

"실기를 원서접수 순으로 보는지 랜덤인가요?"

"마지막 날 경쟁률은 오후 2시까지 공개되는데, 2시 이후에 알려줄 수 있는지?

"서류제출용 봉투를 집에 있는 봉투로 보냈는데, 괜찮은가요?"

"자율전공학부에 원서접수를 하려고 하는데, 이과인지 문과인지?"


대부분 질문들은 모집요강을 제대로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모집요강을 정확히 보고도 다시 전화로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싶다는 전화가 많이 온다는 것이다. 모집요강은 아주 중요한 문서다. 어쩌면 대학입시에서 해당 대학의 법적, 행정적, 최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대내외적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문서다. 그 문서를 보고 확인한 후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하려고 전화를 하는 심정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모집요강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입학처 직원들이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설명하려면 얼마나 곤욕스러울지.....암담하다.


또 궁금한 게 전화를 하고 바로 대답을 안 하는 경우는 도대체 왜 그런지 물어보고 싶다. 내가 "여보세요." 말을 하고 대답이 없으면 다시 "말씀하세요." 말을 한다. 그제야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가 "여보세요." 하는 건 왜 그러는 걸까? 날 약 올리는 걸까? 아니면 상대방 목소리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걸까?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럼 참다못하고 "제 목소리가 잘 안 들리셨나요?" 물어보기도 하고, 짜증이 나서 바로 전화를 돌려버린다. 그런 사람들의 심뽀가 아주 궁금하다.


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2025년 9월인데, 올해 냈던 서류를 내년 2026년 9월 입시에 동일하게 내도 되는지 물어보는데, 1년 후에 동일 서류를 내도 되는지 물어보는 답답한 질문을 하길래 재차 물어봤더니 내가 한국 사람 맞냐며 한국 사람을 바꿔달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야말로 당신이 한국사람 맞냐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또 놀라운 건 학교에 전화를 하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여러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아주 닮아있다. 대부분 하이톤이다. 목소리 안에 물들어 있는 신경질, 숨길 수 없는 짜증 한 스푼, 다년간 수다를 통해 단련된 말의 속도, 어떻게 이렇게나 목소리가 비슷할 수 있는지 미스터리다. 전화를 하는 엄마들의 60~70% 목소리는 아주 닮아있다. 반면 아빠들의 목소리는 천차만별로 구분이 된다. 하지만 엄마들은 목소리가 너무 비슷해서 같은 사람인가 싶어서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면 모두 다른 사람이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 여성들이 코 성형수술을 해서 발성기관 구조가 비슷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결혼을 하고 20년 정도 살면 여자들은 어떤 판박이나 붕어빵처럼 목소리가 변형되는 걸까?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계급 같은 역할을 한다. 초중고 19년을 대학 하나만 바라보고 온 가족이 달려온 셈이니, 온 가족이 원서접수에 사생결단을 하듯 달려들고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듯 신중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생각해 보면 수시지원자들은 학교를 여러 군데 써서 보내니 학교마다 입시 요강이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입시 요강 같은 문서를 자주 보는 사람이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겠지만, 평범한 일반인들이 그런 문서를 얼마나 자주 보겠는가? 헷갈리고 어렵고 잘 모르겠어서 학교에 문의를 하는 게 당연한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수시 문의 전화를 받으면서 더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부드럽게 응대하지 못한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든다. 전화를 하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나에게 처음 1:1로 전화한 거겠지만 나는 마치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하고 이해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수십, 수백 가지 질문을 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귀찮았다. 그래서 때론 무시하는 말투, 신경질을 내고 짜증을 냈다. 물론 친절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들도 많았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아이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이고, 아빠의 인생이다. 대입이라는 인생에서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든 수험생 가족분들의 마음이 느껴지니 나의 태도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 위해, 공부를 시키고, 먹이고 입히기 위해 부모는 쉬지 않고 기계처럼 일을 한다. 아파도, 힘들어도, 화가 나도, 사표를 쓰고 싶어도 가족, 자식생각하며 20년을 넘게 일을 한다는 건 엄청난 헌신과 사랑이다. 아빠들이 대부분 전화를 하면 덤덤하고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건 오랜 사회생활을 해서 조약돌처럼 모난 부분이 깎이고 깎여서 둥글 둥글 해진 것 같기도 하다.



엄마들은 속이 터지고 답답한 삶을 20년을 넘게 살았으니 늘 장마처럼 변해져 버린 마음 안에 언제라도 칠 준비되어 있는 번개들이 숨어있으니 기회만 되면 벼락같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신경질, 까탈스러움, 짜증이 묻어져 있는 말투는 마음속 정전기라고 생각하자. 정전기를 줄이기 위해선 부드러운 섬유유연제가 필요하듯 엄마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기 위해 온 가족은 언제나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 어려움은 말하면 입이 아프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쉬지 않고 한눈팔지 않고, 공부해 매진하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피 끓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말이다. 돌도 씹어 먹을 정도로 활화산처럼 분출되는 에너지를 꾹꾹 눌러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잠을 이겨내며 공부를 하는 걸 보면 우리 수험생들은 19년 동안 마시멜로 실험의 실험대상 같기도 하다.



때로는 한부모 가족, 기초생활수급자 학생들이 전화가 온다. 부모들은 살기 바빠서일까? 자신들의 입시를 챙겨줄 어른이 없는 경우에는 자기가 전화해서 이런저런 내용을 물어본다. 물론 답답한 질문을 많이 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이 또 언제 이런 걸 해봐겠는가? 서툴고 잘 모르고 헷갈려서 전화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할 때는 묻기도 한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왜 그런 거예요?"

"잘 몰라서요. 확인하고 싶어서요."

아이들에게 더 밝고 상냥하고 따뜻하게 통화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원서접수가 끝나고 전화가 왔다. 마지막 카드결제 오류가 나서 접수를 못했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는 아빠였다. 큰일 났다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어떻게 안 되겠냐고 물어보는데, 뭘 어떻게 하겠는가? 전산시스템으로 17:00 땡 하면 프로그램이 차단되는데, 해킹이라도 해서 넣어달라는 말인가?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버님, 상식적으로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네, 일단 알겠습니다."


옛날처럼 잠긴 입학처 사무실 문 틈 사이로 원서를 집어넣는 시절이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직접 학교에 가서 원서접수를 했다. 원서접수 수험표에 사진을 붙여있는 수험표를 여러 모아두었는데 찾아봐야겠다.


SKY, 인서울, 지방국립대, 사립대, 전문대 등 우리나라 대학이 325개 정도 있다고 한다. 핀볼게임처럼 수많은 장애물을 뚫고 55만 4174명의 수험생들이 자기들의 대학과 자리를 찾아서 들어갈 것이다. 수시로 먼저 합격의 짜릿한 맛을 맛보는 친구들도 있을 거고, 정시의 칼을 가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알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 저 하늘 높이 날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다. 알에서 나온 새는 사실 병아리다. 공부하느라 흘린 땀과 노력으로 흠뻑 젖은 볼품없는 아기새일 것이다. 19살의 인생 최대의 고비를 넘어 20살이 되면 뽀송뽀송 샛노란 병아리처럼 20대를 시작할 대학생들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거리면서 하하 호호 캠퍼스를 가득 채우겠지만, 캠퍼스 밖에 펼쳐진 정선의 인왕제색도럼 넘어야 할 산맥이 에베레스트처럼 펼쳐져있는 것도 모른 체 말이다.


수시원서접수 얘기를 하면서 예고편 이야기를 너무 해버렸다. 이제 진짜 입시시즌이 왔다. 수능까지 두 달 정도 남은 상황,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달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잘 정리하고 집중해서 공부하면 분명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컨디션 조절을 잘하길 응원한다. 일주일에 하루, 주일은 편히 쉬고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면 좋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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