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울 해방 일지
‘경상북도, 영천’
내 생전 가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무려 3년째 살고 있다. 태어나 평생을 쭉 서울에 살았고 미국, 호주에서 잠깐씩 살기도 했던 꽤나 도시생활을 즐기고 살았던 나는 결혼 2년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곳 영천에 정착했다. 미국 한인타운보다 좁게 느껴지던 이 도시는 나에겐 거의 유배지나 다름이 없었다.
살다 보니 이 알 수 없는 서울 출신이라는 좀 재수 없는 프라이드는 도움은커녕 살면 살수록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누굴 만나도 꼭 나 서울에서 왔다고 은근히 티를 내고 있는 내 모습, 차분한 서울말을 쓰는 내가 무슨 아나운서인 양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으쓱해지던 내 모습을 자기 전 생각하면 이불 킥에 멍석말이 감이다. 무슨 은마아파트나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살다 온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이 미묘한 서울을 향한 향수는 사실 아직도 그대로다. 이곳에 살며 누리는 장점이 훨씬 많은데도 말이다.
모아놓은 돈 없이 오로지 대출로 결혼했던 우리 부부는 18평의 30년이 넘은 낡은 전세 아파트에서 신혼집을 차렸다. 서울에서 우리 버젯으로 갈 수 있는 아파트는 아마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도 그 아파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따라오는 자녀계획도 조금 답답했다. 이 코딱지만 한 집에서 애는 어떻게 키우며 이 코딱지라도 영위하려면 맞벌이를 해야 할 텐데 어떻게 자녀를 낳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직장을 영천으로 옮기면서 적극적인 임신 계획을 가지고 서울을 함께 떠났다.
현재는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고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서 줄어든 절반의 수입으로 34평 신축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큰 이유는 서울을 떠났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면서 나름 품위 유지를 위해 들였던 돈들이 빠져나가니 빠듯하지만 그래도 적은 돈으로 생활이 가능해졌다.
서울로부터 해방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 교통체증, 주차 고민, 지하철의 혼잡함 따윈 없다.
- 짜장면 주문 전화 끈고 상 닦으면 도착한다.
- 눈이 안 온다.
- 주변에 여행할 곳이 많다.
- 강아지 산책할 곳이 많다.
그렇지만 결핍된 점도 물론 있다.
- 가족, 친구들과의 멀어진 거리
- 파파존스
- 문화생활의 결여
이렇게 여기 살면 이렇게나 좋다고 장점 단점 나열해가며 나 자신에게 합리화를 시켜본다. 넌 억지로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이만큼 좋은 환경이라고!! 라며 나를 오늘도 다스린다.
오늘 드디어 이 동네에 스타벅스가 오픈을 했다.
한번 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갈 필요 없군!!
이상
지방러의 합리화 오지는 글
끝